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정부는 1월 31일을 시작으로 건강보험지불혁신단의 본격 운영을 시작한다. 정부는 보건복지부 그 소속기관 직제 일부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추진단의 신설을 예고한 상태다. 건강보험지불혁신단은 올해부터 2027년 12월 31일까지 존속하는 한시조직으로, 과장급 1인을 비롯해 총 7인이 참여할 예정이다.
정부가 필수의료 강화를 위해 보상 체계를 양보다 질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대대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나서면서 추진단도 시작하는 것이다. 정부는 환산지수 일괄 인상은 없을 예정으로 못박으면서도 상대가치점수 재평가, 지불혁신 추진단 신설 등을 통해 의료 서비스 질 향상과 지속 가능한 의료 시스템 구축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중규 복지부 건강보험정책국장은 최근 언론을 통해 올해 주요 건강보험정책 추진 계획을 설명했다. 그는 “성과 중심의 보상체계를 골자로 하는 새 지불제도 도입과 함께 의료원가를 반영해 기존 수가를 조정해 나가는 작업에도 속도를 내고 환산지수 일괄 인상은 없다. 집중 보상 분야는 아직 미결정 상태”라고 했다.
정부는 필수의료 강화를 위해 상대가치점수 재평가 시기를 기존 7년에서 2년으로 앞당길 계획이다. 의료비용 분석위원회는 올해 말까지 의료 행위별 수가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할 예정이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는 이를 기반으로 상대가치점수를 재평가할 계획이다. 정부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이용해 공정보상을 기치로 내세우면서 원가 대비 고보상 의료행위에 대해서는 수가를 낮추고, 저보상 행위에 대해서는 보상을 높이는 조정작업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의료비용 원가분석을 통한 수가 조정은 건강보험 재정 안정과 의료 서비스 질 향상을 목표로 하지만, 현실적으로 몇 가지 한계와 문제점을 안고 있어 이를 미리 짚어보고자 한다.
1. 원가보전율에 못미치는 필수의료
필수의료에 해당하는 내과(72%), 외과(84%), 산부인과(61%), 소아청소년과(79%)는 모두 원가보전율 100%를 달성하지 못했다.
건강보험공단이 제출한 자료는 2021년 신설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산하 ‘의료비용분석위원회’가 신포괄수가 시범사업 참여기관 중 89개 기관의 의료비용과 수익 정보를 구축해 2021년과 2022년 급여진료의 원가와 수익을 분석한 것이다.
자료에 따르면 내과계는 급여진료 제공에 약 1조1040억원을 사용했지만, 건강보험 수가 등 수익은 약 9586억원에 불과했다. 원가보전율은 87%였다. 외과계도 비용 1조1429억원을 쓰고, 수익으로 9561억원을 얻었다. 외과계의 원가보전율은 84%로 내과계와 비슷하다. 반면 지원계는 비용 89억보다 44억 더 많은 133억 수익을 벌며 원가보전율이 149%에 달했다.
각 계열 내에서도 원가보전율 격차가 확인됐다. 내과계·외과계·지원계 모두 가장 높은 진료과목과 가장 낮은 진료과목의 원가보전율이 2배 이상의 차이가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과계는 심장내과 117%, 정신건강의학과 55%였고, 외과계에서 안과 139%, 산부인과·61%였다. 지원계에선 방사선종양학과 252%, 마취통증의학과 112%로 나타났다.
2. 원가 분석 이외에 복잡하고 다양한 요소 반영
의료 서비스는 종류와 난이도가 매우 다양하며, 환자의 상태, 질병의 유형, 치료 과정 등에 따라 비용이 크게 달라진다.
의료 서비스 원가에는 의료 인력, 의료 장비, 의약품 등 직접 비용 외에도 병원 운영, 관리, 연구 개발 등 간접 비용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이러한 다양성과 복잡성 때문에 간접 비용을 정확하게 산정하고 배분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특히 원가에 의료사고 위험도를 상향 반영해야 하는데 행위별 정확한 위험도 산정이 어렵다.
또한 의료비용 원가 분석에 필요한 데이터가 부족하거나, 데이터의 신뢰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의료기관 간의 데이터 표준화가 부족해 정확한 비교 분석이 어렵다. 의료비용 원가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수가 조정이 이뤄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의료비용 원가분석과 수가 조정은 중요하지만, 필수의료의 적정 수가는 원가만으로 결정될 수 없다. 지역별 필수의료 수요와 공급 불균형, 의료사고 위험 등을 고려한 위험도와 상대가치를 반영해야 한다.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은 높은 의료사고 위험과 인력 부족으로 인해 원가가 높지만, 환자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적인 의료 서비스다. 또 지역 수가 가산을 통해 의료 수요는 적지만 의료서비스가 공급될 수 있도록 의료기관의 농어촌 취약지역에서도 의료서비스가 가능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종합적으로 필수의료의 적정 수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원가분석에 그쳐선 안 된다. 사회적 가치, 지역적 특성, 의료사고 위험 등 다양한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3. 위험성이 높은 의료행위 보상 문제
원가보전율에는 위험성이 높은 의료행위를 어떻게 보상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도 안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한국의 의료수가가 낮다는 근거로 맹장·제왕절개 등 실제 수술 수가를 들고 있다. 다소 오래된 논문이라는 것을 고려해야 하지만, 2012년 'OECD 국가의 주요 의료수가에 대한 비교 연구'에 따르면 한국 맹장수술 수가는 약 2047달러로 미국의 1만4010달러와는 비교하기 힘든 수준이며 독일의 3351달러에 비해서도 매우 낮다. 제왕절개는 1769달러로, 독일의 3843달러와 비교해도 절반에 채 미치지 못한다
2022년 회계조사에 따르면 수술 행위나 처치 행위의 원가보상률은 68.8%, 72.9%에 불과하나, 영상검사의 원가보상률은 106.2%, 검체검사의 원가보상률은 144.2%에 달했다.
의료수가는 수술이나 처치 등, 위험성이 높은 의료행위가 오히려 유난히 낮게 책정돼 있다. 여기에는 의료행위에 필요한 숙련도나 위험도 등을 객관화해 반영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 어려운 술기일수록 제대로 된 보상을 받기 힘들기 마련이다.
4. 재정 중립의 한계, 제로섬 게임으로 의료계 내부 반대
정부는 수가를 상대적으로 조정해 필수의료에 더 많은 재정을 투입하려고 했지만 의료계 내의 반대로 번번이 실패했다. 재정 순증이 아닌 재정 중립을 내세우는 정부 정책의 한계 탓이다.
2023년 말 정부는 검체, 기능, 영상 분야 등 원가 이상의 수가가 책정된 일부 분야의 환산지수를 동결하고 이를 의원 초진 진찰료 및 소아 진찰료 가산에 활용한다는 안을 내놨으나, 의협의 반대로 실패했다. 저수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체 수가를 인상하는 것이 방법이지, 일부 수가만을 인상하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재정이 증가되지 않고 고정된 상태에서 수가 문제는 의료계 내에서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릴 수밖에 없다. 건강보험료를 대폭 인상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건강보험 재정은 각 전문과목별로 또는 의원, 병원, 상급종합병원 등 병원종별에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달라진다.
필수의료 의료행위 수가를 인상한다면 상대적으로 비필수적으로 취급받기 쉬운 다른 의료행위는 수가를 삭감한다면 의료계 내의 반대가 생길 수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별도 재정 투입 없이 원가 반영만으로 재정 중립을 강행하는 것은 오히려 의료현장에 혼란과 부작용을 가중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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