[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중증 원형탈모에 대한 별도 질병코드가 신설되고 표적치료제에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됐지만, 실제 환자들이 체감하는 질병 부담을 충분히 반영하려면 급여 기준을 추가로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특히 두피 모발의 절반 미만이 빠진 환자도 외출이나 대인관계, 직장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질 수 있는 만큼 치료 사각지대를 줄이고, 현행 최대 2년인 급여기간 연장과 청소년 환자에 대한 급여 확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5일 서울 JW메리어트 호텔에서 열린 한국릴리의 올루미언트정(성분명 바리시티닙) 성인 중증 원형탈모증 건강보험 급여 출시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대한모발학회는 이번 급여를 치료 접근성 개선의 ‘출발점’이라고 평가하며 추가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단순 탈모 아닌 자가면역질환…환자 정신적·사회적 고통 커”
한림대 강동성심병원 피부과 김상석 교수(대한모발학회 총무이사)는 원형탈모를 단순한 미용상의 문제가 아닌 자가면역질환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형탈모는 모낭을 면역세포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는 ‘면역특권’이 무너지면서 면역세포가 모낭을 공격해 발생한다. 재발과 완화가 반복되고 질병 경과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김 교수는 “원형탈모는 좋아졌다가 갑자기 나빠질 수도 있고 다시 재발할 수도 있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질환으로 인한 부담도 외모 변화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가발을 쓰고 진료실에 들어오는 환자들은 가발을 벗기 전 주변을 둘러보고 문이 잘 닫혀 있는지부터 확인한다”며 “다른 사람이 자신의 탈모를 볼까 두려워하고, 가발 구매 등에 들어가는 경제적·시간적 비용도 상당하다”고 말했다.
실제 원형탈모 환자의 삶의 질 저하는 중증 피부질환 못지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심한 아토피피부염의 삶의 질 점수가 약 10점인데 원형탈모는 약 13점”이라며 “단순한 외형적 탈모가 아니라 정신적·사회적인 부분까지 함께 고려해야 하는 질환”이라고 강조했다.
과거 원형탈모 치료에는 스테로이드, 미녹시딜, 사이클로스포린 등 비특이적 치료와 면역억제제가 활용됐다. 하지만 장기간 사용 시 부작용이나 약물 상호작용 등의 한계가 있었다.
최근에는 JAK 억제제가 등장하면서 표적치료가 새로운 치료 선택지로 자리 잡았다. 국내에서는 바리시티닙과 리틀레시티닙 등이 허가됐으며 이 가운데 올루미언트가 지난 7월 1일부터 건강보험 급여를 적용받고 있다.
한국 첫 중증 세분 코드 마련…SALT 20~50 미만 일부 환자도 급여
경북대병원 피부과 장용현 교수(대한피부과학회 보험이사)는 이번 급여와 함께 중증 원형탈모를 별도로 분류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했다.
2026년 1월 1일부터 시행된 KCD-9에는 원형탈모증을 경도·중등도·중증 등으로 구분하는 세분 코드가 신설됐다.
장 교수는 “ICD에도 없는 것으로 한국에서 처음 시도하는 중증 분류 코드체계”라며 “앞으로 치료제가 계속 나오는 만큼 굉장히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평가했다.
한국형 기준에서는 SALT(Severity of Alopecia Tool) 점수 50 이상을 기본적으로 중증으로 본다. 다만 SALT 20~49라도 삶의 질 저하, 눈썹·속눈썹 침범, 활동성 탈모, 치료 반응이 없는 난치성 등의 조건이 있으면 중증으로 분류할 수 있다.
올루미언트 급여 기준에도 일부 반영됐다.
기존 치료제를 3개월 이상 사용했음에도 SALT가 30% 이상 감소하지 않거나 부작용 등으로 치료를 지속하기 어려운 성인 환자 가운데 SALT 50 이상이면 급여 대상이 된다.
SALT 20 이상 50 미만이라도 눈썹과 속눈썹이 모두 없거나 명확한 단절이 있는 경우에는 급여를 받을 수 있다.
“머리 다시 났다가 2년 뒤 빠지면”…급여기간·경과규정 개선 요구
학회는 급여 인정 기간이 최대 2년이라는 점을 향후 가장 중요한 개선 과제 중 하나로 꼽았다.
장 교수는 “JAK 억제제를 중단하면 모발이 다시 자랐던 환자의 약 80%가 치료 효과를 잃는다는 데이터가 있다”며 “머리가 다시 났다가 약을 중단해 또 빠진다면 환자가 느끼는 상실감이 얼마나 크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현재 2년인 급여기간을 더 연장할 수 있도록 학회와 회사, 보건당국이 함께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급여 시행 전부터 비급여로 치료받아 온 환자에 대한 경과규정도 문제로 지적됐다.
현재 기존 비급여 환자가 급여로 전환하려면 과거 치료 시작 당시 지금의 급여 기준에 해당했다는 점을 사진이나 SALT 점수 등으로 입증해야 한다.
장 교수는 “당시에는 어떤 급여 기준이 만들어질지 알 수 없었고, 비급여 치료였기 때문에 사진이나 SALT 점수를 남길 의무도 없었다”며 “규칙이 없던 시기의 치료를 지금 만들어진 규칙으로 심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치료가 잘 된 환자가 오히려 과거 중증이었다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해 급여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며 소급 입증 요건 완화와 사례별 판단기준 공개를 요청했다.
학회는 청소년 환자의 급여 확대와 다른 JAK 억제제까지 급여권에 포함해 치료 선택권을 넓히는 것도 향후 과제로 제시했다.
허창훈 회장 “SALT 21~49%가 중증 아니라고 할 수 있나”
대한모발학회 허창훈 회장(분당서울대병원 피부과)은 중증 질병코드가 만들어진 것은 의미가 있지만, 환자가 실제 체감하는 중증도와 급여 기준 사이에는 여전히 간극이 있다고 강조했다.
허 회장은 “SALT 21~49%의 탈모가 있는 환자들이 과연 중증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느냐”며 “가발의 도움 없이 외출하거나 사람을 만나고 서비스 업무를 할 수 있겠느냐. 이 정도만 돼도 사회생활이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환자들에게도 치료의 기회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증 원형탈모 질병코드가 생겼지만 해당 코드에 포함되는 모든 환자가 치료제 급여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지적했다.
허 회장은 “중증 질병코드가 만들어지면서 해당 환자들이 치료제 급여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 환자들의 실망도 컸다”고 말했다.
이어 “급여 혜택을 받지 못하는 중간 정도 환자들을 어떻게 지원할지가 남은 과제”라며 “이들에게도 치료 기회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