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공공의료를 안정화하기 위해 의대 안에 지역 맞춤형 공공의료 의사를 양성할 것인가, 아니면 맞춤형 의대를 신설할 것인가?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가 22일 지역의료격차 해소방안 모색을 위한 국제심포지엄을 열었다.
이날 발제에 나선 서울의대 이종구 교수는 지역맞춤형 의료인력 양성방안을 제시했다.
이종구 교수
현재 우리나라 인구 1천명 당 활동 의사를 보면 병원의 경우 서울과 인천, 경기권이 1.06명인 반면 충북권은 0.67명에 불과하다.
의원 역시 서울과 인천, 경기권이 인구 1천명 당 0.74명이지만 강원권은 0.53명에 지나지 않는다.
10㎢ 당 의원에서 활동하는 의사는 서울과 인천, 경기권이 15.7명, 강원권은 0.5명으로 큰 차이가 난다.
다만 이종구 교수는 "의사 인력의 지리적 불균등 분포는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일부 국가에서는 의료격차 해소를 위해 지역 맞춤형 의료인력을 양성하고 있다.
지역의료를 위한 특수 목적 의대인 일본 지치의대는 연간 123명을 농어촌지역 출신 우대전형으로 선발한 후 6년간 등록금 전액 및 장학금 지급, 9년 의무복무 후 환급을 면제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또 일본 의대들은 특례입학을 통해 연 1422명(전체 입학정원의 18.2%)을 선발, 이들에게 의대 교육과정 외에 특별활동을 추가하고 지치의대와 동일한 장학금-의무복무 결합 제도를 시행중이다.
호주 'Rural Clinical School'은 입학전형과 무관하게 재학생 중 농어촌지역 임상실습생을 선발, 일차의료 중심 교육과 지역병원 및 의원 임상실습을 시키고 있다.
호주는 일본처럼 장학금-의무복무 결합방식을 채택하지는 않았다.
국내에서는 1977년 공중보건장학제도를 도입, 졸업후 의료취약지역 등에서 일정기간 근무하는 조건으로 의대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해 의사 768명, 치과의사 50명, 간호사 643명을 선발했지만 1996년 이 제도를 중단했다.
지원자가 감소한데다 1996년부터 공보의를 지역의료에 배치했기 때문이다.
이종구 교수는 공중보건장학제도의 한계에 대해 농어촌지역 출신과 무관하며, 의료취약지 및 공공의료에 대한 교육 부재, 장학금을 조기 상환하고 의무복무를 면할 수 있는 제도적 허점, 의무복무 후 지속 근무와 연계할 방안 부재 등을 꼽았다.
여기에다 지역 공공의료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는 공보의가 매년 감소하고 있어 의료취약지, 공공의료 분야 의사 확보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공보의 인력 추계
이종구 교수는 의료취약지 공공의료를 강화하기 위해 두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그 중 하나는 지역인재전형 제도를 개선해 일정 수의 의대생을 선발, 현 의대에서 기존 교육과정에 특별활동(지역의료 및 공중보건)을 추가 교육하는 방법이다.
이들에 대한 임상실습은 농어촌지역 병의원과 공공의료기관에서 맡고, 일본과 같이 장학금 지원 및 의무복무 여부를 검토하자는 안이다.
이 교수는 또 다른 방법으로 지역의료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의대를 신설하거나 기존 의대의 기능을 이에 맞게 전환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이들 의대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6년 의무복무를 결합하자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일차의료 등 지역 맞춤형 의료인력을 양성하고, 이들이 양질의 근무조건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어떤 방식이든 지역 맞춤형 의료인력 양성체계가 현실화될지는 의문이다.
만약 2안을 채택해 의대를 신설할 경우 의료계의 반발을 감수해야 한다.
1안으로 하더라도 의무복무기간 이후 계속 취약지에서 근무할 수 있는 유인책이 없어 미봉책에 그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의대 유치를 공약으로 제시한 '박근혜의 남자'
이런 심포지엄이 결국 의대 신설 여론을 만들기 위한 의도가 깔려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도 한다.
'박근혜의 남자'로 잘 알려진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은 지난해 순천대에 의대를 설립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우며 재보궐 선거에서 당선됐다.
순천대 외에도 목포대, 안동대, 인천대 등이 모두 지역의료 불균형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는 명분론으로 의대를 신설하기 위해 혈안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복지부와 교육부, 자치단체의 생각은 어떨까.
복지부 임을기 의료자원정책과장은 "1안과 2안 모두 장단점이 있지만 현 의대 정원 외에 증원하든 현 정원을 재편하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원론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교육부 배성근 대학정책관은 지역의료에 종사할 의사인력을 배출하는 것보다 이들이 지방의료에 몸담을 수 있는 종합적인 대책이 시급하다는 의견이다.
그는 "지방 의대가 의전원으로 전환한 후 지방의 우수 인력이 모두 서울로 가 버렸다"면서 "의전원 출신 역시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후 다 수도권으로 옮겨갔다"고 환기시켰다.
강원도청 관계자는 "강원도에 5개 지방의료원이 있는데 평균 연봉이 2억원"이라면서 "그럼에도 의사 뽑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편법을 눈 감아주면서 이런 논의를 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지역의대의 현실을 보자.
경주, 울산, 충주, 아산, 강릉에 있어야 할 동국의대생들, 울산의대생들, 건국의대생들, 순천향의대생들, 관동의대생들은 예과를 마치면 일산, 서울, 인천에 있는 동국대병원, 서울아산병원, 건국대병원, 순천향대병원, 국제성모병원에서 본과 수업과 임상실습을 하고 있다.
이렇게 본교는 예과만 교육하고, 서울과 수도권의 교육협력병원 내지 의대 부속병원에서 본과 교육을 할 수 있게 해놓고도 지방의료가 정상화될 것으로 보는지 교육부와 복지부는 답을 해야 한다.
심지어 남원 서남대 인수 우선협상대상자인 명지병원은 대학 인수 '도장'을 찍기도 전에 의대를 일산으로 옮기겠다고 당당히 말하고 있다.
선배 의대들이 앞서 간 길을 따라 간 것일 뿐인데 왜 우리만 문제 삼느냐고 하면 교육부가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상상만으로도 재미있다.
강릉에서 인천으로 간 가톨릭관동의대
이런 지방의대들이 연고지를 이탈해 사실상 모두 수도권 의대가 된 상황에서 지방의료 황폐화를 운운하고, 의대를 신설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이종구 교수도 이런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농어촌지역에 의대를 신설했지만 예과만 연고지인 농어촌지역에서 교육하고, 본과와 임상실습은 수도권과 대도시에서 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반면 그는 이렇게 '껍데기'만 남은 지방의대 문제를 어떻게 해야할지 제쳐둔 채 지역 맞춤형 의료인력을 육성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특히 지역 공공의료를 살리겠다며 '국제' 타이틀까지 붙여 심포지엄을 열었지만 외면받고 있는 지방 공공병원을 어떻게 정상화할 것인지, 정작 공공의료에 종사하고 있는 의사들은 무엇을 원하는지 이야기 들을 수 없었다.
강원대 의전원 조희식 교수는 "의대가 신설되고 대형병원이 들어선다고 해서 지역의료가 좋아지는 게 아니다"고 못 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