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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체행동 1년, 의대생들에게 남긴 것은…공공의대 설립 등 막았지만 선배의사들에 대한 배신감과 상처

    학업 아닌 의료정책 관심으로 필수의료 기피 현상 심화...의대협은 지원자 없어 사실상 의협과 연결고리 끊겨

    기사입력시간 2021-08-19 06:58
    최종업데이트 2021-08-19 06:58

    전공의∙의대생들의 단체행동은 당정이 정책을 멈추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사진은 지난해 8월7일 있었던 젊은의사 단체행동 모습.
    젊은의사 단체행동 1년, 무엇이 달라졌고 무엇을 남겼나  

    지난해 8월 의료계가 전공의와 의대생 등 젊은 의사들을 중심으로 의대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을 반대해 단체행동을 한지 벌써 1년이 지났다. 이후 9월 4일 대한의사협회가 여당, 정부와 차례로 합의하면서 일단락됐지만 젊은의사들의 아쉬움은 여전히 큰 상태다. 젊은의사 단체행동 1년이 지난 시점에서 달라진 점은 무엇인지 살펴보고 남겨진 과제에 대해 알아본다. 

    ①"전공의들의 삶은 달라진 게 없다…정부 불신에 허무함, 내부 분열까지"
    ②"의대생들 의료정책 관심 계기, 그러나 남겨진 선배 의사들에 대한 배신감과 상처"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지난해 8월, 수많은 의대생들이 교실을 뒤로하고 단체행동 현장에 쏟아져 나와 선배인 전공의들과 한 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뜨거운 여름 날씨에도 불구하고 의대정원 확대·공공의대 설립 등 정부의 일방적 의료정책 추진에 반대하며 피켓을 들었다.

    동맹휴학과 국시거부까지 감행하며 대정부 투쟁을 이끌던 의대생들의 거침없는 행보는 한 달여 뒤인 9월4일 갑작스럽게 일단락 됐다. 정부·여당과 대한의사협회가 의대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 등의 문제를 코로나19 안정화 이후 의정협의체에서 원점 논의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예상치 못한 결말에 전공의와 의대생들은 분노하고 허탈해했다. ‘단체행동 블루’가 역병처럼 젊은의사들 사이에 퍼졌다. 대한전공의협의회와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는 그 여파로 내홍을 겪는 등 한동안 여진이 이어졌다.

    정부 일방적 정책 추진 멈춰 세웠지만...의대생에 대한 부정적 인식 등 반작용도

    그렇게 뜨거웠던 여름 이후 어느덧 1년이 지났다. 의대생들은 지난해 단체행동이 거대 여당과 정부가 추진하던 정책을 멈춰세우고 젊은의사들의 의료정책에 대한 인식을 높였다는 점에선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 봤다.

    조승현 의대협 전 회장은 “정치권에서 다시는 문제되는 정책을 추진하지 않겠단 확약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만큼 여당이 강력하게 추진하던 정책들을 멈췄다는 것만으로도 (단체행동은) 의미가 있었다”면서도 “잠시동안 멈추기 위해 희생한 것이 정말 많았고, 모든 것을 잃었다고 느껴 크게 자책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어 “많은 것을 희생했지만 사라지지는 않았다. 정치가 생물이듯 우리도 생물이기에 멈춰있지는 않았다"며 "장기적 관점에서 본다면 의대생들이 지난 단체행동을 통해 문제의식과 이에 따른 경험을 했다. 이를 통해 향후에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가능성을 얻었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형록 의대협 현 비대위원장은 “지난해 단체행동은 학업에만 정진하던 의대생들이 의료 정책에 대해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고, 국민들도 우리나라 의료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알게된 이들이 많다는 점에선 긍정적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민들이 의료계와 의대생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되는 등 단체행동에 따른 반작용도 적지 않았다는 평가도 나왔다.

    김 비대위원장은 “단체행동을 하는 의대생과 의료계에 대해 서운함을 느끼거나 피해를 입은 국민들도 있었을 것”이라며 단체행동 기간동안 불편함을 겪은 국민들이 의대생들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게됐을 수 있단 점을 우려했다. 

    김재의 의대협 전 부회장은 “'학생'이란 키워드는 특정 사회 운동에서 순수하고 깨끗한 이미지인데, 지난해 단체행동 당시 최대집 의협 회장의 특정 정치색이 강하다 보니 의대생도 그 프레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며 “사회에 진출하지 않은 학생인 의대생들이 유일하게 내세울 수 있는 정치적 스탠스를 잃게 됐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의대생 A씨는 “지난해 투쟁이 의대생들이 목표했던 대로 마무리되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며 “많은 이들이 노력하고 고생했기 때문에 의대생들도 많이 지쳤고, 의대협과 의대생 관련 이슈에 무관심해진 경향도 있다”고 털어놨다.
     
    대정부 투쟁을 위해 선배 의사들과 전공의∙의대생들이 뭉쳤지만 마무리는 개운치 못했다. 사진은 지난해 8월14일 파업 당시 모습.

    단체행동 여파 ‘무정부’ 상태된 의대생 사회...의대협 정상화 시급

    지난해 9.4 의정합의가 의료계에 미친 여파는 상당했다. 졸속 합의라는 비판이 쏟아지며 최대집 당시 의협회장에 대한 탄핵이 추진됐고, 대전협 박지현 비대위원장은 자진 사퇴를 결정했다. 의대협도 회장단에 대한 탄핵안 발의 문제로 홍역을 치렀다.

    그래도 의협과 대전협은 비교적 빠르게 상황이 수습됐다. 최 회장 탄핵은 무위로 돌아갔고 대전협은 차기 회장 선거를 통해 새로운 집행부가 들어섰다.  

    반면, 의대협은 지난 3월 말 전임 집행부의 임기가 종료된 후로도 지원자가 나오지 않아 회장직이 여전히 공석인 채로 남아있다. 가장 먼저 투쟁을 시작했고 가장 마지막까지 전선을 지켰던 대가가 작지 않았던 셈이다.

    김재의 전 부회장은 “단체행동 이후 의대생 사회 대내적으로 남은 것은 불신과 상처의 아나키즘”이라며 “믿었던 선배 의사들이 단체행동을 무너뜨렸고, 이는 고스란히 선배 의사들에 대한 불신과 의대생 집단 내 학생사회 및 자치의 붕괴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의대생 사회에서 내전은 그들 간 갈등이 아닌 선배들의 배신으로 인한 것이었지만 책임은 당시 학생 집단 대표 및 학교들의 대표들이 지게 됐다”며 “그 결과로 의대협을 비롯해 수년간, 수많은 이들이 공들여 세운 탑이었던 학생 사회는 무너져버렸고, 아직도 단위별 학생회 가운데서 정상화되지 않은 곳들이 있다”고 씁쓸해했다.

    실제로 회장 지원자가 나오지 않은 의대협은 현재 대의원들이 추첨을 통해 비대위원장직을 번갈아 가며 맡고 있다. 별도의 임원도 없어 비대위원장 한 명이 모든 회무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기존 업무조차도 제대로 처리하기 버거운 실정이다.

    지난 집행부까지는 조 전 회장이 범의료계투쟁위원회(범투위) 위원으로 참석해 의대생들의 의견을 의협 등에 전달해왔지만 현재는 이런 창구마저도 전무하다. 향후 재개될 의정협의체에서 의대생의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서라도 의대협의 정상화가 시급한 셈이다.

    김형록 비대위원장은 “8월 말로 예정된 정기 총회에서 향후 의대협의 운영 방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며 “선거를 통해 올해 안에는 제대로 집행부가 구성되고 정상적인 회무가 진행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 전 부회장은 “의대협 무용론까지 거론되고 있지만 의사국시 관련 업무, 해외 교류·교환 프로그램 등 학교 단위서 추진할 수 없는 규모와 성격의 업무를 맡을 연합체의 필요성은 여전하다”며 “과거와 유사한 형태는 아닐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회무의 부분적, 단계적 정상화가 이뤄지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레 전망했다.

    이처럼 단체행동 후 1년이 지난 지금도 의대생 사회는 당시 입었던 큰 타격에서 회복 중에 있다. 하지만 여당 인사들이 지금도 주장하고 있는 공공의대 설립과 의대정원 확대가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단 의대생들의 생각만큼은 여전히 굳건하다.
     
    의대협이 파행 운영되며 현재 의대생들의 의견을 대변할 창구가 사라진 상태다. 사진은 지난해 범투위 회의 모습.

    공공의대 설립·의대정원 확대엔 반대 입장 굳건...의정협의체선 근본적 문제 논의돼야

    지난해 의대생들이 단체행동에 나섰던 이유를 담은 ‘거리로 나오게 된 의대생’이라는 책 출간을 총괄했던 김보규 학생(동국의대)은 “정부의 정책 방향성은 단체 행동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고 꼬집었다.

    그는 “기피과 문제는 낮은 수가와 의료 소송에 휘말리 위험 등 복합적 요인 때문인데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리고 공공의대를 설립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며 “실제 의대생들 사이에서도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생명을 살리는 소위 바이탈과에 가서 좋을 게 없단 생각이 팽배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정책 방향성을 바꾸지 않으니 다른과로 진로를 바꾸거나 외국 의사국시에 관심을 갖는 이들도 늘었다”며 ”수가 조정을 비롯한 시스템 개선을 통해 기피과 문제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의대생들 단체행동 과정에서 또 하나의 중심 화두는 ‘교육’이었다. 의대 교육에 대한 제대로 된 청사진과 투자 없이 무작정 의대를 설립했다간 부실의대 오명을 안고 폐교했던 서남의대 사태의 재판이 될 수 있단 이유에서였다.

    김 전 부회장은 “코로나19 안정화 후 있을 의정협의체에서는 의대 교육에 대한 논의가 필수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지난해 단체행동 때부터 의대생과 전공의들이 수없이 지적해온 사안이지만 공공의대 및 의대정원 확대를 강행할 경우 이에 대해 어떤 해결책을 내놓을지 객관적인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실에서는 마치 게임을 하듯 손 쉽게 양질의 인적 단위를 생산할 수 없다”며 “지금 운영 중인 의대 중에서도 교원 채용에 어려움을 겪는 학교들이 있고, 현재 배출되고 있는 의사들은 지금 대한민국의 교육 인프라로 배출할 수 있는 최대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들에게 송구할 정책을 또 하나 강행하지 않기만을 바란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