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디지털 헬스케어를 비롯한 의료기기산업을 ‘제2의 반도체’로 키워내기 위해 인재육성, 인허가 기준 완화 등 정부의 전폭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학계∙산업계의 의견이 나왔다.
2020년 기준 글로벌 의료기기 시장 규모는 약 560조원에 달한다. 그 중에서도 수요가 높아지고 있는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 규모는 125조원으로 2026년엔 75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연평균 29.5%의 고속 성장이 점쳐지는 유망 분야다. 전 정부는 물론 윤석열 정부에서도 차세대 먹거리로 의료기기산업을 주목하는 이유다.
21일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는 국민의힘 서정숙 의원·더불어민주당 고영인 의원 주최,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동국대의료기기산업학과 주관으로 ‘의료기기산업의 미래와 정책’ 심포지엄이 열렸다.
기업 수요 비해 인력 부족...연구개발부터 시판까지 전주기 인력 양성 필요
이날 발제자로 나선 동국대 의료기기산업학과 김성민 교수는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이 개별 제품의 국내 내수 부진, 해외 현지화 과정에서 어려움 등으로 난관에 봉착해 있다고 지적했다.
해결책으로는 국내외 대기업과 국내 의료기기 기업 간 M&A 지원 등 동반 진출을 통한 현지화, 강점 분야에 대한 기술 표준화 지원에 기반한 글로벌 니치 시장 공략 등과 함께 약점·위협 분야 대응을 위한 산업계 맞춤형 인재 육성 등을 주문했다.
김 교수는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경험 등 시장의 빠른 변화에 대한 인식과 대응이 부족하고, 브랜드 인지도와 글로벌 네트워크가 미흡하다”면서도 “가장 큰 문제는 기업의 수요에 비해 인재가 부족한 점”이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 3월 산업통상자원부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디지털헬스케어 분야에 근무하고 있는 산업기술인력은 크게 늘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률은 5%를 상회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김 교수는 의료기기 산업 분야 인력 양성에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서 반도체 산업 인력 양성을 챙기고 있는데, 의료기기 산업 분야에 대해서도 이에 못지 않은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전주기 R&D 인재 육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R&D부터 시험평가, 임상시험, 인허가, 보험등재, 시판까지 각 단계별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길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규제과학∙기술표준화∙사업화 인재 육성에 대한 지원과 규제 완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게 김 교수의 의견이다.
그는 구체적으로 대학운영 규정 등을 완화해 디지털헬스케어 규제과학에 대한 특성화 교육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봤다. 또한, 핵심기술 표준화 인재양성을 위한 대학과 의료기기 유관기관 간 전략적 연계, 전주기형 핵심인재 육성을 위한 교육부·복지부·식약처 등 범부처적 지원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보험상한가 한시적 10% 이상 인상...인허가 장벽 낮추고 예방·건강관리 육성
산업계는 먼저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국 주요도시 봉쇄, 인플레이션 등 여러 외부 요인으로 인해 위기에 처한 기업들에 숨통을 틔워줄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의료기기협회 정책제안 TF팀 소속인 씨젠 김수영 차장은 “원유 및 원자재 가격이 폭등한 것은 물론이고, 팬데믹으로 줄었던 운송편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운송 비용과 물류 지연 문제도 있다”며 의료기기의 보험상한가를 한시적으로 10% 이상 일괄 인상해 줄 것을 요청했다.
김 차장은 의료기기산업 발전을 위해 필요한 사안들도 제안했다. 특히 인력 확보의 중요성을 가장 먼저 언급했다. 전주기별 전문가 공급체계와 함께 전국 의공학과, 대학원, 해외 유입 의료기기 전문인력 등의 데이터 베이스 구축을 제시했다. 첨단의료기기, 소프트웨어, 인공지능(AI), IVD 개발 종사자들의 전문성 향상을 위한 인재원 설립도 주문했다.
여전히 높은 인허가의 장벽을 낮춰달란 주문도 나왔다. 김 차장은 “미국, 유럽과 비교했을 때 국내 식약처도 규제가 약하지 않다. 오히려 더 엄격하게 느껴지는 부분들도 있다”며 “식약처가 안전성을 가장 중시해야 되는 기관이기 때문에 엄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산업계와 같이 방안을 모색하면 인허가 장벽을 낮출 수 있는 운영의 묘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의료기기산업의 패러다임 변화에 발 맞춘 제도 개선을 주문했다. 디지털 헬스케어기기 등이 사후치료보다는 예방·건강관리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이를 활성화 하기 위해 보험·허가 제도 등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새로운 기술의 도입을 위해선 비급여가 유용할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하며, 지난 정부의 문재인케어로 업계의 타격이 있었다는 점도 언급했다.
김 차장은 ”지난 정부의 보장성 강화 정책은 산업계에 큰 영향을 줬다. 기존에 비급여로 잘 사용되고 있던 것들이 급여화되며 수익구조가 나오지 않아 퇴출되는 사례들이 있었다“며 ”비급여가 무조건 나쁜게 아니다. 신기술이 도입될 때는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다. 산업계의 발전을 같이 생각하며 접근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복지부 "의료기기산업 육성 5개년 계획 수립"...식약처 "분류체계 개선 등 신속 제품화 지원"
보건복지부 의료기기∙화장품산업TF 임아람 팀장은 국산 의료기기 사용 활성화와 빠른 시장 진입 및 해외시장 진출 지원을 위한 복지부의 노력을 설명했다. 의료기관 및 학회와의 연계, 교육훈련센터 지정, 종합지원센터 운영, 신의료기술 평가 제도 지속 보완 등이다.
지난 2020년부터 시행에 들어간 의료기기육성법에 따라 ‘1차 의료기기 산업 육성 5개년 사업계획’ 수립에 착수한 상황이란 사실도 밝혔다.
임 팀장은 “코로나19에 따른 상황 변화, 디지털 전환, 고령화에 따른 만성질환과 예방적 관리 수요 증가, 국제 규제 강화 등 각종 위기를 기회로 삼을 수 있도록 정책 과제를 찾고 반영해 공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의료기기정책과 채규한 과장은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하면서도 산업계가 원하는 신속한 제품화 등이 가능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구체적으로 “혁신을 수용하기 위해 기존의 제품 분류 체계를 개편하고, 임상∙성능평가 기준과 가이드라인을 지속 개발해 기업들의 임상∙성능 평가 및 입증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이어 “의료기기의 경우 의약품과 달리 제품의 업데이트 등이 필수적”이라며 “이런 부분에서 혁신을 받아들이면서도 어떻게 비용 부담을 줄일지 살펴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채 과장은 또한 사이버 보안 문제, 유통구조 선진화 등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논의를 통해 해결책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