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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의사 CT문제 의료계 격분 "실제 악성종양 환자...수술시기 놓치고 한약 처방하게 하다니"

    출처 기재없이 논문 영상 임의 도용에 환자 정보도 60대→80대 변질...교모세포종인데 청폐사간탕 처방이 정답?

    기사입력시간 2022-09-08 07:17
    최종업데이트 2022-09-08 11:39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 연구용역에서 제시한 한의사 국가시험 출제 예시 문제. 사진=직무기반 한의사 국가시험을 위한 개선방안 연구,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한의사 국가시험 개선방안 연구용역의 후폭풍이 상당한 가운데, 이번엔 출제 문항 예시에 포함된 뇌 CT(컴퓨터단층촬영장치) 영상이 실제 환자 정보와 전혀 다른 데다 치료 방침이 완전히 잘못됐다는 의혹이 나왔다. [관련기사=[단독] 한의사 국시에 CT 진단 문제 출제?…국시원 연구용역서 한의사 국시 개정 주장] 
     
    앞서 연구용역이 공개되면서 해당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국시원) 연구용역에 포함된 출제 문항 예시가 한의사의 의료기기 영상 판독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의사가 CT와 MRI(자기공명영상장치) 등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하고 진단하는 것은 명백한 위법이기 때문이다. 

    8일 메디게이트뉴스 취재결과를 종합하면, 국시원 연구용역 중 한의사 국시 기출 예시 문항에 포함된 뇌CT 영상이 출처 기재 없이 인터넷에서 도용된 것으로 밝혀졌다. 도용 과정에서 정보도 임의적으로 변경됐다.

    해당 CT 영상은 호주 신경 방사선 학자 프랭크 게일라드(Frank Gaillard) 교수의 환자 사례다. 해당 환자는 60세 여성으로 교모세포종(glioblastoma)을 6개월 이상 앓고 있었다. 

    그러나 이를 인용한 기출 예시 문항은 해당 영상을 기재하면서 환자를 80세 남성으로 표시했다. 이외 체질량지수와 심전도 정보와 함께 환자가 평소 겁심이 많고 기육이 견실하며 대변은 단단해 보기 어려웠다는 정보가 제공됐다. 

    대한의사협회 한방대책특별위원회 김교웅 위원장은 "보통 국가시험 기출 예시 문제라면 직접 한의학에서 환자를 치료한 사례를 바탕으로 믿을 만한 정보가 제공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례는 출처도 없이 인터넷에서 사진을 퍼와서 환자 정보도 짜깁기 해놓은 문제다. 논문 조작 수준"이라고 말했다.  
     
     CT영상 속 실제 환자는 80세 남성이 아닌 60세 여성으로 교모세포종(glioblastoma)을 6개월 이상 앓고 있었다. 사진=radiopaedia

    환자 상태에 따른 처방도 문제로 지적된다. CT영상 속 환자는 교모세포종으로 진단됐다. 교모세포종은 일반적인 신경교종 중에서 세계보건기구(WHO) 뇌종양 분류 4등급의 악성 종양이다. 

    교모세포종은 빠른 수술을 통해 종양을 제거해야 한다. 상황에 따라 방사선치료와 항암화학요법을 병행할 수 있으나 악성 종양인 만큼 다른 종양에 비해 예후가 나쁜 편이다. 

    그러나 해당 한의사 국시 문제는 환자 치료를 위해 이같은 치료방법을 제외하고 '청폐사간탕'을 처방한다고 밝혔다. 청폐사간탕은 두통, 변비 혹은 설태가 기름진 황색이거나 피부 발진 등의 모든 신경증을 치료하는 한약 처방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한의학 연구에서 청폐사간탕 등 한약 처방이 뇌경색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는 연구도 있으나 해당 연구는 발병 7일 이내 초기 뇌경색 환자를 대상으로 국한됐다.

    익명을 요구한 C대학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는 "당장 대학병원으로 전원시켜 수술해야 하는 수준의 환자한테 한의약 처방하라는 식의 문제가 말이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영상의학과 의사가 공분하고 있다"며 "이런 문항을 생각해낸 것 자체가 문제지만, 출제자 역시 아예 CT에 대한 지식이 없는 듯하다"고 말했다. 

    다른 영상의학과 교수도 "CT 영상만 보고 모든 의사가 바로 진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4년이라는 기간동안 수련을 받은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따로 있는 이유"라며 "제대로 된 의학교육을 받지 않은 한의사들이 임의로 CT를 찍고 판독하게 한다면 진단이 잘못 내려질 수 있고, 환자들의 치료 시기만 놓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과학중심의학연구원 강석하 원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문제의 핵심은 오진이다. 의사들은 문항을 보고 뇌종양을 바로 아는데 문제 내용으로 봤을 때 한의사들은 뇌영상을 뇌졸중으로 오진한 것 같다"며 "청폐사간탕은 뇌졸중에 간혹 쓰이지만 뇌종양에 쓰인다는 내용은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는다. 뇌종양이 저렇게 큰데 한약을 처방한다는 것도 넌센스"라고 덧붙였다. 

     

     
    사진=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임현택 회장 페이스북 갈무리.


    이번 사안이 알려지면서 의료계는 격양된 상태다. 의협 한방대책특별위원회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시원에 한의사 국시 출제 문제를 공개하라고 공식적으로 요청할 예정이다. 

    김교웅 위원장은 "이번 연구와 예시 문제는 모두 한의사가 의과 의료기기를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보인다. 이번 기회에 지금까지 출제됐던 한의사 국시 문제도 모두 공개돼야 한다. 그동안 수차례 공개요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임현택 회장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연구책임자인 김은정 교수를 공개적으로 저격했다. 

    임 회장은 "김은정 교수는 국민혈세를 통해 국시원이 발주한 한의사 국시 개선방안 연구 책임자다. 해당 연구에서 예시로 든 80세 남자 환자의 진단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공개답변을 해달라"고 말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여한솔 전 회장도 페이스북을 통해 "이건 도저히 웃을 수 없는 상황으로 한의계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라고 본다"며 "과연 한의사들이 자신의 가족에게도 해당 증상이 있을 때 병원에 가지 않고 청폐사간탕을 처방할 것인지 의문"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