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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료분쟁조정법에 의료계 "형사특례 요건 엄격해 재개정 필요"…환자단체 "비판 이해 어려워"

    고위험 필수의료행위 1440개 잠정 도출…소비자단체는 형사특례 범위 확대 우려

    기사입력시간 2026-10-31 04:44
    최종업데이트 2026-10-31 04:44

    대한의사협회 박명하 상근부회장, 대한의학회 이진우 회장, 소비자시민모임 윤명 사무총장,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안상호 대표.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에 따라 형사책임 특례 대상이 될 고위험 필수의료행위 1440개가 잠정 도출된 가운데, 개정법의 실효성과 형사특례 적용 범위를 놓고 의료계와 환자∙소비자단체에서 엇갈린 목소리가 나왔다.
     
    의료계는 형사특례 적용 요건이 지나치게 엄격해 의료인에 대한 실질적인 법적 보호가 어려울 수 있다며 법 재개정을 요구했다.
     
    반면 환자단체에서는 기존에 없던 형사특례를 부여하는 법에 대해 의료계가 과도하게 비판하고 있다는 반론이 나왔다. 소비자단체는 형사특례 적용 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될 경우 환자의 권리가 제한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30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열린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에 따른 연구용역과제 중간결과 발표회'에서는 고위험 필수의료행위 목록과 중대한 과실 판단 기준 등에 대한 연구 중간결과가 공개됐다.
     
    연구진에 따르면 26개 전문학회가 참여해 중복 항목을 통합한 결과 총 1440개의 고위험 필수의료행위 목록이 도출됐다. 연구진은 추가 학회 검토를 거쳐 11월 중순까지 목록을 확정하고, 11월 말 최종 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중대한 과실 판단 기준 마련을 위해 수집한 임상사례 777건 중 중대한 과실에 해당하는 사례는 123건(16%), 해당하지 않거나 예외로 분류된 사례는 654건(84%)이었다.
     
    의학회∙의협 "형사특례 문턱 지나치게 높아…법 재개정 필요"
     
    이진우 대한의학회장은 이날 인사말에서 개정법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 회장은 "형사책임 특례를 적용받기 위해서는 고위험 필수의료행위 해당 여부, 정해진 기간 내 설명 의무 이행, 12대 중과실 해당 여부, 손해배상 등 여러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며 "이처럼 복잡하고 엄격한 조건 아래 얼마나 많은 의료인이 실질적인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최근 아주대병원 소아응급실 압수수색 논란과 의료진의 사직 의사 표명을 언급하며 "의료사고에 대한 공정한 조사와 환자의 권리 보호는 당연히 필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응급의료 현장이 위축되고 의료인들이 고위험 환자 진료를 주저하게 된다면 결국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이어 "이번 연구만으로 이미 통과된 법의 근본적인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는 없다"며 "법 자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논의는 앞으로도 계속돼야 한다. 다만 이미 마련된 법적 틀 안에서 의료현장의 현실과 전문가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입법 취지가 충실히 구현되도록 하는 것이 이번 연구의 의미"라고 강조했다.
     
    대한의사협회 박명하 상근부회장은 이번 연구에서 사고 당시의 상황을 기준으로 과실을 판단하고, 인력∙장비 부족 등 의료현장의 구조적 한계와 의료인 개인의 과실을 구분하는 원칙을 제시한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이러한 판단 원칙이 실제 제도에 반영되기 위해서는 가이드라인의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부회장은 "아무리 정교한 가이드라인을 개발하더라도 심의 단계에서 이를 참고하도록 하는 법적 근거가 없다면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며 시행령이나 심의위원회 운영 규정에 관련 근거를 명문화할 것을 요구했다.
     
    특히 손해배상금 전액 지급 등을 형사특례 적용 요건으로 규정한 것은 의료인에게 지나치게 무거운 부담이라고 지적했다.
     
    박 부회장은 "고위험 필수의료행위에 해당하고 중대한 과실이 없어도 설명 의무와 책임보험 가입, 손해배상금 전액 지급 등 여러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며 "응급의료법보다도 요건이 무겁다"고 비판했다.
     
    고위험 필수의료행위가 의료분쟁조정 자동개시 대상과 연동된다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그는 "목록을 넓히면 의료인에 대한 보호 범위도 넓어지지만 동시에 자동개시되는 분쟁도 늘어나는 구조"라며 "학회들이 아무리 정교하게 목록을 만들더라도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대한 과실을 포괄적 개념으로 바꾸고, 손해배상금 전액 지급을 조건으로 하는 공소제기 제한과 의료분쟁조정 자동개시 연동 구조도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부회장은 "의료계가 이번 연구에 참여한 것은 개정법에 동의했기 때문이 아니라 개정법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며 "오늘의 중간결과가 종착점이 될 수는 없다. 하위법령 보완과 법 개정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병원협회도 고위험 필수의료행위 목록이 확대되는 데 따른 의료기관의 부담을 우려했다.
     
    대한병원협회 박익성 정책이사는 "약 1400개에 이르는 행위가 도출됐는데, 문제는 이들 행위가 의료분쟁조정 자동개시 대상에 포함된다는 점"이라며 "병원 현장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나쁜 결과가 발생할 때마다 해당 행위가 자동개시 대상인지 판단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고 말했다.
     
    중대한 과실의 판단 기준을 지나치게 구체화하는 것도 경계했다. 박 이사는 "의료현장에서 발생하는 나쁜 결과는 반드시 하나의 의료행위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기준을 지나치게 구체화하면 오히려 그 기준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과실로 판단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개별 사례는 이러한 상황과 가능성도 존재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참고자료여야 한다"며 "개별 사례 자체가 법적인 판단 기준이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소비자단체 "형사특례 범위 지나치게 넓어"…환자단체는 의료계 비판에 반론
     
    반면 소비자단체에서는 형사특례 적용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지는 것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소비자시민모임 윤명 사무총장은 "이 법의 정식 명칭은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이라며 "가장 중요한 목적은 의료사고 피해를 구제하는 것인데, 지금 논의 과정에서 환자 피해구제에 대한 고민이 얼마나 담겨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형사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의료분쟁이 원만하게 해결되고 환자가 충분히 구제받을 수 있다면 바람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오히려 환자의 권리를 제한하는 법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했다.
     
    윤 사무총장은 고위험 필수의료행위 목록에 대해서도 "1400여개 의료행위가 과연 국민들이 생각하는 고위험 필수의료의 범위와 얼마나 부합하는지, 적정한 범위인지, 충분한 근거를 갖추고 있는지 판단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이만큼의 의료행위를 형사특례 대상으로 설정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며 "처음부터 범위를 넓게 설정했다가 나중에 축소하기보다는 엄격하게 시작해 제도가 안착한 뒤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중대한 과실에 해당하지 않는 예외 사례가 지나치게 많다는 점도 문제로 제기했다. 윤 사무총장은 "중대한 과실의 유형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각 유형에서 예외 사례를 계속 제외한다면 과연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며 "어떤 기준으로 예외를 인정했는지, 누가 판단했는지, 충분한 합의가 이뤄졌는지를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고 했다.
     
    환자단체에서는 형사책임 특례 요건이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의료계의 비판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도 나왔다.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안상호 대표는 이번 개정법이 의료인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없던 형사책임 특례를 부여하는 법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안 대표는 "이번 개정법은 의료인에게 조건부 형사특례를 부여하는 법"이라며 "기존에는 경찰과 검찰의 수사, 법원의 재판을 통해 판단하던 사안에 의료인이 참여하는 별도의 전문적인 심의 절차가 추가된 것"이라고 했다.
     
    그는 "12가지 중대한 과실은 새로운 형사처벌 규정이 아니라 형사특례 적용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라며 "특례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해서 기존에 받지 않았던 형사처벌을 새롭게 받게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의료계가 형사특례 요건으로 규정된 설명 의무와 책임보험 가입 등을 지나치게 부담스러워하는 데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안 대표는 "의료사고로 환자에게 피해가 발생했을 때 환자나 보호자에게 설명하지 않는 의사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설명 의무 이행과 책임보험 가입 자체를 과도한 조건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와 국회에는 두 명의 자식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 명은 환자이고 다른 한 명은 의료인"이라며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면서 의료인이 안정적으로 필수의료를 제공할 수 있도록 양쪽의 입장을 모두 살펴야 한다"고 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연구 중간결과를 토대로 의료계와 환자∙시민단체의 의견을 수렴해 하위법령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한영규 의료기관정책과장은 "이번 연구를 통해 그동안 모호했던 고위험 필수의료행위와 중대한 과실의 판단 기준 등이 구체화되고 있다"며 "의료사고심의위원회 구성과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조정·감정 인력 확대 등도 함께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