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가 자연치유를 표방하며 운영하는 '안아키 카페'가 최근 소셜미디어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네티즌들은 이 카페 회원들이 자녀에게 간장으로 비강세척을 하는 등의 위험한 행위를 공유하자 아동학대에 해당한다며 경악하고 있다. 현재 카페 가입자 수는 5만 5000명에 달한다.
운영자는 한의사단체의 피부분과 학회장으로 활동하는 한의사 K씨.
이 단체 사무국 관계자는 기자에게 "굉장히 유명하고 (치료를) 잘 하는 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해 카페를 개설하고 '약 안쓰고 아기 키우기' 책을 발간하는가 하면 강연도 활발히 하고 있다.
K씨는 병원이 병을 만들고, 의료시장이 환자를 양산한다고 주장한다. 모두 건강한 아이를 낳았는데 병원과 제약회사 등이 의도적으로 마치 아이가 병을 앓고 있는 것처럼 부모의 시각을 바꿨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햇빛 알레르기가 있다며 햇빛을 피하고 선크림을 바르는 것, 황사와 미세먼지, 꽃가루 때문에 기침이 심해지고 천식 발작이 일어난다며 바람을 피하는 것, 집먼지진드기 알레르기라며 온 집안을 소독하고 틈날 때마다 손 소독을 하는 것을 비판한다.
지구에는 햇빛과 바람과 물이 있고, 이런 것들은 지구의 모든 생명을 살게 하는 근원적인 조건이라는 이유에서다.
K씨는 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치료는 천식, 비염, 아토피가 아니라 '자연치유 기능 마비'라고 주장하며 3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돈이 많으면 한의원에서 해독을 받아 자연치유 기능을 일깨울 수 있도록 하고, 시간이 많으면 아이가 정말 죽을 것 같다고 여겨지기 전까지 무작정 앓도록 가만히 두고, 정성이 많다면 자연 해독력이 있는 물과 바람과 햇빛을 열심히 접촉시키고 발효식을 만들어 먹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주장으로 인해 아이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짊어진다는 점이다.
K씨는 1~3차 의료기관이 있듯이 집은 0차 의료기관이고, 부모가 의사가 돼야 한다며 이를 '맘닥터'라 칭한다. 카페 게시판에 이런 강의를 하고, '거의 의대 수준'인 심화 과정도 있다고 한다.
카페 회원들은 이런 K씨의 활동에 대해 "어느 한의원을 가도 여기 원장님처럼 노력하고 실험해보고 데이터를 가지고 한 사람이 없다"며 K씨가 가르쳐주는 방식을 자녀에게 시도하고 있다.
여기에는 아토피 아동에게 스킨과 로션을 전혀 바르지 않는 일명 '노스킨 노로션'도 있고, 소금물 혹은 재래 간장을 섞은 물로 비강세척을 하고, 해독한다며 숯가루를 물에 타 먹이는 등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이 적지 않다.
한 카페 회원은 자녀가 발버둥치며 싫어해 코 입구에서 간장을 분무한다며 노하우를 묻기도 했다.
K씨는 안아키카페가 백신을 반대하는 모임이 아니며 항생제 및 기타 약물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일명 '안전한 백신'을 지지한다고 하지만 백신 설명서 내용을 충실히 파악하고 따질 경우 실질적으로 접종 가능한 아이가 몇 명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그는 "가만히 둬도 자연스럽게 낫고 어려서 앓을수록 후유증이 적으며 평생 면역이라는 엄청난 보상을 받는 질환들은 백신으로 피하기보다는 오히려 앓는 것이 남는 장사"라며 대표적인 자연치유 질병으로 홍역, 수두, 볼거리를 꼽았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카페 회원들 사이에서는 필수예방접종을 피하거나, 자녀가 수두에 걸린 아이와 시간을 보내 감염되도록 유도하는 일명 '수두파티'를 하기도 했다.
K씨는 기자에게 "소금물이나 재래간장은 0.9% 식염 농도를 맞춰 사용하도록 권장하고 있다"면서 "숯가루 먹이기는 배탈 설사 또는 독소로 인한 장 질환 및 증상에 먹도록 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백신보다 더 좋은 예방법은 건강한 것"이라며 "집밥을 먹이고 적절한 운동도 시키고 과도한 스트레스 상태가 되지 않도록 하고, 몸의 체력과 공생하는 유익한 미생물을 길러야 한다"고 밝혔다.
아토피 장기적 시각으로는 무언가 바르는 것을 일절 금할 것을 권장한다고 했다.
하지만 온라인에서 관련 키워드를 검색하면 가려움을 참지 못해 긁어서 온몸에 피가 나는 아이들의 사진이 쏟아진다. 사람들은 자신의 아이 사진을 올리며 나아가는 단계라도 굳게 믿고 있다.
장폐색 소아환자에게 장 청소를 한다며 소금물 900cc를 며칠간 먹인 사례도 있으며, 아이가 기침으로 호흡 발작 수준이 될 때까지 폐렴을 내버려 두다가 병원에 간 사례도 있었다.
현재 삭제됐지만 한 포털 사이트에 '아이 열이 39도인데 방치하는 아내랑 이혼하고 싶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아이가 3일간 열경련을 일으키는데 아내가 매실과 죽을 먹이고 열이 소화계 문제라며 관장을 시켰다는 것.
결국, 남편이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 가와사키병 진단을 받았고, 의사로부터 열이 안내려간 채로 계속 내버려뒀으면 뇌손상이 올 수도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는 내용이다.
의협 한방대책특위 관계자는 "그동안 단편적으로 예방접종을 하지 말라거나 현대의학 치료를 받지 말라고 주장하는 한의사는 봤지만 이번 사례 같은 건 처음 들어본다"면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이런 행위를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황당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몇 년 동안 보건복지부에 이런 비의학적 행위를 고발해 왔지만 한의학적 원리에 따라 하는 것이어서 처벌할 수 없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면서 "보건당국이 손을 놓고 있어 결국 이런 사건까지 벌어졌다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