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지난 2월 정부의 의료개혁이 촉발한 의정 갈등은 많은 이들의 인생 경로를 바꿔 놓았다. 배장환 전 충북의대 교수(부산 좋은삼선병원 심혈관 중재시술 연구소장)도 그중 한 명이다.
의정 갈등 전까지만 해도 20여 년간 모교인 충북대병원 심장내과 교수로 지역민들의 건강을 책임졌고, 후학을 기르는 데 매진했다. 정년까지 별 탈 없이 이어질 듯했던 그의 삶은 의대증원 2000명을 포함한 정부의 의료개혁으로 크게 흔들렸다.
당시 병원의 보직(공공부원장)을 맡고 있었음에도 충북의대 교수협의회 비대위원장직에 올라 대규모 의대증원을 추진하는 정부와 충북도·충북대에 “근거 없는 의대증원에 반대한다”고 맞섰다. 그는 김영환 충북도지사 앞에서 분노의 일갈을 날리는 등 거침없는 행보 끝에 사태 초기 일찌감치 제출했던 사직서가 수리되며 지난 7월 정든 교정을 떠났다.
메디게이트뉴스는 지난달 26일 배장환 전 교수를 만나 그가 심장내과 의사가 되기까지 겪었던 일들과 이번 사태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배 전 교수는 충북대에서 사직한 후 부산 소재 한 종합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학생과 전공의들을 가르치고 그들이 성장해 의사 동료가 되는 걸 볼 때 느끼는 감정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며 의대 교수로서 가졌던 자부심과 제자들에 대한 애틋함을 표했다.
그는 의정 갈등 사태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진심 어린 사과와 2025년 정원 원점 재논의”가 있어야 해결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아래는 배 전 교수와 일문일답.
과학자 꿈꾸던 학생…우여곡절 끝 심장내과 교수로
-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한 건 언제인가.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생화학과, 미생물학과 등에 들어가서 과학자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시험을 봤더니 예상했던 것보다 성적이 좋지 않았다. 당시엔 지금처럼 의대가 입학 합격선이 가장 높지 않았다. 그래서 그정도 성적으로도 충북의대를 썼으면 붙을 수 있었지만 의대는 쓰기가 싫더라. 재수를 하려다가 일단 미생물학과에 원서를 썼더니 장학금을 줘서 당시에 3만~4만원 정도만 내고 입학했다. 수업을 듣는데 내가 생각했던 미생물학과는 내용이 너무 달랐다. 결국 당시 인기가 있었던 연세대 생화학과나 고려대 유전공학과를 노리고 서울에 올라와서 재수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운이 좋았던 건지 나빴던 건지 내 옆에 앉아있던 아이들 중에 의대를 지망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중에 촌에서 올라온 나를 많이 도와줬던 친구가 있었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서울대병원의 유명 교수 출신인 친구였는데, 어느 날 ‘너는 뭐 할 생각이냐’고 묻더라. 내 생각을 말했더니 ‘네가 하려는 건 기초의학이구나’라며 의대를 추천했다. 그래서 의대를 목표로 하게 됐다."
- 기초의학을 꿈꿨었는데 지금은 임상 의사로 일하고 있다.
"본과 2, 3학년 때 의대 생화학 교실 교수님 실험실에서 방학 내내 일하면서 기초의학자로서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우리 집에서 하숙 비슷하게 하던 친한 집안의 누나가 다른 의대에서 기초의학 교실을 몇 년간 떠돌다가 결국 조교 발령을 받지 못하는 일이 있었다. 우리 아버지는 화가 크게 나셨고, 누나의 사례를 보더니 나에게도 기초의학은 하지 말라고 하셨다. 기초의학을 하려다 막판에 방향을 틀었던 셈이다."
- 갑자기 진로가 바뀌어서 혼란스러웠을 것 같다.
"기초의학을 하려다 어그러지고 나니 눈이 뒤집혔다. 그냥 성형외과 의사가 돼서 돈 많이 벌고 주말엔 구순구개열 아이들 무료로 수술해 주면서 살아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의대 졸업 성적도 남자 중에는 1등이었다. 그런데 인턴 스케줄이 꼬였다. 인턴은 1년 동안 여러 과를 돌게 되는데, 내과·외과·응급실 등은 2~3번 도는 경우도 있어서 못가는 과도 생긴다. 공교롭게 내 스케줄이 그랬다. 내과 3개월 정도에 성형외과 스케줄은 없었다. 인턴 때 성형외과를 돌아야 교수들한테 눈도장을 찍을 수 있는데, 동기들과 스케줄을 바꾸려고도 해봤지만 여의치 않았다.
그렇게 인턴을 돌다가 외과보다는 내과가 내 성격과 맞다는 걸 알게 됐다. 처음에는 수술하는 외과 의사가 멋있어 보였는데, 막상 인턴을 돌다 보니 외과 의사들은 수술장에서 살고 환자들과 교감할 일이 거의 없더라. 반면 내과는 하루 종일 병실에서 환자들과 얘기하는 게 일이었다. 썰을 푸는 걸 좋아하는 내 성격에 더 맞았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환자가 죽을 때 곁을 지키면서 ‘선생님,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것도 외과 의사가 아니라 내과 의사였다.
내과 전공의 생활을 시작하면서는 또 다른 꿈이 생겼다. UN, WHO(세계보건기구) 등에서 의료 분야 전문가로 일하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전문의 자격은 물론이고 예방의학이나 보건행정 관련 경력, 외국어 능력 등이 필요했다. 내과 전문의를 따고, 외국어 능력을 기르려고 정부의 국제협력단 사업을 통해 페루에 가서 국제협력의사로 일했다. 그런데 2000년 의약분업 사태를 보면서 의료관리학, 예방의학에 대한 정이 떨어졌고, 결국 내과계 임상에서 나를 많이 챙겨주셨던 교수님을 따라 심장내과 택했다."
- 서울대병원에서 전임의 생활을 하고, 경희대병원에서 교수로 1년간 일하다가 2005년 친정인 충북대병원으로 돌아왔다. 보통 서울에 한 번 자리를 잡으면 눌러앉는 경우가 많은데 다시 충북대로 돌아온 이유는 뭐였나.
"어느 날 모교 교수님께 병원에서 처음으로 임상 교수를 뽑는다고 연락이 왔다. ‘배 선생, 여기로 오라는 건 아니고 얘기도 안 해주고 다른 사람 뽑으면 나중에 서운해할까봐 연락했어’라고 하시더라. 연락을 받고 이틀 동안 밥도 못 먹고 고민하고 있는데 아내가 ‘모교에서 불러줄 때는 가야 한다’고 생각을 정리해 줬다."
그렇게 돌아간 모교 병원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건 1년 중 절반가량에 달하는 온콜 당직이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동료 교수와 합심해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 유치에 성공하는 등 충북대병원 심장내과의 기틀을 다지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의정 갈등 속에 충북의대 비대위원장으로 투쟁의 선봉에 섰다가 지난 7월부로 사직하게 됐다.
정부가 교수들 자부심 짓밟아…정치 입문? 성향에 안 맞아
- 의정 갈등 상황에서 김영환 충북도지사와의 간담회에 나가 일갈하는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충북도에서 먼저 연락이 와서 잡힌 간담회였다. 처음에는 언론에 비공개로 한다고 했는데, 우리가 반대했고 기자들이 많이 왔다. 내가 성질을 내기 전 15분 정도 앞에 영상이 없었는데, 카메라가 쫙 깔려있으니 김영환 지사가 충북대병원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충북의 의료환경이 나쁜데 그 이유가 충북대병원이 힘이 없어서 그런 거고, 그걸 극복하기 위해 의대에 지원을 많이 하려 하는데 의대 교수들이 협조하지 않는다는 식의 얘기였다.
그런데 김영환 지사가 충북 의료상황에 한 얘기가 내가 예전에 김영환 지사에게 해준 얘기를 그대로 한 것이었다. 당시에 내가 도와 청주시에서 고위험 산모센터와 신생아센터에 조금 지원하는 것에 더해 의대 교수들을 구할 수 있도록 인건비 지원을 해달라는 얘기를 몇 번인가 했는데 무시당했다. 그런데 김 지사가 그런 얘기를 하길래 30초 정도 고민하다가 이대로 듣고만 있으면 그 부분만 잘라서 언론에 나갈 것 같아서 소리를 지른 것이었다."
- 지난 7월부로 20여 년의 의대 교수 생활을 끝냈다.
"학생 시절부터 본 충북의대 동문, 후배들이 전공의, 교수로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게 좋았다. 새벽 3시까지 후배 의사들을 혼내고 어르면서 환자를 살려놓고 아침 6시 반에 같이 150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마시면서 해 뜨는 걸 보고 있으면 기분이 묘했다. 그때부터는 힘들고 뭐고 논리가 필요 없어진다.
7~8년 전까지 내가 혼내면서 가르치던 친구들이 어느새 교수 동료가 되고 나보다 더 잘하는 분야가 생겨서 나를 가르친다. 처음에는 기분이 별로인데 나중에는 흐뭇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후배 교수들에 대한 칭찬을 전해 들을 때마다 뿌듯하다. 젊은 교수 때는 그런 부분이 크게 와닿지 않는다. 솔직히 귀찮을 때도 있고.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젊은 의사들을 교육한다는 게 우리의 미래라는 걸 확신한다."
- 교수 생활을 끝내면서 가장 아쉬운 게 더 이상 제자들을 키울 수 없다는 점인가.
"맞다. 개원해서 나보다 돈 잘 버는 동기들과도 가끔 부부 동반 여행을 가는데, 그럴 때마다 친구들이 ’네가 모교에 있어서 다행이다‘란 얘기도 해준다. 의대 교수들은 같은 직급에서 가장 반자본적인 소위 '뽕'을 맞은 사람들이고 그런 가오(자부심)로 살아간다. 그런데 이번 사태로 그런 가오까지 없어져 버렸다."
- 정부와 맞서다 의대 교수직까지 내려놨다. 가족들의 걱정이 많았겠다.
"아내는 이번 사태에서 내 결정에 대해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면 된다. 우리는 굻어 죽지는 않는다‘라며 내가 의사 면허를 잃으면 본인이 간호사로 다시 일하면 된다고 하더라. 사실 나는 표면적으론 강하고 독립적으로 보일지만, 실제론 매우 의존적이다. 반면에 아내가 오히려 강단 있고 독립적인 스타일이다."
- 이번 사태를 겪으며 직접 정치에 뛰어들 생각을 해보진 않았나.
"정치인이 갖춰야 할 피지컬(신체적 능력)이 3가지가 있다고 하더라. 자연스럽게 거짓말이 술술 나올 것, 욕을 먹어도 낯빛 변화가 없을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잠을 잘 잘 수 있어야 한다. 정치인들은 시장에 가서 연설을 마치고 흥분된 상황에서도 차에 타자마자 바로 잘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의사들은 그게 안 된다. 환자들이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질 수 있어서 밤에 잠도 잘 못 잔다.
여러 사람들과 인간적 관계를 맺는 것에 익숙하지 않기도 하다. 소수의 사람들과 마음을 주고받고 그런 건 괜찮은데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나누는 건 익숙하지가 않다. 사람들 앞에선 항상 무장을 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그러다 집에 돌아가면 무장 해제가 되고 3~4kg 정도는 가벼워지는 기분이 든다."
- 다시 의대로 돌아갈 생각도 있나.
"지금 병원도 규모가 크고 좋은 곳이지만 언젠가는 의대에 돌아가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학생과 전공의를 가르치지 못한다는 게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모교 복귀부터 인프라가 더 좋은 다른 대학병원으로 가는 방안까지 여러 생각을 하고 있다. 물론 당장은 아니다. 내가 있는 동안은 지금 병원이 업그레이드되는 데 적극적으로 기여하려 한다."
정부·여당, 최악의 시나리오 향하는 중…대통령 사과가 해결 물꼬 될 수 있어
- 의료계 일각엔 의대 교수들이 자리를 박차고 나오면 현 사태가 더 빨리 마무리될 것이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그건 아니라고 본다. 나는 지금도 의대에서 일하고 있는 교수들에게 미안한 심정이 가장 크다. 두 번째로 그분들이 버텨서 그나마 종합병원도 버티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이번 사태로 대학병원들의 진료 역량이 줄어드니 종합병원들의 매출이 올랐다. 하지만 이제는 종합병원도 한계에 부닥친 상황이다. 본인들 수준에서 감당할 수 없는 중증환자들을 대학병원으로 보낼 수가 없게 됐기 때문이다. 종합병원 입장에서도 감당 가능한 환자 20명을 더 받으려고 하다가도 '감당이 어려운 환자를 1명 받았다가 그 환자가 잘못되면 어떡하지'라는 현실적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물론 최근 정부가 의평원(한국의학교육평가원)에 손을 대고 학생을 강제로 승급시키겠다고 하는 데 대해서는 교수들이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동안 계속 문제 제기해 왔던 의대 교육의 근간이 무너지는 것이고, 우리의 자부심을 짓밟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때도 교수들이 가만히 있으면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 의정 갈등 향후에는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하나.
"지금은 정부와 여당이 본인들이 이겼다는 꿈에 취해있다. 3~4개월 동안 그 꿈을 잘 즐기길 바란다고 전하고 싶다. 우리는 (이대로는 안 된다고) 얘기할 만큼 얘기했고 정부·여당은 그럼에도 최악의 시나리오를 향해 가고 있다. 이제는 골든타임도 지나갔고, 본인들도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 거다. 대통령이 마음을 바꾸거나, 극단의 경우 대통령의 부재 상황이 되지 않는 한 해결이 안 될 것 같다."
- 해결의 실마리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
"대통령의 진심 어린 사과만 있어도 상황은 조금 달라질 수 있다. 대통령이 사과하면 복지부도 못 이기는 척하면서 얼씨구나 하고 되돌릴 수 있다. 지난 2000년 의약분업 사태 당시에도 김대중 대통령의 사과가 사태 해결의 실마리가 됐다. 물론 그 이후에도 의약분업 사태는 8개월 지나서야 정리됐다. 이번 의정 갈등도 대통령의 사과가 해결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될 수 있다."
- 이견이 가장 큰 부분이 2025학년도 의대정원이다. 정부는 이미 수시 원서 접수가 마무리돼 2025년 정원 조정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2025년 정원을 건드리면 학생이나 학부모들이 소송을 걸 수 있다고 한다. 아직 의대에 완전히 합격한 것도 아닌데 무슨 소송인가.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원점으로 돌리고 수시 원서도 다시 접수할 수 있다. 못 할 게 뭐 있나. 그리고 수시 원서를 낸 학생과 학부모는 무섭고 지금 대학과 병원을 떠난 의대생, 전공의 수만명은 무섭지 않다는 건가."
- 정부가 필수·지역의료를 살리겠다며 시작한 일이 정반대의 결과를 내고 있다. 실제로 지역에서 필수의료를 담당한 의사로서 필수·지역의료를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첫 번째로 정부가 지역완결형 의료체계를 위해 지역 내에 압도적인 의료기관이 만들어질 수 있게 과감하게 지원해야 한다. 두 번째는 환자가 권역 밖의 병원으로 가거나 상급종합병원으로 가는 것에 대한 결정권을 의학적 지식을 가진 의사에게 줘야 한다. 환자가 자유롭게 병원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선 서울에서 아무리 수련을 잘 받은 의사가 와도 지방병원에선 제대로 일을 할 수가 없다. 환자들이 다들 서울 대형병원으로 가버리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방에 만든 압도적 의료기관이 서울 병원들 못지않은 의료 질을 보여주고 있다는 걸 잘 평가하고 보여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