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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결에 결정적 역할하지만 공정성·전문성 의심 받는 '의료감정'…법조계도 우려

    [부당 의료소송 특별기획]② 낮은 경제보상에 감정의사 부족, 전문성 검증·감정업무 전문교육 없이 1인 단독감정 진행

    기사입력시간 2024-01-03 13:59
    최종업데이트 2024-01-03 13:59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특별기획] 부당한 의료소송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①서슬 퍼런 사법부 판결에 무너져 내리는 '필수의료'…10억대 배상 판결에 의사 실형까지
    ②판결에 결정적 역할하지만, 공정성·전문성 의심 받는 '의료감정'…법조계도 우려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최근 의료분쟁의 증가와 함께 억대 손해배상 판결은 물론 형사처벌 등 의료계를 옥죄는 판결 결과가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판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의료감정' 제도의 적절성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의료분쟁 건수로 감정촉탁기관에 촉탁한 신체감정 의뢰 건수는 연 평균 2만건에 달하지만 충분치 못한 감정의 숫자는 물론 제대로 된 관리 부족으로 법조계 역시 감정 지연에 대한 불만은 물론 불공정, 비전문적인 감정에 대한 우려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최근 의료감정의 전반적인 현황과 문제점 등을 확인하기 위해 '의료감정제도 개선방안 관련 의견조회를 위한 설문조사'를 실시해 2023년 법원행정처에 그 결과를 공개했다.
     
    법조계도 '감정회신 장기화'에 불만 커…경제적 보상·감정의 수·불성실 업무 제재 부족 때문

    여기서 '의료감정'이란 의료과오소송 등에서 의학적 전문지식이 없는 법관의 법적 판단을 보충하기 위해 의료인 등 전문가를 활용하는 것으로, 신체감정, 진료기록감정, 사실조회 등으로 구분된다.

    그중 신체감정은 피감정인의 장해평가와 손해의 범위, 인과관계 등 후유장애의 영향을 파악하기 위한 절차이고, 진료기록감정은 진료기록부 등에 기재된 구체적 사실 판단을 하고 의료진의 주의의무 위반 및 인과관계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절차이다.

    감정은 기본적으로 법관이 제3자의 의견을 필요로 하는 경우 채택하는 것으로 보충적 증거방법에 해당되며, 법원이 직권으로 명할 수도 있으나 당사자의 신청에 따라 시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출처-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회 김유정 위원, '의료감정의 실무상 현황, 문제점과 개선 필요성'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우리나라 의료감정의 숫자는 연 평균 2만1333건에 달한다.

    최근 의료소송이 증가하면서 의료감정의 결과가 소송의 결과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의료감정에서 감정인 선정 절차의 문제, 감정사항 작성의 어려움, 감정회신 장기화로 인한 소송지연, 감정 결과의 불명확성, 감정보수의 현실화 등의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온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법원행청처의 2023년 회신 내용에 따르면 손해배상(의) 사건은 의료감정으로 인해 평균 2~4년의 소송 기간이 소요되며, 2022년도 기준으로 2016년에 제기된 소 10건, 2017년에 제기된 소 17건, 2018년에 제기된 소 64건으로 최대 4~7년 넘게 소송이 지연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설문조사에 따르면 법관 99.1%, 변호사 98.1%가 소송 중 진행되는 신체감정 및 진료기록감정 절차의 지연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감정 절차 지연이 어떤 원인으로 발생한다고 생각하는지(복수선택가능)의 질문에 법관은 감정의에 대한 경제적 보상 부족(85.5%), 명단에 등재된 감정촉탁병원 및 전문의의 수 부족(67.1%), 감정의의 불성실한 업무 수행에 대한 제재 부족(43.8%), 당사자(소송대리인 포함)의 투망식 감정신청(20.5%), 감정의의 감정업무에 대한 지식・경험 부족(15.1%), 재판부의 의료감정 절차에 대한 관리소홀(9.7%), 기타(4.8%) 순으로 답했다,

    변호사는 그 원인에 대해 명단에 등재된 감정촉탁병원 및 전문의의 수 부족(73.0%), 감정의의 불성실한 업무 수행에 대한 제재 부족(58.4%), 감정의에 대한 경제적 보상 부족(41.9%), 재판부의 의료감정 절차에 대한 관리소홀(30.2%) 순으로 답했다.

    한정적 의료감정 풀, 전문성 검증·감정업무 전문교육 없는 1인 단독 감정…전문성 의심

    실제로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회 김유정 위원(법무법인 율립 변호사)은 '의료감정의 실무상 현황, 문제점과 개선 필요성' 발표 자료를 통해 이러한 의료감정의 문제들이 의료감정의 신속성, 공정성, 경제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먼저 김 위원은 우리나라 의료감정의 첫 번째 문제로 한정적인 의료감정의 풀을 지적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사건을 처리하는 서울중앙지방법원이 보유한 감정기관이나 감정인 등록 현황을 보면, 전체 감정병원 수는 신체감정 23개, (진료)기록감정 21개였다. 전체 감정의사 숫자도 신체감정 914명, 기록감정 1023명이 등록돼 있다.

    하지만 의료과오와 보험사건 관련 손해배상소송의 약 40%를 차지하는 정형외과병원은 신체감정 7개, 진료기록감정 9개에 불과하고, 정형외과 감정의사 수는 신체감정 9명, 기록감정 13명이 등록돼 있어 전체의 약 1% 밖에 되지 않는다.

    실질적으로 필요한 정형외과 감정의사가 없다보니 이는 감정서 회신의 장기화로 이어지고 사회적 비용의 증가, 감정서 질 저하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감정의사 풀이 부족한 이유는 법조계도 인정했듯이 감정비용의 문제로 보인다. 민사사건의 경우 신청 당사자가 법원에 신청감정 등을 신청한 후 감정료를 예납하는데 감정예규에 따라 신체검정의 감정료는 감정과목 수×40만원, 진료기록감정의 감정료는 감정과목의 수×60만원으로 돼 있다. 

    김 위원은 "의사 입장에서 감정업무는 본업 이외의 업무로 실질적 도움이 안되는 업무이고, 별도의 교육과정 없이 자율적으로 감정업무를 진행해야 하며, 법정 출석의 부담과 감정 결과에 대한 문제제기 가능성까지 감당해야 해 사실상 동기부여가 안된다"며 "감정의가 감정 절차에 적극 참여할 유인이 없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김 위원은 감정인에 대한 관리체계 부족으로 감정인의 전문성이 담보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밝혔다.

    김 위원은 "법원은 소송에 관한 전문지식을 얻기 위해 원칙적으로 전문가 1인을 감정인으로 선정해 그에게서 감정 결과를 제출받는다. 그 감정결과는 전문지식에 관한 유일한 증거방법이 돼 매우 중요하게 취급될 수밖에 없다"며 "법원에 의해 선정되는 감정인은 구체적인 분쟁의 사실관계에 관해 해박한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감정을 하면서 전문지식을 공정하게 반영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작 실무에서는 감정인의 전문성을 별도로 검증할 방법이 없고, 감정업무에 대한 전문교육 등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감정인이 감정사항에 명확한 답을 하지 않고 모호하고 불명확한 답변을 하거나 감정사항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 근거 기술 없이 단답형으로만 '예, 아니오' 등으로 답변을 하는 경우, 명백한 수치 잘못 기재 등 감정서 자체에서 오류가 발견되는 경우 등은 감정결과에 대한 신빙성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김 위원은 "신빙성이 떨어지는 감정은 감정결과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증거방법으로 기능을 할 수 없고, 결국에는 감정결과 불복으로 감정보완절차(보완감정, 재감정, 사실조회 등)를 또다시 진행하게 된다. 결국 소송이 지연되고 감정비용을 증가시키는 등 악순환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현재 의료감정이 원칙적으로 1인의 전문가를 감정인으로 선정하고 있는 점도 우려를 제기했다.

    그는 "1인 감정인의 단독 감정 결과도 독립된 증거방법으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증거능력이 인정되고 증명력도 매우 높은 상황이다. 단독감정의 경우 1인 감정인의 감정 결과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라며 "전문분야에 관한 감정인의 감정 결과를 비전문가인 법관이나 당사자가 그 잘못을 찾아내 배척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복수감정 등과 같이 감정 절차 안에서 여러 감정인의 견해가 논의돼 객관성과 합리성을 담보해야 한다. 최종적으로 모든 당사자가 받아들일 수 있 는 감정 결과를 도출해 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미국 '의료감정인 국가공인인증제', 프랑스 '감정인 관리제도', 독일 '별도 법률 규정'으로 관리
     
    출처-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회 김유정 위원, '의료감정의 실무상 현황, 문제점과 개선 필요성' 

    김 위원이 조사한 해외사례에 따르면 일본은 신체감정절차의 신속성을 위해 감정을 선택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감정 절차의 공정성, 객관성 확보를 위해 복수감정이나 컨퍼런스 감정 등을 도입하고 있다.

    미국은 의료감정인의 전문성을 위해 일정한 교육과 시험을 거쳐 국가 공인 기준으로 인증을 하고 있다. 프랑스는 별도로 감정인 관리제도, 감정인과 감정 업무를 관리하는 특별임무 수행판사(특임판사)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독일은 감정의 적정성과 당사자 절차 참여권 보장을 위해 감정인의 손해배상의무나 감정인의 객관의무 등을 법률로 규정하고 있다.

    김 위원은 "결국 의료감정을 신속하고 경제적이면서 공정하게 진행하기 위해서는 신체감정 등 감정 절차에 대한 현황 및 문제점을 진단해야 한다. 의료감정이 진행되는 단계별로 발생하는 문제점을 해소할 방안을 적절히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