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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tonio Yun의 진료실 이야기] 외과의사의 기도 #1.

    "중환자실에 자리 없다고 환자를 그냥 죽여요?"

    기사입력시간 2019-04-26 11:50
    최종업데이트 2019-07-05 14:54

    메디게이트뉴스는 페이스북에서 의사 입장에서 진솔한 심정을 전하고 있는 외과 전문의 'Antonio Yun(엄윤 원장)의 진료실 이야기' 연재를 시작합니다. 진료실 현장에서 의사와 환자의 관계 사이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에피소드와 그 속에 담긴 의사의 고심을 생생하게 전합니다. 진료실 이야기는 각 에피소드별로 몇 회에 나눠서 연재됩니다. 독자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기대 바랍니다.  

    외과의사의 기도 #1. 

    의사로, 특히 외과의사로 살다보니 만나는 환자들 중에 생명의 경각을 다투는 사람들을 볼 때가 허다하다.

    외과의사가 주로 하는 일이 수술인데 수술은 크게 Elective Op.(예약하고 하는 수술)와 Emergency Op.(응급수술)로 나뉜다. 
     
    우리가 흔히 아는 맹장염(충수돌기염)도 응급수술에 속하지만, 소위 외과의사들이 말하는 ‘True emergency’라는 것은 지금 당장 수술을 하지 않으면 환자가 사망에 이르게 되는 수술이다. 이 경우 외과의사는 다른 모든 일을 제쳐두고 이 환자를 집도해야 한다.

    물론 이런 경우는 전체 수술건수에 비하면 적은 편이어서 대개 중증외상센터가 아니고서는 많지 않다. 가끔이기는 하지만 이런 환자들을 보면 외과의사의 심장도 빨리 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의사들이라면 이런 경우에서도 침착함과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도록 트레이닝된 사람들이다. 얼핏 환자나 보호자가 볼 때는 냉혈한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냉정해야만 환자에게 가장 최선의 수술과 치료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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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10여년 전, 봉직의로 있을때의 일이다.

    새벽 3시에 걸려온 전화.
    (잠귀가 밝은 건지 트레이닝 덕인지, 전화벨의 첫음이 울리면 반사적으로 깨고 전화벨의 첫 마디가 끝나기 전에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과장님. 응급실 OOO입니다. 47세 남자환자가 내원 1시간 전 쯤 발생한 driver's TA(운전자 교통사고)로 응급실에 내원했습니다. 내원 당시 vital sign(활력징후)는 80/50-120-20-37 이었는데, 지금은 더 떨어져서요. mental(의식)도 drowsy(기면)에서 stupor(혼미) 상태구요, 환자 배가... "

    "지금 나가요. 마취과에 콜 해요."

    스프링 튀듯 일어났다. 이럴 땐 세수고 뭐고 없다. 옷도 반바지고 트레이닝복이고 중요한 게 아니다.

    " 여보. 차 키, 차 키."

    집에서부터 병원까지는 차로 약 15분. 신호도 중요한 게 아니다.
    ‘딱지 떼려면 떼라.’
    3분 만에 병원에 도착했다.
    3분이라는 시간의 길이를 아는가. 아주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한 손에는 운전대, 한 손에는 핸드폰을 쥔다. 

    “아, 엄윤인데요, CBC(혈액검사수치) 얼마예요? 지금 fluid(수액) 뭐 들어가요?
    지금 vital sign(활력징후)은? 마취과 콜은 됐어요?“

    "“CBC는 O-O-O-O 이고요, fluid는 지금 DS(포도당식염수) 들어가고는 있는데 거의 다 됐고요, vital은 60/30-150-30-37 이고요, 마취과 콜은 지금 하는 중이에요."

    "ABO Rh(혈액형검사)했죠? PC(농축적혈구)랑 FFP(신선동결혈장) 5개씩 신청하고, fluid는 하트만 달고 full로 틀어주고요. 반대편에 line하나 더 잡아서 NS(생리식염수) 달고... 모니터링 달려있죠? O2(산소) 마스크로 full로 주고요, 나 30초면 가니까 수술방 연락해서 당직 어시스트를 깨우라고 해요."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응급실 도착. 환자는 대화를 할 수 없을 정도이고 배는 빵빵하다.

    "마취과는?"

    "OO마취과 전화했는데 1시간 반 정도 걸리신대요."

    "미쳤어? 환자 죽어. 우리 마취과장 불러요."
     
    주) 대학병원이 아닌 중소병원은 낮에는 마취과 전문의가 정규 수술을 위해 상주하지만, 밤에는 외부 마취과 의사를 불러다가 응급수술을 한다.

    "그건 저희가 하기는..."

    "연결해요, 내가 말할게. 환자 보호자는?"

    "경찰이 연락했는데 댁이 안산이라서 오시는 중이래요."

    "보호자 올 때까지 못 기다려. 보호자 전화번호 있어요?"

    "경찰한테 물어볼게요. 그런데 과장님, CT는 안찍어요?"

    "CT가 문제가 아냐. hemoperitoneum(혈복강, 헤모페리)이잖아. CT 찍느라 기다리다간 죽어요."
    "과장님, 마취과장님 전화요."

    "아, 선생님. 엄윤인데요, 환자가 헤모페리고 바이탈도 떨어지는데 OO마취과가 1시간 반이나 걸린대요. 선생님이 좀 나와주시면 안 될까요?"

    "예, 지금 나갈게요, 근데 과장님, 피는 준비됐나요? "

    "예, 우선 다섯개, 다섯개요."

    "예. 바로 나가요."

    전화 끊고 나니, 

    "과장님, 보호자 연결됐어요."

    "아.. 여보세요. OO병원 외과 과장 엄윤입니다. 남편분이 교통사고로 인해서 복강 내 출혈이 심하신데요, 보호자 오실 때까지 기다릴 수 없으니 우선 수술 시작하고 나중에 설명 드릴게요."

    보호자가 울면서 묻는다.

    "그렇게 위험한가요?"

    "지금 바로 수술안하면 돌아가세요."

    "예. 그럼 해 주세요. 잘 부탁드려요. 선생님."

    "예. 그럼 지금 수술방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수술방 전화연결.

    "아, 엄윤인데요. 얘기 들었죠? subclavian(중심정맥관) 잡을 거니까 준비해 주시고요. suction(흡입기구) 두개 준비하고 saline irrigation(복강내 세척) 많이 해야 하니까 saline 30병 쯤 준비하세요."

    "예, 마취과장님은 20분 정도면 도착하신대요."

    "예. 알았어요."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응급실.

    “엘리베이터 잡아놓고, 모니터링과 산소통은 같이 올라갑시다."

    환자 침대를 같이 밀고 응급실을 나선다. 수술방은 2층이라 얼마 걸리지도 않는 시간이지만,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는 시간도 올라가는 시간도 다시 문이 열리는 시간도 억겁의 세월처럼 길게만 느껴진다.

    "아..참.. ICU(중환자실) 자리는 있나요?"

    따라오던 응급실 간호사가 수술실과 같은 층의 ICU로 뛰어간다.

    "과장님, 자리 없다는데요."

    "이런, 젠장. 없으면 만들라고 해요."

    ICU charge(책임간호사)가 이내 나와서 말한다.

    "과장님, 우리 자리 없어요, 갑자기 이러시면 어떡해요."

    "아니, 그럼 환자를 그냥 죽여요?"

    ▶2편에서 계속
    ※’Antonio Yun의 진료실 이야기'의 저작권은 저자인 외과 전문의 엄윤 원장이 소유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