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PhD(박사)가 흔한 도시가 어디인 줄 알아?"
"나한테 왜 그렇게 어려운 것을..."
"그것은 서울이야. 인구 대비 가장 많지."
토론 좌장이 서두에 던진 영화 대사를 재구성해 보았다. 좌장은 숀코네리가 나오는 '레드선'의 대사라고 했지만, 아마도 '라이징선'이 아닐까 싶다.
한쪽에서는 전공의특별법 도입을 주장할 정도로 수련 과정의 살인적인 스케줄을 지적하는데, 다른 쪽에서는 무리하게 수련을 병행하며 취득하는 의학 석·박사 배출의 문제점을 제기한다.
수련 과정이 힘들어 죽겠다는데, 석·박사 취득할 여력은 되는 건가? 뭔가 좀 모순이 있는 것 같고, 이해가 되질 않는다.
9일 의협 회의실에서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주최로 '임상계열 의학 석·박사 학위 개선방안 연구 워크숍'이 열렸다. 평일 오후라 많은 인원은 아니었지만, 대학교 기초의학 교수들이 참여해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개념 정리가 필요해~~~
아직 국내에서는 임상계열 의학 석·박사의 개념이나 그 과정에 대한 표준조차 만들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참석자들조차 MDPhD(의사 과학자)의 주역할이 임상관련 의학 연구인지, 기초의학 연구인지 혹은 둘 다인지 다소 혼란스러워했고, 이런 혼선은 현행 제도에서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양은배 연세대 교수는 의학분야 학위과정 경로 모델을 설명하면서 "의대를 졸업하면 '의학사'가 되고, 의학전문대학을 졸업하면 '의무석사'가 된다. 이 개념에 따르면 똑같은 교육을 받고 의사 시험을 보는데 의대를 나오면 의학석사를 거쳐(야만) 박사를, 의학전문대학을 졸업하면 대학원 박사과정으로 (바로) 가는 것이 현실"이라고 밝혔다.
의학대학원 설립의 본래 취지와는 다르게, 현재 의학대학원과 의대 과정을 동시에 갖는 많은 대학에서는 커리큘럼의 차이를 두지 않는다.
양 교수는 학위 표기 방법에 대해서도 "A대학의 경우 의대와 의학전문대학원 졸업생을 각각 '의학사'와 '의무석사'라고 표현해 한글로는 다르지만, 영어로는 'Doctor of Medicine'으로 같게 표기한다. 하지만 B 대학은 각각 'Bachelor of Medicine', 'Doctor of Medicine'으로 (다르게) 표기한다"라고 말하고, "지금 학위 표현을 보면 해당자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알 수 없어 정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무분별하게 배출되는 석·박사
양 교수는 흥미로운 과거 기사 자료를 공개했다.
그것은 의학박사 숫자에 관한 과거 자료로 1960년대 말 쯤 우리나라 전체 박사 182명 중 85명이 의학박사였고(1971년 동아일보 기사), 1984년 기준 박사 학위 10,000여 명 중 약 5,000명이 의학 박사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의학박사가 얼마나 흔했는지 알 수 있다.
아주의대 인문사회의학 채수진 교수는 "개인은 자기과시를 위해 간판 위주의 학위를 취득하고, 대학은 경쟁적으로 대학원을 증설한다"고 꼬집고, "학문연구보다는 학위 취득을 주된 목적으로 대학원 과정을 이수하다 보니 개인/사회적 비용과 노력의 낭비를 초래하고, 의학계의 신뢰를 하락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채 교수는 매해 2,000여명의 전공의 석사가 배출된다는 자료를 공개하고, "(전공의 기간중 학위를 받는 것은) 어느 한 쪽으로도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를 초래한다"고 우려했다.
석·박사 배출이 남발되다 보니, 학위자 수준에 대해서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안덕선 한국의학교육평가원장은 이번 워크숍 배경을 묻는 말에 "유럽에서 특정 국가들이 만들어내는 박사 학위가 너무 엉망이라고 보고 있다. (그 주체는) 동아시아하고 인도다. 유럽 내에서도 (표준화가) 필요하지만 겨냥하는 것은 다른 쪽"이라고 밝히고, "PhD란 표기(자격)를 위해 3년 동안 실험실에서 실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앞선 채 교수의 말처럼 인증되지 않은 과다한 임상 석·박사의 배출은 국내외적으로 의학계의 신뢰를 하락시킬 것이다.
연자의 강의가 끝난 후 가진 토론회에서 한 교수는 "교수들은 대학원을 유지하기 위해 전공의에게 대학원을 다니라고 자꾸 강요한다. (석·박사 과정 개선안에 대해) 대학교가 반발할 가능성이 높고, 그래서 지금까지 (개선에 대해) 지지부진했다. 유럽에서 이 문제를 지적하고 나왔기 때문에 이런 계기를 통해 개선해야 한다"고 말하고 "레지던트 껍질 벗겨 먹는 이런 학위제도를 개선하자"고 주장했다.
안덕선 원장은 공적 개념 도입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PhD(박사) 자격을 줄 때는 글로벌적으로 통용되는 관리를 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정말 미래의 과학자를 양성하기 때문에 국가가 부담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안 원장은 "전공의 수련을 병원에서 맡아서 전적으로 하고 있는데, 그것이 너무 폐쇄적이고 기술교육만 강조하다 보니 공통역량(교육)이 전혀 안 들어가고 있다. 대학이 전공의 수련교육에 관여할 필요가 있다. 만약 대학이 충분한 기간에 공통역량 교육을 시킨 후, 전문의를 따는 시점에서 석사학위를 줄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대안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