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직의들은 근로계약서 작성을 어려워 한다. 그 이유는 두 가지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하나는 관계, 하나는 규모다.
먼저 관계 관점에서 근로계약서 작성을 어렵게 만든다.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의사들은 선후배 혹은 지인 병원에서 처음 취업을 시작하는 경우가 절반에 달했다. 이 경우 구두상 협의된 계약을 문서화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한국 정서상 ‘ 너무 따지는 듯하다'고 느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기피한다. 또는 ‘알아서 잘 챙겨 주겠지’ 라고 생각해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최근에는 인식 변화에 따라 지인 병원에서 근무를 해도 70% 이상 계약서를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지인 병원에서 근무했는데 계약서가 없었고, 초반에 구두로 계약했던 것과 조건이 달라진 경우’에 큰 문제가 발생하곤 한다. 이는 결국 병원 퇴사 결정까지 이르게 만든다. 예를 들면 근무 시간이 오전 9시~오후 6시로 알고 있었는데 병원이 바빠지면서 원장이 30분 일찍인 8시 30분에 출근할 것을 요구한 경우, 혹은 매달 인센티브가 제공될 줄 알았는데 1년 후에 제공되는 경우, 세미나와 심포지엄 참석이 가능할 줄 알았는데 참석이 불가능한 경우 등이다.
봉직의 입장에선 무엇보다 지인과의 인연을 끊게 되는 것이 가장 크게 고통스러운 일로 다가온다고 한다. 경력 단절이 생기고 배워야 하는 것을 배우지 못한 채 병원과 의사 서로의 평판만 나쁘게 하는 측면도 있다.
관계 외에 규모의 관점에서도 근로계약서 작성을 어렵게 한다. 병원급 이상 규모에서는 70~80% 이상이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있다. 하지만 원무팀이나 인사팀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 병원이거나 의원급에서는 근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경우가 빈번하다. 특히 인센티브 구조가 복잡한 병원이나 이직률이 높은 병원일수록 근로계약서 작성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봉직의 권리 보호를 위해 근로계약서 작성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급여를 받는 근로자는 노동법의 보호를 받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의사들을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안이하게 대처하는 경우가 많다. 근로계약서의 의미는 평소에 병원과 사이가 좋을 때야 관계가 없지만,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을 때 ‘ 나를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무기’라고 생각할 수 있다.
모든 근로자와 같이 봉직의도 근로계약서를 통해 임금, 근로시간 등의 근무 조건을 명확히 해야 한다. 입사가 결정 되기 전 면접을 진행할 때 미리 근로계약서 부분을 확인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근로계약서 안에는 기본적으로 근로계약기간, 근무장소 및 근무시간, 업무내용, 휴가, 임금(기본급, 인센티브), 급여일, 기타 복리후생(사택 제공 등) 등의 요건이 포함된다. 근로계약서상 임금을 확인할 때 네트(Net) 기준인지 또는 그로스(Gross) 기준인지 잘 확인해야 한다. 네트로 계약서를 작성한다면 사인 전에 퇴직금 포함여부, 연말정산 방법을 확인해야 한다. 또한 병원의 배상책임보험 가입 유무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휴가 일수 내에 학회 출석이 포함돼 있는지, 학회 출석이 가능한지 확인해봐야 한다.
입사 과정에서 논의된 작은 내용까지 별첨으로라도 남겨두면 도움이 된다. 별첨이란 계약서 이면에 수기로 작성하거나 이메일로 소통한 내용을 저장하는 것을 말한다. 이메일의 경우에는 날인이 없더라도 상대가 그 메일을 읽고 답변한 상황이 있으면 유효하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