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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환자들 항암제 급여화안돼 절망하는데…탈모 치료제 급여화 공약이 잘못된 이유

    [의대생 인턴기자의 생각] 무분별한 급여화는 건보 재정 지속가능성 담보 불가

    기사입력시간 2022-01-07 12:26
    최종업데이트 2022-01-25 10:52

    암환자들은 정부의 신포괄수가제도 변경의 완전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사진=담도암환우회

    [메디게이트뉴스 류지연 인턴기자 차의대 의학전문대학원 본1]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탈모 치료제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것을 공약으로 검토 중이라고 밝혀 논란이 되고 있다. 이를 기회로 삼아 다한증, 난자동결 시술, 노안 치료용 안약 등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을 호소하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들은 생명을 위협받는 암 환자들을 고려해봤을 때 건강보험 적용의 우선순위가 높지 않다. 

    건강보험 적용 우선순위가 중요한 이유 

    우리나라 수가 제도를 간단하게 공식으로 표현하면 '(기본)행위별수가제+일부 입원서비스에 대한 포괄수가제+정액수가제'다. 특히 포괄수가제는 7개의 질병군을 대상으로 시행하며, 입원비가 미리 정해져 있는 방식이다.

    포괄수가제의 단점으로 우려되는 과소 진료를 극복하기 위해 신포괄수가제가 2009년부터 시범사업으로 도입됐다. 특히 2019년에는 신포괄수가제에 4대 중증질환인 암, 뇌, 심장, 희귀난치성질환이 포함돼 고액의 약제에 대해서도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바뀌었다.

    문제는 2019년에 신포괄수가제 시범사업 병상을 대폭 늘리면서 발생했다. 2군 항암제처럼 고가의 약제를 사용하는 환자의 수 자체가 늘어나면서 건강보험 재정이 부담해야 할 금액이 커졌기 때문이다.

    2021년 10월 13일 정부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해 2022년부터 2군 항암제에 대해 전액비포괄 방식을 적용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2 군 항암제로 치료를 받던 기존 환자들은 “생존권과 생명권을 위협받고 있다”며 제도 변경을 요구하며 나섰다.

    비싸진 항암제, 암 환자들은 절망

    2군 항암제란 최근에 새롭게 개발된 항암제를 뜻한다. 특히 환자 개인 맞춤형 유전자 치료제의 경우 연구개발 비용 외에도 개별 맞춤형 유전자 전달 및 조작 과정에 상당한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약값이 비싼 편이다.

    예를 들어 면역항암제인 키트루다가 1차 치료제로 사용될 경우 5%만 본인부담이 적용돼 30만원이지만, 2차 치료제로 사용될 경우 100% 본인부담으로 변경돼 600만원이 된다. 이렇듯 20 배나 차이나는 금액을 여러 번 부담해야 하는 암 환자의 입장에서는 올해부터 적용되는 변경된 신포괄수가제가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일 것이다.

    "기존 암 환자들 중 현재 1차 표준 항암 치료를 받다가 내성이나 약 부적응 등의 이유로 내년에 면역항암제를 사용해야 하는 환자들도 있을텐데, 그런 환자들은 혜택을 받을 수 없어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암환자단체 관계자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또한 키트루다의 효용성은 연구를 통해 이미 증명됐음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 재정을 이유로 급여화를 승인하지 않고 있다. 이렇게 4년이 넘도록 키트루다는 심평원의 암질환심의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2021년 7월에서야 다음 단계인 약제급여평가위원회 논의로 들어갔으나 아직까지 별 다른 진척은 없는 상태다.

    건강보험 재정이 어떻길래 항암제 급여화 어렵나 

    현재 대한민국은 출생신고를 한 모든 국민에게 국민건강보험 가입을 강제하고 있다. 그 덕분에 우리나라에서는 감기 같은 가벼운 질환으로 병 의원에서 진료를 받아도 본인 부담액이 그리 크지 않다.

    건강보험의 재원은 국민이 부담하는 보험료에 정부지원금 약 20%을 더해 구성된다. 재원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보건복지부가 보험 급여의 범위와 우선순위를 정해 운영하고 있다. 의료서비스 이용자는 국민인데, 진료비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청구하는 시스템인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국민은 자신의 의료이용비에 대해 실제보다 작게 평가하는 경향이 생긴다.

    2019년 조세재정연구원의 ‘건강보험 장기재정전망 모형 검증 및 개선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2065년에는 건강보험 재정 총지출이 올해의 11 배에 해당하는 754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에 달하고 있다. 2020년 기준으로 건강보험 가입자에게 부과한 건강보험료는 63조1000억원이고, 같은 해에 부과된 근로소득세는 40조9000억원이며, 법인세는 55조5000억원이다. 보건복지부가 보장성 강화대책 수립 당시 계획한 수준인 건강보험료 인상률 3.20%를 적용할 시 2065년 지출 추정치인 754조원은 감당하기 힘들다.

    즉, 미래 세대는 수입의 상당한 부분을 건강보험료로 지출하게 돼있다는 뜻이다. 과도한 조세 부담은 경제적 어려움 가중을 낳고, 이는 결혼 기피와 저출산으로 이어져 국가의 지속가능성마저 위협할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도, 인구학적으로도 성장하는 국가가 아니라는 점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선순위를 두지 않고 다수를 위한 보장성 강화나 미용 시술의 급여화, 혹은 임상적 근거가 부족한 한약재의 급여화 등에 건강보험 재정을 낭비하는 것은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지 않은 매우 근시안적인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예비 의사로서 국민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건강보험 재정이 꼭 필요하고 급한 환자들을 위해 쓰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