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키워드 순위

    메디게이트 뉴스

    의사 보건소장들의 씁쓸한 현실

    "왜 의사만 소장하느냐" 행정직의 무한도전

    기사입력시간 2015-11-25 07:27
    최종업데이트 2015-11-25 09:20

    우리나라에는 254개의 보건소가 있다.

    의사들의 입장에서 보건소는 병의원 행정처분권을 거머쥔 껄끄러운 존재다. 

    또 일부 의사들은 보건소가 환자를 뺏어가는 달갑지 않은 존재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보건소 담장 밖에서 바라보는 그쪽 풍경과 실제 그들의 세계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10년 이상 보건소장으로 일하고 있는 베테랑 의사들이 처한 현실과 생각을 소개한다.

    [1편] 의사들의 또 다른 전쟁터 
     

    보건소에는 많게는 200명 가까운 인력이 일하고 있는데, 이중 절반 이상의 인력이 의료 관련 업무를 맡고 있다.
     
    의사 보건소장인 A씨는 "맘만 먹으면 병의원 행정처분하는 건 일도 아니다"고 말했다.
     
    걸려고 하면 다 걸 수 있다는 뜻이지만 그만큼 보건소와 관련이 없는 업무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쓰레기통 하나만 털어도 의사 면허정지를 시킬 수 있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의료기관간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의사들끼리 고소고발하거나 내부고발하는 사례도 적지 않아 보건소의 관리감독, 중재 업무가 증가하는 추세다.
     
    보건소는 업무도 다양하다.
     
    보건의료인 및 보건의료기관 지도·관리뿐만 아니라 주민 건강증진, 질병예방·관리, 구강건강·영양관리, 감염병 예방, 모성과 영유아, 여성·노인·장애인 건강유지·증진, 건강검진 및 만성질환 등 질병관리 등이 모두 보건소 업무다.
     
    이처럼 보건소가 의료기관 관리 감독과 함께 메르스와 같은 감염병 예방 및 관리, 만성질환 관리, 환자 진료 등을 총괄하다보니 의료전문가인 의사가 '당연히' 보건소장을 맡아야 한다는 게 의사들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지역보건법에도 의사를 우선 임용하도록 하고 있다.
     
    지역보건법에 따르면 의사면허가 있는 사람 중에서 보건소장을 임용해야 한다.
     
    다만, 의사를 임용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보건·식품위생·의료기술·의무·약무·간호·보건진료 직렬의 공무원을 보건소장으로 임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법 취지와 다르게 움직이고 있다.
     
    2013년 현재 전국 254개 보건소 중 의사가 보건소장을 맡고 있는 곳은 101개, 40%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의사가 아닌 보건직, 행정직이 보건소장 업무를 맡고 있다.
     
    2002년과 비교하면 보건소가 12개 늘었지만 의사 보건소장은 12명 줄었다.
     
    의사 보건소장 B씨는 "아마 의사 보건소장은 우리 세대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의사 보건소장이라고 해봐야 연봉 면에서 일반 의사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아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

    의사 보건소장을 뽑더라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
     
    의사 보건소장 C씨는 "병원은 의사를 중심으로 돌아가지만 보건소는 전혀 다른 행정조직"이라면서 "그러다보니 의사들이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보건소에서 일하려면 자치단체장 비위도 어느 정도 맞춰야 한다.
     
    그런데 의사들은 '정치적이지도, 정치력도' 없고, 조직문화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는 게 의사 보건소장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무엇보다 의사들에게 보건소장은 의사가 할 수 있는 많은 일자리 중 하나에 불과하다보니 자치단체장과 의견 충돌이 생기면 설득하기보다 '그만 두고 말지' 하는 식으로 쉽게 사표를 던지고 만다. 
     
    의사 보건소장을 구하기도 어렵고, 뽑더라도 오래 버티지 못하거나 맞서기나 하는 성가신 존재다보니 자치단체장들은 '의사' 보건소장이 달가울리 없다. 

     


    반면 보건소에서 30년 이상 일해 온 보건직, 행정직 등의 입장에서 소장 자리는 그들의 마지막 목표다.
     
    전국적으로 보건소에서 근무하는 100여명의 약사, 3000여명의 간호사, 400여명의 의료기사, 2000여명의 행정직과 보건직 공무원들이 어쩌면 보건소장이 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B씨는 "일반 공무원들은 보건소장이 되기 위해 자치단체장에게 로비를 하고, 잘 보이려고 시키면 뭐든지 할 정도로 공을 들이는 게 현실"이라고 환기시켰다.
     
    그는 "자치단체장들은 충성도가 떨어지는 의사보다 가급적이면 보건직, 행정직 보건소장을 원하고, 그래야 인사 적체를 해소해 내부 불만을 잠재울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의사 보건소장이 정년퇴임하거나 사직하면 그 자리는 비의사 출신에게 돌아가기 일쑤다.
     
    A씨는 "일반 공무원들은 보건소장이 되려고 죽어라 일하는데 낙하산 의사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하면 가만히 있겠느냐"면서 "외부에서 보는 것과 달리 보건소장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암투와 조직적 압박이 엄청나다"고 전했다.

    일반직 공무원들의 4급 자리를 늘리기 위해 보건소장을 4급에서 5급으로 강등한 자치단체도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모 지역일간지에 나온 기사


    최근 모 지방지는 '의사 보건소장 우선임용 규정 개정 시급'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의사가 행정경험이 전무함에도 불구하고 보건소장으로 우선 채용하도록 한 지역보건법을 개정, 보건행정직에게 공평한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지역보건법을 개정하려는 일부 자치단체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A씨는 "내가 처음 보건소장으로 부임하니까 선임 소장이 '네가 나가면 절대로 후배 의사를 앉힐 수 없을 거다. 그러니 오래 버티는 게 가장 잘하는 거다'고 조언하더라"면서 "이런 상황에서는 의사 보건소장이 계속 줄면 줄었지 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C씨는 "의사 보건소장의 가장 큰 장점은 갈 데가 많다보니 아무래도 자치단체장의 눈치를 덜 본다는 것"이라면서 "모 의사보건소장은 시장이 도시보건지소를 만들려고 하자 끝까지 뚝심있게 반대했다. 공직 사회에서 이런 공공의료 철학을 가진 의사들이 설자리가 없다는 게 안타깝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