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복실복실한 엑스레이와 납작한 심근효소(트로포닌)
처음 미국에서 전공의 수련을 시작했을 때, 영어로 환자를 본다는 것도 낯설었지만, 적응에 가장 핵심이 되었던 것은 '병원 영어', '병원 말투'에 익숙해지는 것이었다.
의과대학에서 영어 용어로 공부했고, 미국의사시험을 준비하면서 필기, 실기 시험까지 치렀던 터라 주요 질환명이나 신체검진의 표현 등 기본적인 의학 용어는 한글보다 익숙한 것이 많았다. 사실 한국의 병원에서도 '편평세포암'보다 'squamous cell cancer', '심잡음'보다 'murmur'라고 부르는 것이 자연스러웠으니까.
하지만 병원에서 사용하는 관용 표현들은 또 다른 세계였다. 미국 병원에서의 의사소통은 생각했던 것보다 덜 경직돼 있고 좀더 수평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형용사와 표현들로 환자의 상태와 질환을 표현하곤 했다.
누가 봐도 심부전으로 인한 폐부종인 흉부 엑스레이 사진을 두고 “흉부가 복실복실해(fluffy)!”라고 표현한다거나, “지난밤 환자의 혈압이 다소 부드러웠지만(soft) 큰일은 없었습니다”라고 아침 회진을 시작한다거나. 처음에는 혼자 어리둥절해하거나, 한 번 더 묻고서야 알아듣는 경우도 많았지만, 책에서도 의학 드라마에서도 듣지 못한 이런 말들조차 마치 삼투 현상처럼 (osmosis — 삼투를 통해 배운다는 표현 또한 이곳에서 많이 들은 표현이다) 점차 익숙해져 간다.
사람 사는 건 다 똑같지만 외국어로 진료한다는 것은 사실 벽 하나를 넘어 환자를 보는 것과 같다. “영어로 진료를 보고 병원 선생님들과 대화를 하려니 뇌 용량의 반밖에 쓰지 못하는 기분이야”라고 주변 사람들과 푸념을 늘어놓기도 하고, “너희, 한국말로는 내가 얼마나 똑똑한지 모르지!” 하고 어느 미국 시트콤의 대사를 혼자 읊조리기도 하지만, 다른 나라의 의료 시스템을 경험하고 배워 간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꽤 짜릿한 일이다.
“에이-알-디-에스”라고 부르든 “아알-스”라고 부르든, 뜻은 통하게 돼있다는 것. 비슷한 논문과 가이드라인을 참고하며, 같은 마음으로 환자를 위한다는 것.
어두운 새벽 알람 소리에 눈을 뜰 때마다 다시 이불 속으로 사라지고 싶은 마음을 이겨내며 오늘도 찬물로 세수를 하고 집을 나선다는 것. 지구 반대편의 일 년차 생활이 내게 주고 있는 깨달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