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가톨릭의대 유진홍 감염내과 교수가 의대정원 2000명 증원을 위해 교수 82명과 카데바 270구가 추가로 필요하다는 고려의대 해부학교실 유임주 교수 등 연구결과를 인용하며 "미치지 않는 한 아무도 이 같은 추정치가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일침을 놨다.
사실상 정부가 추진 중인 급격한 의대정원 증원 정책이 국내 의학교육을 송두리째 무너지게 할 것이라는 취지다.
유진홍 교수는 대한의학회지(JKMS)를 통해 '한국 관료들이 의학교육 커리큘럼을 과소평가하고 있다(Korean Bureaucrats Underestimate the Medical School Curriculum, Taking Anatomy Education as an Example)'라는 사설을 지난 3일 공개했다.
유 교수는 "한국 정부는 현재 3000여명인 의대정원을 2000명 증원해 5년간 총 5000명 증원하겠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현재의 의학교육 인프라에서 정원의 급격한 증가는 교육의 큰 혼란을 야기할 것이 당연한다"고 전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현재 정원이 50명인 의대에 200명의 학생이 배정된다고 가정할 때 해부학실습 과정에서 카데바 1구 당 5명의 학생이 할당되던 것에서 20명의 학생에게 할당돼야 한다"며 "그러나 해부학 실습은 간단치 않다. 인체 구조를 배우는 것은 교과서와 해부학 책을 암기하면 끝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실제로 사체를 만지고 절개하고, 동맥, 정맥, 신경과 장기 등을 교과서 그림과 비교하고 직접 식별해야 한다"며 "이 같은 지식의 집합체는 각 의대생들의 내면에 자리 잡게 되고 향후 실제로 환자를 치료할 때 근본적인 지식으로 작용하게 된다. 카데바 하나에 20명의 학생들이 배정된다면 제대로 된 의학 교육은 어렵다"고 강조했다.
부족한 카데바를 수입하거나 적절하게 의대별로 배분하겠다는 보건복지부 박민수 2차관의 발언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유진홍 교수는 "내가 아는 한 카데바를 수출하는 나라는 없다.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시체 수출입은 중범죄"라며 "박민수 차관은 의대 졸업생이 아니다. 따라서 해부학 교육 뿐만 아니라 사체를 기증한 이들에게도 모욕을 한 것이고 의대 교육과 윤리를 전혀 모르는 발언"이라고 질타했다.
아울러 "이번 한국의학회지에 실린 고려의대 해부학교실 유임주 교수 등 연구를 보면 40개 의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의대정원 2000명을 늘리기 위해선 해부학 교수 82명과 카데바 270구가 필요하다는 결과가 도출됐다"며 "미치지 않는 한 아무도 이 같은 추정치가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No one will think these estimates are feasible, unless one is insane)"고 전했다.
향후 미래 의학교육에 대해서도 그는 "열악한 인프라를 견뎌온 우리나라 해부학 교육이 무너질 수 있다. 진짜 문제는 해부학 교육만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의학 교육은 학생들을 강의실에 빽빽하게 밀어 넣고 주입된 방식으로 강의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국도 1910년 대까지 수준 이하의 의대가 많았다. 그러나 과학적인 근거에 기반한 엄격한 정화 과정을 거쳐 미국은 오늘날 세계 최고 수준의 의학 교육을 자랑한다. 이미 100년도 전에 벌어진 일을 한국 정부는 굳이 되풀이하려하는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