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22대 총선이 여당의 참패로 막을 내린 가운데 의료계는 복잡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의대증원 2000명을 밀어붙인 정부·여당이 심판받은 것은 반길 일이지만, 의대증원과 함께 공공의대·간호법 등을 추진할 것으로 보이는 민주당의 압승도 불편하기 때문이다.
10일 치러진 총선에서 여당인 국민의힘은 전체 300석 중 108석(지역구 90석·비례 18석)을 얻어 개헌저지선(100석)을 지키는 데 그쳤다.
더불어민주당은 175석(지역구 161석·비례14석)으로 단독 과반을 확보했고, 조국혁신당이 비례 12석, 개혁신당이 3석(지역구 1석), 새로운미래와 진보당이 지역구 1석씩을 가져갔다.
의대증원 2000명 동력 줄어들듯…합의해도 젊은의사 복귀 요원
의료계는 우선 정부의 일방적인 의대증원 2000명 추진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총선에서 예상보다 더 크게 패배하면서 여당 일각에서도 우려가 나오던 정책을 강행하기엔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대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도 총선 전부터 의대증원 2000명은 과하다며 정부, 국회, 의료계, 환자, 시민 등으로 구성된 국회 특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이재명 대표가 직접 “의료 현장에서 현실적으로 수용 가능한 적정 증원 규모”라며 400~500명 수준의 증원을 제시하기도 했다.
다만 민주당도 의대증원 자체는 찬성인 데다 공공의대, 지역의사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라 협상 테이블에 의료계를 앉히기가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공공의대는 지난 2020년 의료계 총파업의 단초가 됐을만큼 휘발성이 높은 사안이다.
정부·여당이 야당 중재에 앞서 정책을 일부 후퇴하거나 철회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정부의 사과와 의대증원·필수의료 패키지 백지화 등이 수용되지 않는 이상 전공의·의대생들의 복귀는 요원할 것이란 게 의료계의 지배적인 분위기다.
의료계 관계자는 “이미 전공의, 의대생들 중에는 수련을 포기하거나 해외로 가겠다는 이들이 많다”며 “정부가 이번 사태에 대해 사과하고 정책을 전면 철회하더라도 기피과 전공의들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의대·간호법 통과 가능성도 커져…의료계 내부 갈등 수습 시급
이번 총선 결과에 따라 차기 국회에서 간호법이 재추진 될 수 있다는 점도 의료계를 불편하게 하는 대목이다. 민주당은 의료계의 거센 반발에도 21대 국회에서 간호법을 통과시킨 바 있다.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지만, 22대 국회에서 재차 용산으로 넘어올 경우 지난 번처럼 거부권을 쓸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이번 의대증원 사태 와중에 여당이 간호법 제정안을 발의했다는 점도 이같은 전망에 힘을 더한다.
민주당이 의대정원 증원만으론 안 된다며 강력하게 주장했던 공공의대 설립법이나 지역의사제법도 적극적으로 밀어붙일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 비례대표로 당선된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김윤 교수나 전 조국혁신당 비례대표로 당선된 김선민 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이 어떤 법안을 내놓을지도 관심을 모은다.
의료계는 소아응급실 의사 출신 이주영 당선인(전 순천향대천안병원 교수)이 속한 개혁신당의 역할을 주목하기도 하지만, 개혁신당은 의석 수가 3석에 불과해 정책 입안 과정에서 실직적인 영향력을 미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개혁신당은 이번 총선에서 의료수가 OECD 평균 수준으로 인상, 의료사고 형사 책임 면제 등의 공약을 발표하면서 의료계의 지지를 받았다.
의료계가 난국을 헤쳐나가기 위해 내부단결과 대통합부터 다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의료계 관계자는 “정치권에 한 목소리를 내도 의료계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쉽지 않은데 각 직역마다 입장이 달라 정부가 각개격파에 나설 수도 있다"라며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을 지지하면서 젊은 의사들을 중심으로 힘을 모아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