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정부는 의대정원 증원에 대한 '낙수효과'를 낙관하고 있다. 의사 수가 많아지면 그만큼 미용성형을 비롯한 인기과 의사들을 채운 뒤에 필수의료 진료과 지원도 늘어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현장의 미용성형 의사들은 낙수효과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용성형 의사들 중에서 가격 덤핑을 하고 고객을 유치하지 못하는 의사가 나올 순 있지만, 이들이 필수의료 진료과 자체로 옮겨갈 리는 없기 때문이다.
대한비만미용학회 황승국 회장(성형외과 전문의)은 최근 메디게이트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필수의료를 살리라면 낙수효과를 기대하는 게 아니라, 의료수가 개선과 의사 형사처벌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필수의료 살리려면 저수가 문제 해결부터
황승국 회장은 필수의료 진료과가 망가진 근본적인 원인을 '저수가 문제'라고 진단했다.
황 회장은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의료수가가 가장 열악한 나라”라며 “의사가 환자에게 아무리 많은 검사를 해도 진료수가가 100만원이 나오지 않는다. 반면 동물병원에서 검사를 하면 수가가 4배 이상 차이가 날 정도”라고 했다.
황 회장은 “맨처음 의료보험(현 건강보험)을 만들었던 군사정권 당시 국민들에게 양질의 의료혜택을 받게 해주고 싶다는 취지로 보험수가를 최저가로 매겼다. 의사 입장에선 희생을 강요받은 셈이고 보험 진료를 하면 제대로 된 수입을 올리기 힘들다”고 밝혔다.
실제 2016년 연세대 산학협력단의 '건강보험 일산병원 원가계산시스템 적정성 검토 및 활용도 제고를 위한 방안'에 따르면, 의료기관종별 추정 원가보전율은 상급종합병원 84.2%, 종합병원 75.2%, 병원 66.6%, 의원 62.2% 등으로 전체 평균 78.4%에 불과했다. 진찰료, 입원료, 주사료, 마취료, 처치 및 수술료 등 의사 및 의료인들의 의료 행위와 관련된 수가는 50~80% 수준에 그쳤다.
황 회장은 "의사들이 피해를 감수하면서 전 국민 의료보험을 받아들였지만 2000년 의약분업 폐지로 겨우 버티게 만들던 동력마저 없애버렸다"라며 "당시 의정합의에 따라 의대정원 351명을 동결했던 것도 23년이 지난 지금 다시 원래대로 늘리자고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등이 줄줄이 망가졌다. 급여과 의사가 개원해서 하루 100명씩 환자를 보더라도 수입을 얻기 힘들다"라며 "건강보험 제도가 의사들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기 때문에 의사들이 비급여 진료를 위주로 하는 미용성형 분야로 진출할 수밖에 없고, 의대정원이 늘어나면 의사들이 더욱 미용성형 분야로 쏠릴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형사처벌에 민사 배상 판결까지 '첩첩산중'
의사들이 필수의료에 지원하지 않는 또다른 이유는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 책임과 민사 배상 판결 탓이다.
황 회장은 “중증 환자는 살아날 확률이 높지 않다 해도 환자가 사망하면 보호자가 병원과 의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 의사가 겨우 형사 책임을 벗어나더라도 민사에서 배상을 많이 해야 한다”라며 “의사는 위험한 진료를 기피하고 방어진료를 할 수밖에 없다. 상대적으로 소송 위험에 안전해서 미용성형 분야를 택한 의사들도 많다”고 말했다.
황 회장은 의사수를 늘린다고 이들이 필수의료로 이동하진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의사를 과하게 늘리면 필리핀처럼 의사가 택시기사로 일을 하는 일이 생기거나, 미용성형 분야의 가격덤핑만 심화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
황 회장은 “처음에 보톡스가 도입될 때는 부위별로 100만원씩 했지만 지금은 가격 경쟁이 심해 1000원이라고 홍보하는 곳도 한다. 미용성형 의사들이 고객을 유치하지 못해 수입이 적어드는 사례는 생길 수 있지만, 그 의사들이 필수의료로 넘어가는 것은 아니다”라고 분명히 했다.
이어 “결국 필수의료 과목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실질적인 수가 정상화와 의료사고 면책에 있다”라며 "내외산소(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로 꼽히는 필수의료 의사들 스스로 안전하게 진료하고 수술하는 자체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의료환경을 만드는게 중요하다”고 피력했다.
필수의료 지원율 높이려면 미래에 대한 비전 제시만이 '답'
황 회장이 바라본 필수의료 지원율을 높이는 방안은 필수의료 진료과를 전공하는 의사들에게 미래에 대한 확실한 비전을 심어주는 것이다. 이는 의사들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만큼, 정부의 정책 방향성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황 회장은 “의사가 어떤 진료과를 전공하려면 인턴 1년에 레지던트 3~4년이라는 시간을 써야 한다. 군대까지 치면 일반 사병의 18개월과 달리 공보의, 군의관으로 일하면 3년을 더 투자해야 한다. 과연 그만큼 시간을 들여 필수의료 전공을 했을 때 어떤 혜택이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황 회장은 “의사들이 필수의료 진료과를 선택했을 때 흔히 말하는 '장밋빛 미래'가 있다면 당연히 선택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라며 “반면 의대를 졸업하고 전공의 과정을 마치지 않더라도 선배들에게 미용성형 분야를 잘 배울 수 있고 수입도 괜찮다면 무엇을 선택하겠나"고 되물었다.
황 회장은 “외과 전공의들에겐 수련지원금으로 월 300만원씩 더주는 제도가 있었어도 외과 지원율이 저조했다. 이번에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금으로 월 100만원씩을 더 준다고 하더라. 이게 무슨 당근인가"라며 "의료수가 정상화와 의료소송 부담 완화 외에는 답이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정책을 시행할 때는 일단 던지고 나서 나중에 잘못되더라도 방치하려는 습성부터 고쳐야 한다. 의료정책을 망가트리면 결국 의사는 물론 환자들에게 피해를 준다. 답을 정해놓고 의대정원 증원만 고수해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22일 대한비만미용학회의 20주년 기념 추계학술대회가 성황리에 개최됐다. 비만미용학회는 올해 1월 대한비만미용체형학회(대비체)와 대한비만미용치료학회(대비치)가 통합해 회원수 1만2000여명에 이르는 대형학회로 탈바꿈한 학회다.
황 회장은 “강의 내용이 좋다보니 자연스럽게 회원들도 늘어나고 이번 학술대회에도 1500명 이상 참석했다. 이미 오전부터 빈자리 없이 강의장이 꽉 찼다"라며 "학회를 통해 같은 색깔을 내는 사람들이 정리된 이야기를 하면서 회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자 한다"고 말했다.
황 회장은 "현재 학회를 통합하면서 젊은층을 임원으로 많이 영입했다. 학회가 장기적으로 날로 더 커지고 발전할 수 있다"라며 "피부미용 영역은 비슷한 트렌드가 계속 반복되곤 하는데, 새로운 장비나 기술 등에 대해 차별화하면서 소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명실공히 미용성형을 대표하는 중요한 학회 중 하나로서 대한민국 미용의료의 위상을 국내외적으로 높이고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 추후 국제학술대회를 통해 대한민국 미용의료의 높은 수준을 널리 알리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