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정신건강복지법 시행 한달
[메디게이트뉴스 안창욱 기자] 정신건강복지법(개정 정신보건법)이 시행되면 퇴원대란이 벌어질 것이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의 예상은 빗나갔고, 수치를 놓고 보면 정신질환자들의 인권이 획기적으로, 빠르게 개선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의료현장은 폭풍전야와 같은 상황이다.
정신건강복지법이 시행된 지 한 달이 지났다.
이 법의 핵심은 강제입원(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보호입원) 절차를 보다 까다롭게 해 정신질환자들의 인권을 개선하자는 것이다.
이 법이 시행되기 전에는 보호의무자 2인 이상의 동의와 해당 정신병원의 전문의가 1차 진단한 후 입원 여부를 결정하면 됐지만 법이 개정되면서 다른 병원에 소속된 정신과 전문의가 2주 이내에 입원이 필요하다는 2차 '추가소견'이 있어야 입원을 유지할 수 있다.
만약 1차 소견과 외부 병원 전문의의 2차 소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환자를 퇴원시켜야 한다.
모 정신병원의 봉직의 A씨는 29일 "겉으로는 퇴원대란도 없고, 아무런 문제없이 조용한 것 같지만 우려했던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전국 정신병원 입원환자 중 계속입원 심사 대상이 17만명에 달하고, 이를 심사할 국공립병원 정신과 전문의가 태부족할 뿐만 아니라 정부가 지정한 민간병원 의사를 동원해 방문 심사하더라도 진단대란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해 왔다.
A씨는 "지방자치단체와 보건소가 정신병원에 압력을 행사해 신속하게 계속입원 심사를 하라고 종용하고 있어 정신과의사들이 출장 진단을 나가 하루에 30~40건을 처리하는 게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계속입원 심사 대상이 많고, 진단할 의사가 부족하다보니 졸속 진단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는 "법 취지대로 환자 인권보호에 도움이 되면 진단업무가 가중되더라도 참을 수 있는데 실상을 들여다보면 졸속 시행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고 질타했다.
정신요양시설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그는 "정신요양시설은 상근 의사도 없고, 정신과 의사 1명이 한번 출장 진단을 나가 150명에서 많게는 200명까지 계속 입소 진단을 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법 시행 이후 정부가 강제입원을 자의입원으로 전환하고 있는데 이 역시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자의입원이란 정신질환자나 알코올 환자들이 스스로 입원을 신청하는 것으로, 다른 병원 전문의의 2차 소견이 필요 없고, 환자가 매 2개월마다 입원 의사를 피력하면 계속 입원이 가능하며 퇴원신청을 하면 이에 응해야 한다.
영국과 같은 선진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자의입원과 자의퇴원 비율이 강제입원보다 훨씬 높고, 정부와 일부 시민단체는 이런 외국 통계를 인용해 정신병원들이 돈벌이를 위해 환자들을 퇴원시키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정신과 봉직의 B씨는 "선진국이라고 해서 환자 상태가 우리와 다르지 않고, 환자를 설득해 자의입원 시키는데 외국은 퇴원시켜도 갈 곳이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은 게 다른 점"이라고 환기시켰다.
그는 "법이 개정되면서 강제입원 절차가 까다롭고, 진단 업무가 증폭되니까 정부도, 병원도 자의입원을 유도하고 있는데 상당수 만성질환자나 병원 생활에 익숙해진 정신질환자들이 쉽게 계속 입원하면 선진국과 달리 강제입원환자보다 인권이 더 침해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병원이 환자를 퇴원시키지 못하는 이유는 돈벌이 때문이 아니라 이들이 갈 데가 없기 때문"이라면서 "정부가 그런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하지 않고 자의입원, 자의퇴원만 유도하면 통계상 수치는 선진국과 비슷해질지 몰라도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복지부 입장에서는 퇴원대란도 없고, 자의입원이 느는 반면 강제입원이 줄어 법 개정 효과가 나타나는 것처럼 홍보하기 딱좋은 상황이라고 착각할지 모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곪아터지기 직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