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의사 출신으로 코로나19 중대본부장을 맡았던 정기석 교수가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의사 출신 답게 필수의료 문제의 근본 원인이 '수가'에 있다고 꿰뚫어 본 정 이사장은 향후 공공정책수가와 원가 기반의 수가체계 조정에 힘쓰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교수시절부터 의사들의 과잉진료를 바로잡고,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키는 사무장병원 척결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었다는 정 이사장은 해당 문제에 대해서도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특히 정 이사장은 공단 특사경 제도의 도입을 위해 의료계의 숙원사업인 '전문가 평가제'와 협업해 의료계를 설득한다는 전략이다.
15일 국민건강보험공단 정기석 이사장이 서울 종각 모처에서 전문기자협의회와 기자간담회를 갖고 신임 이사장으로서 중점을 놓고 추진할 과제에 대해 설명했다.
필수의료 인력 부족 '저수가'에서 기인…"필수의료 재정 지원 우선돼야"
먼저 정 이사장은 최근의 의료계의 화두인 필수의료 문제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그는 "필수의료라고 불리는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외과 등의 위기가 현안이라고 생각한다. 의료계 전체적으로 힘든 일은 안하고 워라밸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돈을 많이 줘도 일을 안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전문의를 아예 따지 않거나, 전문의 따도 풀타임으로 일하지 않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정 이사장은 "이에 의사들이 에스테틱 분야로 대거 이동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의사 수는 과거와 비슷하지만 체감적으로 의사의 숫자는 줄어든 것처럼 느껴진다. 이처럼 전공 과목 별로 상대적으로 의사 수가 부족한 곳이 발생하고, 상대적으로 노동 강도가 센 곳이 발생하고 있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결국 근본적인 구조를 다시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이에 정 이사장은 필수의료 강화를 위한 수가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다만 수가를 조정하려해도 근거가 필요하다. 의료 원가를 분석해 그 부분에 대해서 정당한 보상을 하고 과하게 지출되는 부분들은 조정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검사는 기계로 한 번에 자동으로 결과가 도출되는 데 이윤이 200~300%까지 난다"며 "의사, 간호사 등 병원 종사자들이 직접 환자의 육체와 접촉하거나 얼굴을 마주보고 상담하거나 하면서 발생하는 수가를 더 보전을 해주는 것이 올바른 의료를 위해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의견을 개진했다.
의료계는 현재 정부의 공공정책수가에 기대를 걸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기대에 부응해 공단은 필수의료 보장지출 항목의 별도 관리 체계를 마련해 재정총량 관점에서 지출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적정수가 보상을 위한 합리적인 수가‧지불 제도를 개선하는 등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 이사장은 "내년에 환산지수가 1.98% 올라간다. 그중 일부를 떼서 필수의료에 투입하겠다는 것이 공공정책수가"라며 "특히 소아청소년과는 나이대에 따라 더 보상해줘야 한다고 본다. 6세 미만의 영유아를 돌보는 소청과 전문의의 전문성을 인정해 줘야 한다. 저출산 고령화 대책을 세우자고 말로만 외치고 투자를 안 하면 어떻게 되겠느냐. 0~3세 어린 소아를 진료할 때 지금 수가보다 파격적으로 적용한다면 젊은 의사들이 소청과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대책을 말했다.
또 정 이사장은 "상대가치점수와 지속 가능한 수가제도에 대해서도 비판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이에 공단에서도 원가에 기반한 수가제도 전환에 대한 연구가 이미 진행되고 있다"며 "이런 연구들을 잘 모아서 가장 잘 반영할 수 있도록 상대가치점수 조정 논의에도 적극 참여할 계획이다"라고 전했다.
나아가 "공단이 운영하는 의료비용분석위원회 원가자료를 활용해 개별 행위 원가보상률 등 객관적 근거를 마련해 원가보상이 낮은 행위의 상대가치점수 조정 등을 정부에 건의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불필요한 재정 누수 차단 위해 '적정진료' 유도…의료과다 이용 막기 위한 '주치의제도' 도입
정기석 이사장이 또 한 가지 강조한 것은 바로 현 정부의 기조이기도 한 지속가능한 보험재정을 위한 불필요한 지출 감소 등 재정 누수 차단이었다.
이를 위해 정 이사장은 '적정진료'에 방점을 놓고 국민이 불필요한 과잉 검사나 진료를 받지 않도록 복지부‧공단‧심평원이 협력해 '표준 진료지침'을 마련하고 의료비 지출을 줄여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는 "교수 시절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정년 퇴임을 하게 된다면 의사들이 잘못하는 부분을 바로잡는 역할을 해야겠다고 말하고 다녔다. 사실 이것은 의사들이 싫어하는 일이다. 하지만 제자에게도 잘못된 부분은 다그치면서 올바른 길을 가라고 해왔기 때문에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고 고쳐나가야 한다. 그것이 교수시절부터 나의 철학이다"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사실 행위별 수가라는 구조하에서 의사들이 과잉진료를 안 하려고 해도 불가피한 부분도 있다. 검사 하나를 더 하면 그만큼 수익이 더 늘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도를 넘은 과잉진료들이 많다. 300만원짜리 검진이 있는 게 사실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환자를 본지 40년이 됐는데 그때의 진료 행태와 지금이 어마어마하게 달라졌다. 물론 과학과 의술이 발달하고 경제가 발전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 당시 의사들이 가졌던 철학은 환자에게 불필요한 검사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 가급적이면 비침습적인 행위를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지금에 와서 많이 희석되고 있다"며 "불필요한 건보재정 낭비가 이뤄지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정 이사장은 "의학한림원에서 불필요한 진단이나 검사, 치료 등을 배제함으로써 의료자원 낭비를 줄이고 의료 질 향상을 위한 '현명한 선택' 캠페인 등을 실시하며 적정진료를 위한 자정노력을 하고 있는데 이 부분을 더욱 강조하고 후원하면서 의료진 스스로 현명한 선택을 하고, 환자들도 따라오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나아가 "국가가 시행하는 국가검진 부분도 다시 한번 살펴볼 수 있도록 주문해 놓았다. 공단에서 하는 검진은 상대적으로 민간검진에 비해 축소됐지만 그 부분도 가이드라인을 통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더불어 환자의 적정의료이용에 대한 인식 개선도 강조했다. 의사의 과잉진료뿐 아니라 환자도 불필요한 의료이용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 이사장은 "경증질환으로 인한 불필요한 의료이용, 과다약물복용 등을 관리학 위해서는 주치의 제도가 필수적이라고 본다. 공단에서도 한국형 주치의제 도입을 위해 일산병원 내 일차의료개발센터를 운영해 모형을 실증화하고 고도화 하고 있다"고 전했다.
공단 특사경 제도 도입 필요성 '인정'…의료계 숙원 '전문가평가제'와 협력 관계 마련
정기석 이사장은 건보 재정 누수 차단의 차원에서 공단의 특별사법경찰관 제도 도입도 강조했다.
그는 "밀양 세종요양병원 화재 사건을 기억한다. 사무장병원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운영이 되지 않아 화재가 났을 때 환자들이 제대로 대피도 못하고 사망했다"며 "의료인이 적법하게 운영을 했다면 그런 재앙은 일어나진 않았을 것"이라며 사무장병원 단속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공단은 공급자 단체와 협업을 통해 불법개설기관 근절을 위한 방안을 모색 중이다.
정 이사장은 "의료계의 숙원사업인 전문가 평가제를 통해 사무장병원 단속을 위한 자율징계권 부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공단에서 지원할 방안이 있다면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전문가 평가제는 의료인에 대한 시정, 행정처분 등 자율 규제·관리는 가능하나 일반인인 사무장에 대한 통제(법적·행정적 제재) 권한이 없는 한계가 존재하므로, 전문가 평가제 단독 운영 보다 공단 특사경과 협업을 통해 상호보완 및 시너지 효과 창출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따라서 정 이사장은 "전문가 평가제와 공단의 특사경이 협업할 수 있는 핵심과제를 발굴하고 협업방안을 마련해 의료계와 협력하고 의약단체와 소통을 활성화하기 위해 '제도개선 실무협의체'를 활용하려 한다"며 "의약계와 지속적인 의견 교환 및 조정을 통해 공단 특사경에 대한 쟁점사항이 해소되도록 하겠다"고 이야기했다.
그 외에도 공단은 의료계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공단 특사경의 수사권 범위를 '사무장병원'과 '면허대여약국'으로 제한해 운영하고 ▲수사직원을 복지부장관의 추천권 행사 및 검찰에서 수사권한이 승인된 직원으로 한정하며 ▲수사범위를 규정하는 '직무규정'과 대상자의 인권침해 방지를 위한 '인권보호 지침'을 마련하고 ▲수사 범위를 벗어나는 수사나 자료요구 시 징계와 특사경 지명을 박탈하는 등 제재 장치를 마련해 적법한 절차에 따라 투명하게 운영하겠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