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학의 아버지인 히포크라테스는 기원전 3세기에 "모든 병은 장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이 말이 과연 맞을까?
파킨슨병은 뇌흑질의 도파민 분비 신경세포가 서서히 파괴되면서 도파민 부족으로 몸이 원하는 대로 정교하게 움직이지 못하는 운동장애로 진단되는 뇌질환인데, 이 파킨슨병은 장에서 시작됐을까?
우리 몸의 신경계는 중추신경계와 말초신경계로 나눠지는데 중추신경계는 뇌와 척수로 구성되고, 말초신경계는 위장이나 소장과 같은 소화기관과도 연결돼 있다. 두 개의 신경계는 미주신경(迷走神經, Vagus Nerve)을 통해 복부에서 뇌간까지를 연결한다.
힘들 때 달콤한 음식을 먹으면 왠지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마음에 스트레스가 쌓이면 장에 탈이 나서 배가 아프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장은 '제2의 뇌'라고 말한다. 잘 어울리지 않을 듯한 장과 뇌가 실은 연결돼 있음을 보여주는 실험 결과들이 최근 몇 년 새 잇따르고 있다.
이러한 연구들을 일컫는 전문 용어도 생겼다. '장-뇌 연결축(gut-brain axis)'이라는 개념은 장과 뇌 사이에 생체신호를 주고받는 '정보 고속도로'가 존재함을 말해준다.
지난해 말 캘리포니아 공대(Cal Tech: California Institute Technology) 연구자들이 동물 실험에서의 결과를 근거로 장내 미생물(세균)이 파킨슨병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보고했다(Sampson et al., Gut Microbiota Regulate Motor Deficits and Neuroinflammation in a Model of Parkinson’s Disease., Cell, 2016).
장내 세균이 파킨슨병을 유발하거나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주된 실험 결과인데, 연구자들은 알파시누클레인(aSyn: alpha-synuclein)이라는 단백질을 과발현한 파킨슨병모델 쥐를 이용했다. 장내 미생물을 없앤 이른바 '무균 쥐'와 장내 미생물을 지닌 '보통 쥐'로 나눠 유전적으로 동일하게 aSyn을 과발현한 후 장내 미생물이 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관찰했다.
장내에 박테리아가 없는 '무균 쥐'는 파킨스병의 증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거나 미미했으나 장내 미생물을 가진 '보통 쥐'에선 기대되는 파킨슨병 증상들이 관찰됐다. 또한 aSyn을 과발현하는 '무균 쥐'에 일반인과 파킨슨병 환자의 장내 균을 각각 집어 넣어 준 경우, 파킨슨병 환자의 장내 균을 넣어 준 쥐가 일반인의 것을 넣어준 쥐보다 더 심하게 파킨슨병 증상을 나타내는 것을 관찰했다.
이런 실험적인 결과는 동일한 유전적인 배경이지만 장내 미생물이 뇌 기능에 관여해 파킨슨병의 증상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지난달 '선천성 면역(Innate Immunity)'이라는 저널에 발표된 논문도 같은 맥락이다(Barbut D., Zasloff M.A. et al, A Role for Neuronal Alpha-Synuclein in Gastrointestinal Immunity, Innate Immunity, 2017). 파킨슨병 환자에게 나타나는 뇌손상은 잘못 접혀서 서로 엉클어진 aSyn 이란 단백질 때문이다.
aSyn가 평소에는 핵심적인 면역세포를 동원해 장을 침입자들에게서 보호하는 착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만성적인 세균성 장염에 걸린 환자의 경우 장벽의 신경에는 세균을 없애려고 몰려든 aSyn가 넘쳐나는데, 결국에는 그것들이 뇌로 이동해 파킨슨병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αSyn이 실제 장내 면역방어에 일익을 담당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조지타운 대학의 자슬로프 박사가 이끄는 연구진은 파킨슨병의 초기증상은 성인이 될 때까지 나타나지 않기에 어린이 42명을 대상으로 9년 동안 십이지장의 생검(biopsy)을 수집하고 분석했다.
십이지장은 장의 첫 번째 부분으로, 평상시에는 장벽신경에서 극소량의 αSyn가 생성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복통, 설사, 구토 등의 위장관 증상을 보이는 어린이들은 현미경으로 관찰한 바에 의하면 장염증상도 수반됐다. 연구진은 장염에 걸린 부분의 신경에서 αSyn 단백질을 발견했는데, 염증이 심할수록 더욱 많은 αSyn이 발견됐다. 따라서 연구진은 αSyn이 장염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αSyn이 염증의 원인인지 결과인지는 알 수 없었다. 연구진은 이 의문에 답하기 위해 장이식을 받은 후 흔한 장내병원균인 노로바이러스로 인한 세균성 장염에 걸린 14명의 어린아이와 두 명의 성인에게서 채취한 생검 조직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대부분의 경우 염증이 진행되는 동안 αSyn의 발현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감염 전후와 감염이 진행되는 동안 생검을 받은 사람들의 경우 9명 중 네 명은 감염이 진행되는 동안에만 αSyn가 나타났고, 그 전에는 αSyn가 발견되지 않았다. 나머지 다섯 명은 노로바이러스에게 감염되기 전에 αSyn가 발견됐는데, 이에 대해 자슬로프 박사는 "환자가 이미 앓고 있던 바이러스 감염증에 대한 반응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αSyn이 장에서 수행하는 면역기능과 피킨슨병 사이에는 어떤 관련성이 있을까? 연구진은 αSyn의 생성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여러 개 보유한 사람들은 αSyn이 과도하게 생성돼 파킨슨병에 걸릴 수 있다고 판단했다. αSyn이 과도하게 생성되면 인체의 자정작용을 뛰어넘어 응집체를 형성해 파킨슨병을 초래할 수 있다.
연구진은 이 같은 유전적 요인 말고도 후천적으로 파킨슨병의 발병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는 상황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급만성 세균감염을 자주 앓을 경우 αS가 크게 증가해 파킨슨병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뇌와 장은 발생학적으로 같은 배아세포에서 출발했기에 직접 연결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최근의 연구를 통해 장-뇌 연결축(the gut-brain axis)에서 장내 미생물과 세포들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이 새롭게 밝혀지고 있다.
파킨슨병과 매우 관련이 깊은 단백질 중 하나인 αSyn이 장에서 면역반응을 유도하기에 앞으로 파킨슨병과 장의 연관성에 대한 새로운 연구결과들이 쏟아져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특히, 우리 나라 바이오텍인 에이비엘바이오(ABL)가 이중항체로 디자인해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한쪽은 αSyn이 서로 엉켜 나쁜 작용을 하는 것을 막아주고, 다른 한쪽은 뇌에 이중항체가 30% 이상 통과하도록 디자인했다.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부분이라 어떻게 진행되는지 주목해볼 만하다.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의 약 80~90%가 장에서 온다고 한다. 장이 건강할 때 더 많은 세로토닌이 분비돼 우리의 뇌도 활발하게 움직이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은 아닐까?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모든 병은 장에서 시작된다"는 히포크라테스의 말을 다시 새겨들어야 한다. 장을 건강하게 하는 음식과 좋은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