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도영 기자] 진행성 가족성 간내 담즙정체(PFIC)는 희귀 간질환으로 대부분 소아기에 발병하지만 그동안 적절한 치료제가 없어, 궁극적으로는 간 이식 외에는 선택지가 없었다. 대표적인 증상인 극심한 가려움(소양증)으로 수면 부족과 성장 부진이 나타나기도 하고, 간 손상이 지속되며 간부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새로운 치료 옵션이 시급했다.
최근 입센코리아는 하루 1회 복용하는 세계 최초 경구용 치료제 '빌베이(Bylvay, 성분명 오데빅시바트)'를 국내 급여 출시했다. 빌베이는 IBAT(Ileal Bile Acid Transporter) 억제제로 간내 담즙 정체를 완화시켜, 소양증은 물론 간 수치도 개선시킨다. 미국과 유럽에서 2021년 최초 승인된 이후 주요 국가에서 허가를 받았고, 국내에서는 2023년 보건복지부의 '허가-평가-협상 병행 시범사업' 1호 약제로 선정돼 아시아 최초로 건강보험 적용을 결정했다.
세브란스병원 소아소화기영양과 고홍 교수는 이 과정에 직접 참여해 빌베이를 빠르게 급여 도입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PFIC 환자의 가려움은 잠을 자거나 밥을 먹는 등의 일상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하다. 빌베이는 치료적인 개념으로 PFIC에 처음 도입된 약물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배경을 소개했다.
메디게이트뉴스는 PFIC는 어떤 질환이고, 빌베이가 가진 임상적 가치는 어떠한지, 그리고 희귀질환 치료제 빠르게 도입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고 교수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긁어도 해결되지 않는 가려움에 간 손상과 성장 부전 동반되지만 치료 옵션 제한
담즙 정체란 간에서 나오는 담즙의 정상적인 흐름이 줄어들거나 차단되는 것을 말한다. PFIC는 선천성 유전성 질환으로, 특정 유전자의 돌연변이로 인해 간에서 생성된 답즙산이 배출되는 과정에 문제가 생기는 질환이다. 변이마다 증상 양상에 차이가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혈중 담즙산 수치가 상승하면서 발생하는 극심한 가려움이다.
고 교수는 "피부에 병변이 있는 것이 아니라 혈액 내 특정 물질에 의해 가려움이 발생하기 때문에 긁어도 해결되지 않는다. 유아 환자는 주로 귀와 눈 주변 등 얼굴부터 긁는 행동이 시작되고, 같은 자리를 계속 긁다보니 흉터가 지속되기도 한다"면서 "단순히 가려움이 있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밤에 잠을 못자는 등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워진다. 이에 간 손상과 성장 부전이 동반된다"고 설명했다.
PFIC 환자의 임상적 특징으로 황달이 있다. 신생아 황달이 필요 이상으로 지속될 때 혈액 검사를 진행하게 되는데, 이 때 PFIC가 발견되는 경우가 있다. PFIC 환자인 어린이들은 일반적으로 혈액 내 담즙산 농도가 정상 담즙산 농도의 10~20배로 상당히 높다. 유전자 검사를 하면 어떤 유전자가 돌연변이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정확하게 진단을 받더라도 그동안은 적절한 치료법이 없었다. 내과적 치료로는 간 기능을 보호하는 약물, 가려움을 완화하는 약물을 쓰거나 영양 치료를 진행했다. 간 손상이 진행됐을 때 외과적으로 우회수술을 할 수 있지만, 모두 현재 상황을 완화시키는 정도로 PFIC의 치료법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웠다. 마지막 보루인 간 이식 역시 이식 거부반응과 재발 등 위험을 가지고 있다.
빌베이, 간내 담즙 정체 완화 기전으로 가려움 해결하고 성장 및 간기능 보존에 도움
반면 빌베이는 혈청담즙산(sBA)의 장내 재흡수를 막고 대변을 통해 배출되도록 함으로써, 간내 담즙 정체를 완화시켜준다.
고 교수는 "PFIC 환자에서는 여러가지 문제로 간 손상이 있는 상황에서 담즙산이 재흡수되며 발생하는 2차 손상이 크다. 빌베이는 흡수되는 채널을 차단하기 때문에 손상된 정도가 급격하게 좋아질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실제로 무작위 이중맹검 3상 연구인 PEDFIC 1에서 복용 24주 차에 위약 대비 sBA를 유의하게 감소시켰다. 72주 공개 연장 연구인 PEDFIC 2에서도 96주 동안 복용했을 때 sBA 수치가 유의하게 낮아 장기 복용 시에도 효과가 지속됨을 보여줬다. 간 기능 지표를 개선했고, 빌베이에 반응한 모든 환자는 3년 동안 간 이식을 필요로 하지 않아 간을 보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증상인 담즙정체성 소양증도 유의하게 개선시켰다. 또한 잠들기 위해 도움이 필요한 날이 76% 줄고, 보호자와 함께 취침해야 하는 날이 55% 감소하는 등 삶의 질에 영향을 주는 심각한 수면 장애를 개선시키는 것은 물론 신장과 체중을 유의하게 증가시켜 성장 지표에도 도움을 주는 것으로 확인됐다.
고 교수는 "극심한 가려움으로 도움이 없으면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던 아이들이 잘 자고 잘 먹게 되면서 살이 찌고 얼굴 빛이 좋아지는 등 겉으로 볼 수 있는 변화가 눈에 띄게 나타났다. 보호자들도 밝은 얼굴로 진료실을 방문하는 등 환자 가족의 삶의 질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실제 경험을 공유했다.
그는 "빌베이의 국내 급여 출시는 사회적으로도 주는 의미가 크다. 논의 과정이 쉽지 않았으나 이제 정부기관에서도 희귀질환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됐다"면서 "이번 빌베이 사례가 남긴 기록으로 앞으로 다른 희귀질환 치료제가 승인 절차를 받을 때 더 빠르게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희귀질환 치료제를 도입할 때 시작 단계부터 전문가 집단과의 협의할 것을 제안했다. PFIC의 경우 극희귀질환으로 국내 환자는 수십명대로 추정되고, 이를 진료하는 의사 역시 매우 제한적이다.
고 교수는 "예를 들어 암 질환은 관련된 전문가가 많고 임상 데이터를 보고 좋아졌는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지만, 희귀질환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처음부터 협의에 참여한다면 시행착오를 줄이고 효과가 좋은 약을 더 빠르게 환자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면서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분들 역시 만약 이미 해외에 신약이 있다면 이를 도입하기 위해 의료진과 정부가 움직일 수 있도록 활발하게 목소리를 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