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 정신보건법(정신건강복지법)이 시행된 첫날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은 정신건강 분야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셀프 칭찬'하기 바빴지만 의학계는 개악 중의 개악이라며 법을 재개정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개정 정신보건법이 30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당장 적용되는 개정 정신보건법의 핵심 쟁점 중 하나는 입원 진단 기준이다.
법이 개정되기 이전에는 입원 치료 필요성 '또는' 자해, 타해 위험이 있으면 보호의무자에 의한 비자의(강제) 입원이 가능했지만 앞으로는 두가지 요건을 모두 갖춰야 한다.
또 하나의 쟁점은 비자의 입원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2주 이내에 서로 다른 정신의료기관(국공립 정신병원 소속 전문의 1명 포함)에 소속된 2명 이상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일치된 소견이 있어야 한다.
이날 정진엽 장관은 서울의 국립정신건강센터를 방문해 이날부터 시행되는 정신건강복지법 시행상황을 점검했다.
정 장관은 이 자리에서 "20여년 만에 전면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은 정신건강 분야에 새로운 지평을 여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 장관의 자화자찬 행보에 대해 의료계는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정신병원계 관계자는 "장관이 현장의 목소리를 청취해야 할 곳은 국립정신병원이 아니라 개정 법 때문에 혼란을 겪고 있는 민간 정신병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건복지부는 법 개정에 따라 시행규칙을 조속히 개정해야 하지만 개정 법 시행 당일에서야 공포했고, 자세한 안내조차 하지 않아 정신병원들은 큰 혼란을 겪었다.
신경정신의학회는 이날 정신보건법 재개정을 촉구하는 의미에서 서울지방변호사회와 공동으로 '사법입원 공청회'를 열어 맞대응에 나섰다.
사법입원이란 의료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준사법적 위원회나 법정 절차 등 제3의 기관이 입원 여부를 판단하는 방식이다.
울산의대 안준호 교수는 개정 정신건강복지법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안 교수는 우선 비자의 입원을 하기 위해 '치료 필요성'과 '자타해 위험' 두가지를 모두 충족해야 하는 현실을 개탄했다.
그는 "이제 입원치료가 꼭 필요할 정도로 정신병 증상이 심해져도 자해나 타해의 위험이 없으면 입원시킬 수 없게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안 교수는 "정부에 공개적으로 질문한다"면서 "재발이 명백한 조현병 환자를 현행 법 체계에서 합법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안 교수는 "긴급한 입원 결정을 요하는 시점에서 우리나라처럼 '소속이 다른' 정신과 전문의의 진단을 요구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찾을 수 없다"면서 "같은 지역 병원의 의사들끼리 방문 평가할 경우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평가하기 어려우리라 충분히 예상되는데도 복지부는 모르는 척하며 담합을 조장 내지 방조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특히 그는 무리한 법 시행이 열악한 정신의료체계의 기반을 흔들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그는 "민간 정신병원들은 계속입원 심사를 위해 전문의를 출장 보낼 여력이 거의 없는데도 감독기관인 지자체와 보건소는 압력을 가했고, 많은 병원들이 압력에 못이겨 뒤늦게 지정진단의료기관을 신청할 수밖에 없었다"고 맹비난했다.
의료계는 다른 의료기관에 소속된 2명의 전문의의 일치된 소견이 있어야 입원하도록 할 경우 매년 25만건의 출장 진단업무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주 5일 중 2일을 다른 병원에 가서 계속입원 심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의료인력 상황은 더 열악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안준호 교수는 "사정이 이런데도 복지부는 어떻게든 형식적으로라도 법을 시행하려고 한다"면서 "정신의료의 낡은 건물에 있는 기둥을 빼어 내 '인권보호'라는 호화로운 간판을 만들어 세우는 격"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