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새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지방 의과대학 유치 움직임에 다시 불이 붙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지역 의대 신설에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이 같은 움직임이 실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더불어민주당 전남 순천을 소병철 의원은 오늘(27일) 오후3시 "전남 30년 숙원을 풀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전남도 의과대학 유치 위한 국회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국회와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하는 '전남도 동남권 의대 설립추진위원회'의 행보다.
토론회에 주최자 명단을 살펴보면 소병철 의원과 함께 공동주최로 전남도와 순천시, 국립순천대학교가 이름을 올렸다. 앞서 전남도는 2020년 '전남 도내 의대유치 공동협력 협약서'까지 발표하며 공동 유치추진위원회를 발족했다. 전남도는 도내 과도한 경쟁을 지양하고 목포와 순천 등 지역에 공공의대가 유치될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여수, 순천, 광양, 곡성, 구례 국회의원 후보들은 전남 동남권 의과대학 설립공동추진위원회를 결성해 의대 설립을 공식 공약으로 발표했다.
협약식 당시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도민의 생명과 건강은 무엇보다 중요하니 안정적인 의료 인프라와 수준 높은 의료 서비스를 확충 제2, 제3의 코로나를 대비해야 한다”며 “모든 지역 역량을 한방향으로 모아 도내 의과대학 유치에 앞장서 줄 것”을 당부했다.
이날 토론회에선 그동안 전남권 의대 설립을 위해 준비해왔던 연구용역 결과들이 대거 발표된다. 전남권 의대 설립추진위가 발족된 이후 의대 설립의 명분이 될 수 있는 구체적인 통계자료가 발표되는 것은 처음인 만큼 상당한 파장도 예상된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이태진 교수가 '전남권 의대 설립 타당성 연구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고 순천대 생물학과 교수(순천대 의대 설립 추진단장)는 전남도 의료 취약성 분석 및 의대 설치 방안 연구 결과'도 공개한다.
의대신설론, 매해 지역표심 잡기용 선거전략으로 활용?
그동안 지방 의대 유치에 가장 여념이 없는 이들은 전라권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이다. 이들은 '의대신설론'을 지역 표심 잡기용으로 매번 선거와 국정검사 등에서 주요 이슈로 부상시키고 있다.
지난 6월 지방선거 때도 여지없이 전라권에선 거의 모든 후보들이 의대 설립 공약을 들고 나왔다.
당시 전북 지역 윤승호 남원시장 후보가 공공의대 설립을 공약한데 이어 전남 지역에서도 박홍률 목포시장 후보, 장만채‧손훈모 순천시장 후보 등이 모두 의대 설립을 공약했다. 대부분의 후보들이 의대 설립을 약속하고 있는 만큼 전라권에선 선거에 나오려면 공공의대 설립 공약 하나는 꼭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정당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앞장서 의대신설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동안 전북 전주와 전남 목포를 지역구로 둔 김성주 의원과 김원이 의원이 중심이 돼 의대 신설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김원이 의원은 의대 설립을 추진하기 위해 '의정협의체 패싱론'까지 언급하며 가장 강경하게 의대설립을 압박하고 있다. 의정협의체 논의가 지지부진하다면 의대가 없는 지역부터 일단 의대 설립을 추진하자는 게 그의 견해다.
민주당 이외 20대 국회 때는 정의당 전남도당 위원장을 지낸 윤석하 의원이 국립목포대 의과대학 설립을 위해 예비 타당성 조사 용역 예산 3억원까지 확보한 적이 있다. 현재는 국민의힘 소속이 된 이용호 의원(전북 남원·임실·순창)도 줄곧 폐교된 서남의대 정원을 활용해 남원에 공공의대를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해오고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에선 강기윤 의원이 가장 활발한 지방 의대 설립 예찬론자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여당 간사이기도 한 그는 지난 2020년 '국립창원대학교 의과대학 설치에 관한 특별법안'을 직접 발의하고 창원 시장에 출마하면서 7대 공약 안에 창원의대와 종합병원 설립 추진을 포함시키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서 의대 신설 추진 미지수…부실 의대 재현 우려도 여전
반면 윤석열 대통령이 그동안 지역 의대 신설에 그닥 달갑지 않은 반응을 보여왔다는 점에서 의대 신설 추진이 탄력을 받을지는 미지수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인 지난해 12월 재경광주전남향우회 간담회에서 "의대를 신설하기 보다 서울의대가 보라매병원을 운영하는 방식으로 전남의대가 명문이니 전남의대 분원을 여러 곳에 만들어 국가가 지원하는 방법은 어떤가"라고 언급했다.
해당 발언이 나오자 김원이 의원은 자신의 SNS에 "바보야, 문제는 의대신설이야'라는 글을 올려 강하게 비판하면서 사건이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해당 발언은 지역 의대 신설을 바라보는 현 정권의 입장을 잘 보여준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도 올해 2월 '열정열차'를 타고 전남을 방문했을 당시 "남원, 순천 등 여러 지역에서 지역 의대 설립요구가 많은 것을 안다. 공공의대가 별도로 존재하면 지속가능성이나 지역 연계성이 떨어질 수 있다. 특정 지역에 거론되는 공공의대 방식이나 특정 대학교를 열거하는 방식에 유보적"이라고 사실상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이때도 김원이 의원은 "국민의힘과 윤석열 후보가 대한의사협회 눈치를 보느라, 지역 간 의료격차 해소, 전남권 의대 설립에 대한 전남도민의 염원을 내팽개친 것이 아닌가"라고 가장 빠르게 반박 입장을 냈다.
동시에 의료계는 과도한 공공의대 유치 경쟁과 섣부른 정책 추진으로 인해 부실 의대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코로나19 안정화 이후 논의하기로 한 의정합의문도 다시 이슈로 떠올랐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권성택 명예회장은 "대책 없이 다시 공공의대만 신설해 놓으면 지역의사가 배출될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됐다. 이들을 제대로 교육시킬 수 있는 인프라가 없는 상태에서 의대부터 지어놓으면 폐교된 서남의대 사태가 다시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 박수현 대변인은 “의대 신설 문제는 의정협의체를 통해 재논의하기로 했지만 민주당에서 먼저 약속을 지키지 말자고 당당히 언급하고 있다. 코로나19가 끝나기 전까진 의정협의체 재논의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여한솔 회장도 "의정합의문에 코로나19 안정화 이후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의대 신설을 갖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계속 말장난을 하는 행위에 대해선 대응할 가치가 없다"고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