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비의료인이 병원을 개설해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병원을 의미하는 '사무장병원'은 요양급여비용을 편취하는 '사회악'으로 강력한 철퇴를 통해 사회에서 퇴출돼야 할 의료계의 폐단으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사무장병원이라 하더라도 실제 의료인에 의한 진료행위가 이뤄지기도 하는 만큼 사무장 병원 개설 명의인에게 아무 기준 없이 해당 병원에서 발생한 요양급여비용을 전액 환수하는 처분은 문제가 있다는 사법부의 지적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15일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행정법원 제1부는 A의료법인이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26억8437만원의 부당이득징수처분 취소 소송에서 A의료법인의 손을 들어줬다.
비의료인에 의해 건강검진실 개설·운영 혐의로 검진비용 전액 환수…대법원, 브레이크
공단은 2014년 10월 27일 A의료법인이 설립한 A병원이 2010년 6월 1일부터 2014년 7월 31일까지 의료기관 개설 자격이 없는 비의료인 B씨에게 건강검진실을 개설‧운영하게 했음에도 마치 B씨가 직접 운영하는 것처럼 건강검진비용을 청구해 지급받았다며 '국민건강보험법 제57조 제1항'에 근거해 해당 기간 받은 공단으로부터 받은 건강검진비용 전액 약 36억380만원을 환수한다는 결정을 통보했다.
A병원은 B씨에게 해당 건강검진실을 위탁해 운영한 사실이 없으므로 처분 사유가 인정되지 않고, 공단이 처분 사유에 적시된 기간 동안 공단으로부터 받은 건강검진비용 전액을 환수하는 것은 재량권을 일탈 남용한 경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선행환수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를 제기했으나 제1심 및 항소심에서 원고의 청구가 기각됐다.
하지만 2020년 6월 대법원이 이른바 '사무장 병원'의 개설 명의인에 대한 공단의 일률적인 요양급여비용 전액 환수가 재량권 일탈‧남용에 해당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선고하면서, A병원의 항소심 판결이 파기됐다.
이후 파기환송심에서 재판부는 "건강보험 요양기관으로서 의료법인인 A병원이 비의료인인 B씨와 이 사건 건강검진실의 운영에 관한 동업 약정을 체결하고, 건강검진실 건강검진실의 운영 수익을 2:8로 나누어 가졌다고 봄이 상당하다. 병원에 지급된 건강검진비용은 비의료인이 의료인과 동업으로 개설한 요양기관에 지급된 요양급여비용으로서 부당이득징수처분의 대상이 된다는 이유로 선행 환수처분의 처분 사유는 인정되나, 건강검진비용 전액을 환수하는 것은 비례의 원칙에 위반돼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법이 있다"고 밝혔다. 2020년 10월 16일 선행 환수처분을 취소하는 판결을 선고해 해당 판결이 확정됐다.
공단, 환수결정액 감액·조정 기준 마련했지만 총 금액의 25%만 감액…원고 "재량권 일탈·남용"
관련 대법원 판결이 선고된 이후 공단은 2021년 1월경 '불법개설요양기관 환수결정액 감액-조정 업무처리 지침'을 제정했다.
공단은 이 기준에 따라 보험급여 심의위원회를 개최해 A병원이 비의료인인 B씨에게 건강검진실을 위탁운영한 기간 동안 지급받은 건강검진비용 총 35억7916원의 환수결정 금액 중 재량준칙에 따른 감액비율을 적용해 환수금액을 총 금액의 25%를 감액한 나머지 약 26억8437만원으로 조정해 통보했다.
원고 측인 A병원은 처분 사유가 된 '사무장병원' 사실을 전면 부인하면서도 만약 A병원이 비의료인인 B씨가 검진실 운영에 관해 상호 동업한 사무장병원을 운영한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공단이 결정한 감액 한도 25%는 재량권 행사 범위를 축소한 것이라고 반발했다.
무엇보다 A병원 건강검진실에서는 면허 자격을 갖춘 의료인에 의해 적법한 건강검진이 이뤄졌고, 고용한 의료인을 통해 건강보험 가입자나 피부양자에게 정당히 건강검진을 한 후 그 비용을 공단으로부터 지급받았을 뿐이기에 건강검진비용을 전액 부당하게 취득했다고 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A병원이 건강검진실을 운영해 취득한 수익의 절반은 B씨에게 인센티브 명목으로 지급되거나 매출액의 20%만큼만 A병원에게 구속돼 실제로 A병원이 취한 순이익은 적었다는 것이다.
이에 A병원은 "그런데도 공단은 이러한 제반 사정을 참작해 적정한 재량권을 행사하도록 한 관련 대법원 판결 취지에 반해 총 건강검진비용의 25%만을 감액하는데 그쳤다. 이 사건 처분은 원고에게 지나치게 가혹해 재량권을 일탈 남용했다"고 주장했다.
사법부, '부당이득' 환수에 초점 맞춰야…환수 감액·조정 재량준칙, 재조정 필요성 지적
재판부는 A병원이 비의료인인 B씨와 동업약정을 맺고 검진실 운영 수익을 2대8로 나눠 가졌다는 사실이 인정되는 만큼 '사무장 병원' 사실을 뒤집을 만한 사정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재판부는 공단이 A병원이 받은 건강검진비용 총액 중 25%만을 감액해 약 26억8437만원을 환수하기로 결정한 처분은 공단의 재량준칙에 근거한 것이긴 하나, 의무위반에 비해 지나치게 과중해 비례의 원칙에 반한다고 판단했다.
구체적으로 재판부는 공단이 사무장병원의 개설명의인 등을 상대로 요양급여비용을 징수할 때는 자격을 갖춘 의료인이 요양급여를 실시해 적절한 수준의 진료가 이뤄졌는지 아니면 이를 초과해 소위 과잉진료를 했는지 등 요양기관이 실시한 요양급여 내용을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외에도 법원은 △요양급여비용의 액수 △의료기관 개설‧운영 과정에서의 개설명의인의 역할과 불법성의 정도 △의료기관 운영 성과의 귀속 여부와 개설명의인이 얻은 이익의 정도 △그 밖의 조사에 대한 협조 여부 등의 요소를 고려할 것을 제시했다.
재판부는 특히 "이 사건 처분이 사무장병원이 취득한 '부당이득'을 환수하는 데 본질이 있고, 사무장 병원의 법 위반행위에 대한 제재는 형벌 부과로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 공단은 해당 요양기관의 요양급여 내용 등을 비중 있게 고려했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공단이 마련한 재량준칙은 사무장병원의 불법에 대한 '제재'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에 따라 '개설‧운영 과정에서의 역할과 불법성의 정도'의 감액비율 한도는 15%, '요양급여비용 관련 불법운영 기간'의 감액비율 한도는 10%로 설정하고, 가장 비중 있게 고려해야 할 ‘요양급여내용’의 감액비율 한도는 2%로 제한하고 있다.
그 외에도 '요양급여비용 금액'의 감액비율 한도를 5%, '운영성과의 귀속 및 이익의 참여 여부'의 감액비율 한도 5%로 설정했으며, 관련 대법원 판결이 제시한 '개설명의인이 얻은 이익의 정도'는 별도의 독립적 요소로 고려하지도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재판부는 사무장 병원에 대한 요양급여비용 환수금액 감액‧조정에 관한 재량준칙을 마련할 때 ▲의료인 아닌 자에 의한 무면허의료행위가 있었는지 ▲의료기관의 경영주체와 실제 의료행위를 하는 의료인이 분리됨에 따라 보건의료의 질이 저하된 것이 있었는지 ▲지나친 영리위주의 과잉 의료행위가 발생했는지 여부를 중점적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제시했다.
재판부는 "A병원 건강검진실에서는 면허자격을 갖춘 의료인에 의해 적법한 건강검진이 이뤄졌고 보험급여기준에 어긋나는 부당청구 내역은 2019년 4건 2만5840원으로 총 건강검진금액 대비 미미한 수준이고, A병원은 건강검진실 매출액의 20%만 분배받아 개설명의인인 의료법인이 취득한 이익 수준은 비교적 크지 않았다"며 "A병원을 운영한 의료법인의 처분사유는 인정되나, 감액‧조정된 환수금액이 지나치게 과도해 비례의 원칙에 반하므로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법이 있어 취소돼야 한다"고 판결했다.
해당 사건의 원고 측 소송 대리인인 김준래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건보공단이 내린 환수처분이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단을 받은 후 다시 내린 환수처분조차도 위법 하다는 판단을 내린 사건이다. 이러한 일련의 판결은 사법부가 '건보공단의 환수처분 기준이 공정하지 않다'고 여러 차례에 걸쳐 지적하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고 전했다.
김 변호사는 "특히 해당 사건은 의료법인이 얻은 이득이 20%에 불과함에도 건보공단이 75%의 부당이득금을 징수하겠다고 처분을 한 것으로 의료법인이 얻은 이득을 외면한 지나친 행정처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김 변호사는 "공단은 사법부가 보더라도 수긍할 수 있는 공정한 환수기준을 만드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하나의 사건에 대해 여러 차례의 행정처분이 모두 위법하다고 판단을 받는다면, 향후 건보공단 행정처분을 신뢰할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