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이지원 기자] 심혈관용 스텐트 판매를 늘리기 위해 시판 후 임상시험 연구비와 판매대리점 수수료 명목으로 리베이트를 주고받은 의료기기 제조업체 관계자와 대학병원 교수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서부지검 식품의약범죄조사부는 의료기기 제조·판매업체 법인과 대표이사 A씨, 전직 이사 B씨를 의료기기법 위반 등 혐의로 30일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업체에서 리베이트를 받은 대학병원 교수 6명도 의료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A씨와 B씨에게는 공정거래법 위반과 의료기기법 위반, 배임증재 혐의가 적용됐다. 업체 법인은 공정거래법과 의료기기법 위반, 대학병원 교수 C씨는 배임수재와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나머지 교수 5명에게는 의료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검찰에 따르면 업체는 시판 후 임상시험을 실시할 필요성이 없는데도 2016년 8월부터 2025년 9월까지 전국 53개 의료기관에 자사 심혈관용 스텐트의 임상시험을 제안하고 연구비 명목으로 약 42억원을 지급했다.
해당 제품은 건강보험 급여 대상이다. 병원에서 업체 제품을 환자에게 시술한 뒤 임상연구 대상자로 등록하면 환자 1건당 20만~115만원을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업체는 제품 허가 전부터 매출과 시판 후 임상시험을 연계하고, 자사 약물방출스텐트(DES) 사용 건수에 비례해 연구비를 지급하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해당 임상시험이 자사 스텐트를 시술받은 환자의 상태를 단순 추적 관찰하는 연구로, 의료인의 추가적인 진료나 의료행위를 수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임상시험 결과보고서와 논문 작성, 관찰 내용 입력 여부와 관계없이 환자 등록 건수에 따라 연구비가 지급됐다고 부연했다.
일부 의료기관에서는 업체 직원이 증례기록을 대신 작성하거나 관련 내용을 입력하지 않았는데도 연구비가 지급된 것으로 조사됐다. 임상시험에 참여한 일부 의사는 해당 업체의 비상장주식도 보유하고 있었다.
업체는 10년간 53개 의료기관에서 동일한 연구를 반복해 약 42억원을 지급했다. 검찰은 이를 통해 외국계 업체들이 독점하던 스텐트 시장에서 자사 제품의 거래를 유인했다고 분석했다.
해당 스텐트는 혈관에 영구적으로 삽입하는 4등급 의료기기다. 검찰은 업체가 자사 스텐트를 시술한 환자를 임상연구 대상자로 등록하면서도, 환자에게는 제품을 시술한 뒤 임상시험 참여 동의를 받도록 연구를 설계해 의료기기 선택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이어 이 같은 방식은 임상시험 제도의 공정성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훼손한다고 지적했다.
연구비는 건강보험 급여로 지급된 의료기기 대금 일부가 의료기관에 다시 지급되는 구조였다. 검찰은 업체가 실질적인 추가 비용 없이 매출을 늘리면서 경제적 이익을 제공했고, 그 재원이 건강보험 재정에서 나왔다고 설명했다.
교수별 연구비 수수액은 약 3300만원에서 4억810만원이었다. C씨는 2021년 8월부터 2024년 6월까지 대학병원 명의 계좌로 약 1억600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는다.
D씨는 2016년 11월부터 2022년 1월까지 약 4억810만원, E씨는 2019년 6월부터 2025년 2월까지 약 83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F씨는 2개 대학병원에서 각각 약 3300만원과 1억1100만원을 받았다. G씨는 약 8690만원, H씨는 약 1억6830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판매대리점을 거래 구조에 형식적으로 끼워 넣은 리베이트도 확인했다.
교수 C씨는 아내 명의로 법인을 설립한 뒤 의료기기업체의 판매대리점인 것처럼 거래 구조에 편입했다. 이 법인은 실제 영업과 배송, 재고 관리 등 판매대리점 업무를 수행하지 않았고 주요 업무는 업체 직원들이 맡았다.
실제 의료기기 유통은 업체에서 간납업체를 거쳐 6개 대학병원으로 이어졌지만, 계약상으로는 C씨 아내 명의 법인이 중간에 포함됐다. 이 법인은 2018년 2월부터 2025년 4월까지 약 7년간 판매수수료 명목으로 약 7억7800만원을 받았다.
C씨와 업체는 약 20년간 기술자문과 비상장주식 보유, 판매대리점 운영, 임상시험 등을 매개로 경제적 이해관계를 형성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연구비와 자문료, 판매수수료 등 명목을 달리한 경제적 이익이 장기간 제공됐다고 밝혔다.
한편 공정거래위원회는 2024년 7월 업체의 부당한 고객유인행위에 시정명령을 내리고 과징금 2억8700만원을 부과했다. 보건복지부는 같은 해 9월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서울고등법원은 2025년 9월 업체가 제기한 시정명령과 과징금 납부명령 취소소송을 기각했으며 판결은 확정됐다.
이후 검찰은 2026년 4월 업체와 대학병원 등을 압수수색했다. 같은 해 6월 A씨와 C씨의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도주와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며 기각했다.
검찰 측은 "이번 사건은 '시판 후 임상시험'이라는 공적 제도를 이용해 연구비 명목의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고 의료기기 거래를 유인한 신종 리베이트 수법"이라며 "의료기기 유통 과정에서 판매대리점 거래를 가장해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는 우회적 리베이트 구조를 밝혀낸 최초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어 "서울서부지검은 식품의약안전 중점검찰청으로서 의료시장의 공정한 거래 질서와 건강보험 재정을 위협하는 불법 리베이트 범죄에 엄정 대응하고, 범죄수익을 철저히 환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