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정다연 기자] 정부가 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공적개발원조) 사업을 확대하는 가운데 정부의 ODA 사업 중 보건 분야는 교통 분야에 이어 두 번째 규모다. 모자 보건 향상 등이 중심이 됐던 ODA 보건 사업은 현재는 정신질환, 환경보건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추세다. 이에 따라 국제개발 협력에서 효율적인 ODA 보건 사업을 위해 다양한 분야의 협업이 필수라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외교부는 효율적인 ODA 보건 사업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정책에 적극 반영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KOFIH)과 코이카(KOIKA) 한국국제협력단은 27일 서울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국제보건분야 Multi-Sectoral Approach'를 주제로 제 5회 국제보건 ODA 포럼을 개최했다.
"보건 향샹은 보건으로만 해결되지 않아 다양한 분야의 거버넌스 구축이 중요"
서울대 보건대학원 권순만 교수는 ODA 보건 사업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소통과 협력을 바탕으로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연구자로서 또 아시아개발은행에서 보건의학 총 책임자로 인한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보건분야에서 협업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드리겠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보건학에서는 오래 전부터 다 분야 접근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해왔다"며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한 사회의 보건 수준은 보건만 잘해서 해결될 수 없고 보건 바깥의 교통, 인프라, 교육 등 다른 분야와 함께 접근해야 올릴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접근을 통해 전반적인 보건의 수준을 올리고 사회계층적 갭을 줄이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 잘 사는 사람의 건강 수준이 높다. 건강을 결정하는 요인에서 보건의료 서비스를 제 때 잘 받는 것은 20~30% 밖에 차지하지 않는다. 사회 또는 경제 부문에서 어떤 조치를 취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지금까지 경험이 축적된 분야는 영양 분야다. 아시아개발은행이나 세계은행에서는 보건을 보건으로만 보지 않고 인적 개발로 본다. 어린 시절의 영양 상태와 건강이 교육도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고 말헀다.
그는 "예를 들면, 소련에서 체르노빌 원전 폭발이 발생했을 때 분진이 바람을 타고 서쪽으로 갔다. 북부 유럽에서 국지성 비가 내렸고 당시 산모의 배 속에 있던 태아에게 방사능이 노출됐다. 이들을 추적 조사한 결과, 10~20년 이후에 뇌 기능 발전 등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어린시절 건강 상태, 영양 등이 아동 발달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이다"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아프리카에서는 특히 교통 시스템을 잘 만들어 보건의료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개발은행은 교통 시스템이 국가 보건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이를 실질적인 근거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최근에 UHC(Universal Health Coverage, 보편적 건강보장)이라고 해서 큰 화제가 됐다. 건강 보험이 아니다. 후진국에서는 보험을 하기에 한계가 있다. 각 국가에서 전국민 건강보장을 위해 어떻게 조세를 걷고 향후 어떻게 공공 예산을 배정할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에 보건 공부원만 불러서 논의했지만 지금은 보건부와 재무부 공무원을 불러서 같이 교육을 한다.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며 "우리나라는 지방분권으로 인한 보건사업 추진을 고민할 거리가 별로 없지만 아프리카 등 다른 국가에서는 지방분권이 얼마나 잘 돼 있느냐에 따라 보건사업 추진이 달라진다. 부처별 역할도 중요하고 다양한 부문의 조화가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UHC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건강 보장 제도가 아무리 잘 만들어진다고 해도 보건의료 서비스 전달 체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며 "실제로 아프리카에서 지역에 가보면 공공보건의료가 죽어 있다. 보건의료 인력이 제대로 업무를 수행하지 못하고 그렇다. 망가진 전달 체계에서 건강 보장 제도가 작동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유럽을 중심으로 나온 WHO(세계보건기구) 보고서를 보면, 학교 등을 보건의 중심으로 삼는 것이 장기적으로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교육부와 보건부의 협력이 중요해지는 것이다"고 덧붙였다.
그는 "산업장 건강 문제는 숨겨진 이슈다. 우리는 지금도 산업 현장 건강 문제가 좋지 않다. 예전에 경제 개발이 우선이었던 시절에 산업장 보건 분야의 발전이 약해졌다. 원조를 받는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건설 현장 노동자의 사고가 많다"며 "일차의료와 교육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그는 "그런데 후진국들이 중진국 정도 되면 일차의료 너머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보건부 장관이 일차의료 지원을 해준다고 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3차 의료기관을 만들어 전문의 양성에 관심을 가진다"며 "교육과 보건을 연결한다면, 그 나라에서 어느 정도까지 훈련을 시킬 것인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최빈곤국에서 고령화는 아직 큰 이슈가 아니지만 중진국으로 넘어가면 고령화에 대한 관심이 크다. 고령화는 간호사, 의사 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고 노인 수요에 맞춰 ICT 개발, 주거 개조, 의료서비스 제공 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방글라데시와 인도를 중심으로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2040년이 되면 인구의 절반이 도시에 살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슬럼에 살고 있어서 문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점에서 더욱이 인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등에서 일차의료가 중요하다. 방글라데이와 파키스탄은 독특한 현상이 있는데 정부가 보건소를 직영으로 운영하기도 하고 민간에 위임하기도 한다는 점이다"며 "공공보건 영역을 위임하는 경우는 세계적으로 드물다. 주목할 점은 민간에 위임해 운영하는 보건소가 정부 직영 보건소보다 낫다는 보고가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다시 돌아가서 요약하자면, 효율적인 ODA 사업을 위해 중요한 것은 거버넌스 구축이다. 다양한 부문간 협업과 소통이 중요하다"며 "후진국은 같은 보건 영역 사업을 추진해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에 간극이 있다. 또 보건부와 다른 부서의 협력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른 분야 종사자들이 보건 분야 종사자들과 일할 때 협업의 어려운 점을 꼽으라고 하면 '내가 앞장설 테니 따라오라'는 분위기를 말한다. 의학 전문성을 내세우다보면 협업을 위한 빌딩을 구축하는 일을 해치게 된다"며 "소통과 신뢰를 바탕으로 거버넌스 구축을 해야 다 분야 접근을 통해 ODA 보건 사업의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장기적 전략 가지고 지속가능한 ODA 보건 사업 지원체계 네트워크 구축해야"
연세대 보건대학원 김소윤 교수는 지속적인 사업 지원체계를 조성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국제 보건 ODA 사업이 새롭게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건 지표 향상을 위한 단기적인 사업 추진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보건의료 향상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협력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보건복지부에서 공무원을 하다가 교수를 하고 있다. 공무원으로서 어려운 점은 기관장이 바뀌는 시기에 성과가 중요하고, 1년 후 무슨 일을 하게 될 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교수는 정년까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장기 전략을 세울 수 있다. 그 점이 큰 차이다"며 "국제 보건 ODA 사업도 그런 방향에서 접근하려고 보니 대부분 단기사업이었다. 일손이 많이 부족하고 할 게 참 많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가나 볼타 지역에서 몇 년간 모자 보건사업을 했다. 볼타에 블랙홀처럼 빠져서 묶여 있는데 계속 이렇게 해도 될까 걱정했다가 지금은 계속 이렇게 해도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그런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풀고자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난 2012년에 코이카에서 가나 볼타 지역 모자보건 사업을 진행했다. 저는 아니고 파견 연구원이 직접 가나 볼타 지역으로 가서 모가보건 사업 역량을 강화하는 공동 작업을 수행했다. 3년간 열심히 해서 성과가 좋게 나왔다. 그런데 사업이 너무 잘 돼서 연장이 안 됐다"며 "사업을 마치면서 지속가능성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보통 ODA 사업에서 연장되는 사업은 문제가 있어서 연장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업을 그대로 끝내기가 아쉬웠다. 볼타에서 모자보건사업을 하다 보니 교육의 중요성을 느꼈는데, 사업 당시에는 교육자를 한국에서 데려갈 수 없어서 가나 수도에서 차로 4~5시간 걸리는 볼타 지역까지 현지 교수를 모시고 와서 교육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그 지역의 학교를 찾아봤다. 수년 전에 보건의료인력 양성을 위해 볼타 지역에 국립대가 설립돼 있었다"며 "코이카 모자보건 사업의 출구전략으로 교육기관 역량강화 사업을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사업으로 신청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코이카 사업이 가나 볼타에서 시작한 때가 2012년이다.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사업을 2차로 했고 교육부 사업까지 진행하면 내년에 8년째를 맞는다"며 "지역에 대한 책임감으로 볼타 지역에서 꾸준히 사업을 이어서 했다. 모자보건 사업을 하고 이후 보건 교육법에 대한 사업을 했는데 내용이 연결되고 좋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의 기획을 봐도 보건이 보건에 그치지 않는다. 응급의료가 잘 구축돼야 산모를 빨리 옮길 수 있다. 산모를 옮기는 인력, 응급구조차 등 이송수단, 길이나 다리 등이 있어야 한다. 현장에서는 보건부뿐 아니라 건설교통부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데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이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무책임하다"며 "그런 영역을 연결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우리가 하는 국제 보건 ODA 사업은 모자보건 개선 수치 등 지표가 중요하고 그 외 여건을 신경 쓰기 어려운 조건을 가지고 있다"며 "보건 사업이 잘 돼 3~4년이 지나면 교수는 다른 지역에서 어떤 보건 사업을 할지 찾아야 한다. 그런데 사업이 끝나면 현지에서는 하는 게 없다. 장비 흔적만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결국은 보건과 교육이 잘 연계돼야 한다. 현장에서 보건인력들이 주민들을 가르치는 일이 많다. 보건인력에 대한 교육이 중요하다. 보건의 특성상 현지화와 지속가능성이 중요하다. 한국에서 전문가들이 학회 다니면서 새로운 지식을 접하는 것처럼 그런 네트워크가 구축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과 코이카가 교육 사업을 많이 하는데 지속적이지 않다"며 "ODA 중점 국가가 26개 국가인데 우리나라 보건의료대학이나 기관이 한 지역에서 10년, 20년 계속할 수 있도록 해서 해당 국가에서 보건사업 연결점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학에서 책임지고 인력을 양성하고 보건의료정책을 개발하도록 돕는 것이 지속가능성이 있다"며 "변수가 많을 것 같지만 막상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아프리카 ODA 국가 그룹을 만들어서 2~3개 보건의료대학이 지원해 학회가 되고 그렇게 초청 행사도 하는 방안도 고려해봐야 한다. 그러면 좋은 네트워크가 되고 지속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무엇보다 사업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책임 보직을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면 100억 사업 단장을 맡으면 다른 사업을 동시에 다수 맡을 수 없도록 제재에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며 "지금은 그런 제재가 없어 4~5개 사업을 동시에 맡는 교수도 있다. 관리가 안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과 코이카가 지금까지 잘 해왔지만 앞으로 장기적 전략 차원에서 새로운 방식의 사업을 제시하면 좋을 것 같다"며 "경쟁구조, 갑을구조가 아니라 해당국가에 필요한 보건사업을 매칭해주고 확장하는 방식으로 지속적인 사업 지원체계를 조성하는 네트워크, 협력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