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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세 전성시대 저무나

    [칼럼] 박원갑 KB국민은행 WM투자자문부 수석전문위원·WM스타자문단

    기사입력시간 2018-05-24 13:00
    최종업데이트 2020-06-22 10:15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아파트 월세 시장이 비틀거리고 있다. 전세 매물이 넘치면서 수요자들이 값비싼 월세 찾기를 꺼리면서 월세 시장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아파트 단지마다 월세 매물이 쌓이고 시세도 약세를 보인다. 저금리와 전세난 속에 빠른 속도로 진행되던 주택의 월세화 현상도 주춤해진 상황이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3월 서울 지역에서 이뤄진 아파트 전∙월세 계약 중 월세가 차지하는 ‘월세 비중’은 27.5%를 기록했다. 전월 대비 2%포인트, 전년 동기 대비로는 무려 8.1%포인트 낮아진 것이다. 이는 2015년 1월(27.8%) 이후 3년 2개월 만에 최저 수준이다. 서울 아파트 월세 비중은 이 기간 28%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다. 2015년 3월 사상 처음 30%를 돌파한 뒤 줄곧 30%대를 유지했다. 이처럼 월세 시장이 침체한 것은 수급에 미스 매칭(불일치)이 생겼고, 그 정도가 갈수록 심해지기 때문이다.

    월세는 물론 전세 시장의 변화가 심상치 않다. 전∙월세 시장에 찬바람이 부는 원인을 분석하고, 이후 상황을 전망해본다. 은퇴 후 부동산으로 월세나 전세를 이용한 투자를 생각하고 있다면 미리 체크할 사항까지 꼼꼼하게 짚어본다. 

    전세 넘치는데, 비싼 월세 왜 찾나

    부동산 정보 업체인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전국 아파트 입주 물량은 총 44만여 가구에 달한다. 이는 2000년 이후 입주 물량을 집계한 이래 최대 물량이다. 입주 물량은 경기 및 인천, 충청권과 영남권에 상대적으로 몰려 있다. 경기, 인천 지역의 아파트 입주 물량만 해도 18만5,000가구에 달한다. 이는 ‘하우스푸어 사태’가 일어난 2012년 전국 아파트 입주 물량보다 6000가구 이상 많은 것이다. 재고 물량 대비 입주 물량으로 따져보면 실감이 난다. 충북은 재고 아파트에 7.44% 물량인 2만2488가구가 입주할 예정이며, 이어 경남 6.39%, 경기 6.22% 정도다. 올해는 주택 공급 과잉의 첫해다. 입주 물량 과다에 따른 후유증이 본격화하고 있다. 그 영향이 바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전∙월세 시장이다. 

    전∙월세 시장은 현재 시점의 수요와 공급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매 시장은 현재~미래 전체 구간의 수급을 반영한다. 즉 매매 시장은 미래의 가격이 오른다는 기대가 있다면 현재 시점에서 가격은 떨어지지 않는다. 입주 물량이 많은 곳에서 전∙월세 가격이 급락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세입자가 전세보다 월세를 꺼리니 월세 매물이 더 적체되고 가격도 빠지는 것이다.

    아파트 전∙월세 전환율(전세 보증금을 월세로 전환했을 때 연 환산 이율)도 떨어지고 있다. 2016년 1월 당시만 해도 수도권 아파트 전∙월세 전환율은 5.52%에 달했지만, 지난 3월에는 5%대가 붕괴(4.95%)했다. 서울도 같은 기간 4.88%에서 4.24%로 떨어졌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에덴공인 김치순 사장은 “월세 매물이 늘다 보니 전세를 월세로 바꿀 때 적용되는 이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기도 용인의 한 중개업자도 “기본적으로 월세 시장은 전세와 달리 세입자 우위인 상품이다. 주변 지역에 아파트 전세 입주 물량이 넘치다 보니 월세로 내놓는 집주인의 교섭력이 더욱 떨어진다”고 말했다.

    실종된 봄 이사철, 세입자 우위 언제까지

    요즘 전∙월세 시장은 전국 어디를 가나 맥을 못 춘다. 현상은 비슷하지만 원인은 각각 다르다. 지방과 수도권은 주로 공급 과잉에 따른 영향이 강하다. 하지만 입주 물량이 많지 않은 서울 지역은 공급 과잉보다 수요와 공급의 미스 매칭에 원인이 있는 것 같다. 즉 전세 수요자들이 매수세로 돌아서면서 일시적 전세 수요 공백이 발생한 것이다. 애초 전세로 더 거주하려고 했던 세입자들이 집값이 더 오를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지자 군집 행동식으로 매수세로 돌아선 것이다. 매수세에 가담한 사람들은 고소득 자영업자, 전문직 종사자, 회사원 등 구매력을 갖춘 세입자인 것으로 분석된다.

    전세 가격이 매매 가격의 70%에 육박해 전세 거주자가 시장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매수세로 돌변, 시장 불안의 요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 하나 전세를 안고 투자하는 갭 투자도 한 요인인 것 같다. 갭 투자는 주택 시장에서 전세를 공급하는 효과가 있다. 특히 전세 만기를 앞두고 세입자를 찾는 갭 투자 물건이 대거 나오면서 전세 공급이 늘어났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리고 서울 전세 거주자의 수도권 이동도 한 요인이다. 발달한 교통수단을 활용해 수도권 지역의 싼 신규 아파트로 전세를 찾아 이동하는 ‘역(脫) 서울 현상’도 한몫했다는 얘기다. 이는 강남 재건축 철거 이주 수요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강남권 전세 시장의 약세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봄 전∙월세 시장에 이상 신호가 켜진 것은 겨울방학 이사철 특수 실종에 따른 매물 적체도 한 요인이다. 다시 말해 한 해 최대 이사철인 겨울방학 특수가 없었고, 그때 소화하지 못한 물량이 여전히 적체돼 있다 보니 점차 전세 가격이 빠지는 것으로 분석된다. 

    앞으로 1~2년간 전세 전성시대

    전∙월세 시장은 봄 이사철이 되어도 물량이 넉넉하기 때문에 당분간 안정세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요즘 입주 물량이 넘치면서 주택 시장에서는 집주인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역전세난이 일고 있다. 공급 쇼크로 전∙월세 시장에 소화불량과 동맥경화증이 심각해져 생긴 현상이다. 역전세난은 심각한 정도가 문제지, 경기 남부는 물론 서울 한복판에서도 나타난다. 특히 신규 입주 단지에서는 물량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역전세난이 극심한 상황이다. 전세금을 받아 잔금을 치를 계획이었던 분양 계약자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는 데다 전세 가격이 하락하면서 이중고를 겪고 있다. 신규 단지에서는 입주율이 떨어지면서 ‘불 꺼진 아파트’가 속출하고 있다.  

    전세 시장은 봄 이사철이 되어도 물량이 넉넉하기 때문에 전세 시장 하향 안정세는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 3월 서울 아파트 전세 가격은 0.16% 하락했다. 월간 단위로 서울 전세 가격이 하락한 건 2014년 5월(-0.02%) 이후 46개월 만에 처음이다. 이런 추세는 1~2년 더 이어질 가능성 높다. 일각에서는 집값 하락 기대 심리로 집을 사지 않고 전세로 눌러앉는 수요가 많아지면 전세 가격이 오를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입주 물량이 올해는 물론 내년에도 많기 때문에 전세 시장은 안정될 가능성이 더 크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내년 전국 아파트 입주 물량은 약 34만9051가구다. 이는 2013~2017년 5개년 연평균 28만1,892가구보다 7만 가구가량 많은 물량이다.

    분양 계약자들이 잔금을 치르기 위해 싼 전세를 지속적으로 공급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그동안 주택 시장의 월세화 현상이 주춤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세 공급이 많아 일시적으로 전세 종말보다 반짝 전세 부활 시대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후진국형 임대차 제도인 전세는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당분간 전세 거래가 늘면서 전세 전성시대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전세 공급 확대는 세입자 입장에서는 그만큼 저렴한 값으로 거주할 수 있게 됐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주택을 통해 월세 수입을 챙기려고 했던 은퇴자들에게는 비상이 걸린 셈이다. 결국 주택을 통해 월세를 놓으려면 세입자들이 선호하는 핵심 지역으로 압축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초고가 월세, 시장 양극화되나

    한 달 임대료가 500만원이 넘는 ‘고가 월세’ 아파트 거래가 크게 늘었다. 국토교통부의 아파트 실거래가 자료 결과에 따르면, 보증금을 제외한 순수 월세만을 기준으로 월 500만원 이상인 아파트 거래가 지난해 총 140건 이뤄진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2016년 57건의 2.5배 수준이다. 2014년(25건)에 비해서는 6배 수준이다. 고가 월세 아파트는 기존에 강남, 서초 등 지역에 한정됐으나, 작년에는 서울 전역과 부산 해운대구 우동, 대구 수성구 범어동 등 지방으로 확대되었다. 이 밖에 분당, 서울 성동구, 송파구, 경기도 안양시, 인천 연수구 등 다양한 지역에서 월세 1000만원을 넘는 거래가 이뤄졌다. 주택업계 관계자는 “높은 월세를 주더라도 고급 아파트에 살고 싶어 하는 경향을 나타내는 수요자들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런 고가 주택 월세 수요는 지역의 랜드마크 아파트, 학군과 교통 여건이 좋은 대단지 아파트로 압축된다. 

    아파트 월세를 공실 없이 잘 놓으려면 

    안정적인 월세 수입을 올리기 위해서는 입지와 상품 측면에서 가치 있는 아파트를 골라야 낭패를 보지 않는다. 우선 주거지로서 입지 경쟁력이다. 주거지 경쟁력이 높다는 것은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라는 뜻이다. 이른바 주거 프리미엄이 형성된 곳이다. 이런 곳은 교통(역세권, 특히 더블 역세권), 교육(학원, 학군), 편의 시설(쇼핑)이라는 명품 주거지 삼박자를 갖춘 곳이다. 이런 곳이 바로 현대판 명당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라. 이런 조건을 갖춘 아파트는 가격이 너무 비싸 ‘그림의 떡’이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투자 금액 한도 내에서 조건에 최대한 부합하는 지역을 선별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상품의 경쟁력도 따져야 한다. 월세 임대가 잘 나가려면 지역도 제대로 골라야 하지만 상품도 잘 선택해야 한다. 월세를 받으려면 무엇보다 세입자가 좋아하는 상품이어야 할 것이다. ‘신축 10년 이내+소형+중저가’ 조건을 맞출 경우 공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 월세 200만원을 넘어서는 고가 전세나 중대형 아파트는 부유층 밀집 지역이 아니면 세입자를 찾기 어렵다.

    투자 금액 한도 내에서 월세 수입 목적으로 아파트를 매입한다면 근거리에 저가 소형 여러 채가 낫다. 월세살이 수요는 중∙장년층보다는 젊은 층인데 빈약한 급여로는 비싼 월세를 감당하기 어렵다. 월세 부담을 낮추려면 아파트 가격이 일단 싸야 한다. 요컨대 월세가 잘 나가려면 입지, 상품 등에서 우월적 지위에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투자처를 고를 때 월세 수요가 많은 지역이 어딘지 항상 눈여겨보라. 요즘같이 월세가 넘칠 때일수록 다리품을 팔아 그런 곳을 찾아내는 게 실패하지 않는 부동산 투자법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