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서울성모병원 신현영 교수와 국립암센터 기모란 교수 연구팀이 메르스(MERS) 이후 코로나19 팬데믹까지 이어진 한국의 감염병 대응 체계를 분석한 결과, 위기 대응의 핵심은 ‘입법 기반’에 있었다는 점이 재확인됐다. 단순한 방역 역량을 넘어 법·제도가 정책 실행력과 시스템 회복력을 좌우했다는 것이다.
13일 국제학술지 '프론티어 인 퍼블릭 헬스(Frontiers in Public Health)'에 실린 이번 연구는 2015년 메르스 사태부터 코로나19를 거치며 변화한 법적·제도적 대응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내러티브 리뷰로, ‘팬데믹 대응 펜타드(Pandemic Response Pentad)’라는 개념을 새롭게 제시했다.
해당 모델은 입법을 중심축으로, 거버넌스를 매개로 하는 역학·의료·사회 대응이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구조를 설명했다.
연구에 따르면 한국의 감염병 대응 체계는 ▲거버넌스 개편 ▲역학조사 및 데이터 활용 ▲의료 대응 ▲사회적 대응 등 네 축에서 발전해왔다. 특히 메르스 이후에는 역학조사관 제도 도입, 감염병 1급 분류체계 정비, 정보 공개 강화 등 기본적 대응 기반이 마련됐다.
코로나19 이후에는 보다 전면적인 제도 개편이 이뤄졌다. 질병관리청(KDCA)의 독립기관 승격, 보건복지부 복수 차관제 도입, 권역별 질병대응센터 설치 등이 대표적이다. 역학조사관도 기존 30명에서 100명으로 확대되며 전국 단위 대응 역량이 강화됐다.
역학 대응 측면에서는 확진자 동선 공개, 위치정보 활용, 무료 검사 및 의무 검사 도입 등 강력한 조치가 시행됐다. 동시에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데이터 최소 공개, 사후 삭제 의무화, 연례 보고 제도 등 보완 장치도 함께 도입됐다.
의료 대응 역시 크게 강화됐다. 생활치료센터 운영, 감염병 전담병원 확충, 손실보상 제도, 비대면 진료 한시 허용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의료기관 손실보상과 의료인 지원은 민간 의료 참여를 유도하는 핵심 정책으로 작용했다.
백신 정책에서는 접종 유급휴가와 정부 지원, 그리고 2025년 ‘백신 피해보상 특별법’ 제정을 통해 보상 체계가 대폭 확대됐다. 이는 백신 신뢰 확보를 위한 중요한 장치로 평가된다.
사회적 대응에서는 거리두기, 백신패스, 영업 제한 등 강력한 방역 조치가 시행됐으며, 이에 따른 경제적 피해를 보완하기 위해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상 손실보상 제도가 법제화됐다.
다만 연구는 이런 강력한 입법 대응이 인권 문제와 충돌하는 측면도 지적했다. 이동의 자유, 영업의 자유 제한 등으로 사회적 갈등이 발생했으며, 특히 취약계층에 불균형한 영향이 나타났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아동, 노인, 장애인, 소상공인 등은 정책 부담을 상대적으로 더 크게 떠안았고, 이에 따라 정부는 취약계층 보호 정책과 맞춤형 지원을 확대했다.
연구진은 “코로나19 대응의 성공은 메르스 이후 축적된 법적 기반 덕분”이라면서도 “팬데믹 장기화 과정에서 새로운 사회·경제적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입법이 지속적으로 확장됐다”고 평가했다.
특히 이번 연구는 향후 팬데믹 대비를 위해 ▲감염병 연구 인프라 강화 ▲전문 인력 교육 체계 구축 ▲글로벌 감시 시스템 확충 ▲정책 싱크탱크 설립 등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선제적 입법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연구진은 “입법 없는 제도 개선은 실현되기 어렵다”며 “모든 대응 체계는 법적 기반 위에서 설계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의 경험은 글로벌 감염병 대응 전략 수립에 중요한 참고 사례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기존 연구기관을 보완하는 정책 중심 싱크탱크의 설립 역시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서 종합적 대응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며 "사회적 영향을 평가하기 위해 명확한 법적 근거가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