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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역외상센터에 헛도는 바퀴, 복지부는 외과 전공의를 '사용'하려고 한다

    [칼럼] 여한솔 대한전공의협의회 부회장

    전공의 권역외상센터 의무 수련, 현실적 대안 아냐

    기사입력시간 2018-01-22 05:00
    최종업데이트 2018-01-22 05:00

    이번 글은 여한솔 칼럼니스트의 지난 2017년 12월 21일자 칼럼 <권역외상센터를 위한 지원, 헛도는 바퀴가 되지 말기를>에 이은 두 번째 글입니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 촌철살인(寸鐵殺人)
     
    지난 11월 청와대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온 어느 한 시민의 청원에 28만여명이나 되는 많은 국민이 참여했다. 그 덕분에 소리 소문 없이 묻혀 갈 것 같던 권역외상센터의 문제점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의 청원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중증외상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국내 의료시스템이 과연 적절한가.
    의사들이 눈치 보지 않고 환자를 치료할 수 있게 해 달라.
    의사들이 하루에 한 번은 충분한 잠을 잘 수 있게 해 달라.
    의사들이 최소한의 보편적인 삶을 살면서도 자신의 사명감을 지킬 수 있게 해 달라.
     
    청원을 작성한 이가 실제 현장에서 밤잠을 설쳐가며 일하던 의료진인지, 아니면 의료진을 동정과 연민의 눈으로 바라본 일반 시민인지, 그가 누구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청원 내용이었다. 그는 중증외상센터에서 근무하는 의료진이 어떤 문제로 걱정하고 괴로워하는지 명확하게 짚었다.
     
    ** 언어도단(言語道斷)
     
    보건복지부 박능후 장관은 국민청원에 대해 환자 이송체계 개선과 의료진 처우개선, 내실 있는 중증외상센터 관리 방안 등을 발표했다. 박 장관이 해결책으로 제시한 다른 부분에도 문제가 일부 있지만, 그가 마지막에 언급한 내용은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였다.
     
    "외과 전공의들을 일정기간 권역외상센터를 거쳐 의무적으로 수련하게 하겠다. 전공의 입장에선 중증외상에 대한 이해도가 넓어지고, 센터에선 전공의를 둘 수 있어 인력 수급이 원활해질 것이다.''
     
    '설마 정말 저런 말을 했겠어? 뭔가 잘못 봤을 거야'라고 생각하며, 다시 기사를 읽어봤다. 권역외상센터 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해 박 장관이 꺼낸 카드는 대학병원의 전공의를 '사용'하자는 것이었다.
     
    ** 아연실색(啞然失色)
     
    박 장관의 발언에 일선 의료계는 그야말로 대혼란에 빠졌다. 대한민국 의료를 책임지는 복지부의 수장이 실제 의료현장을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을 내비쳤다. 어쩌면 전공의와 모든 의료진을 완전히 '무시'한 처사였다.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이국종 교수가 박 장관에게 '병원에 있는 외과 전공의들을 사용하면 권역외상센터의 인력수급 문제는 쉽게 해결될 것'이다'라고 말했을 리는 없다. 이는 펜대를 열심히 굴리면서 고민했을 박 장관과 공무원들이 꺼내 든 해답이다.
     
    ** 목불식정(目不識丁)

    박 장관은 이국종 교수와 세 시간이나 면담을 했다고 했다. 현재 아주대병원의 외과 전공의를 보면 1년차 0명, 2년차 4명, 3년 차 0명, 4년차 4명이 일하고 있다. 4년차 전공의는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하고 곧 병원을 떠날테니, 앞으로 이 병원의 외과 전공의는 전체를 통틀어 총 4명밖에 없다. 왜냐하면 올해 아주대병원 외과에 지원한 전공의는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머릿 속을 맴도는 하나의 질문. 외과 전공의 자체가 터무니없이 부족한 실정인데 권역외상센터에서 무슨 수련을 받고, 어떤 전공의를 외상센터에 둘 수 있다는 것인가. 
     
    ** 고식지계(姑息之計)
     
    전공의를 '사용'하겠다는 장관의 생각은 전형적인 '언 발에 오줌 누기'식 행정 처리라 생각한다. 그 이유는 크게 2가지로 분류해 접근해 볼 수 있다.
     
    첫째, 외과 전공의가 중증외상환자를 치료할 수 있도록 교육적인 목적일 경우다. 정부는 외과 전공의 수련 내용을 역량 중심으로 개편해 더 나은 전문의를 양성하려는 고민을 먼저 했어야 한다. 단순히 국민에게 권역외상센터 지원책을 보여주기 위해 외과 전공의를 권역외상센터에 파견한다면 이들은 해당 수련을 감당할 수 없다.
     
    역량 있는 외과 전문의를 양성하려면 전공의 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재원을 투자해야 한다. 하지만 복지부는 투자는 하지 않으면서 국민이 관심 가질법한 이슈에 외과 전공의들을 '사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문제의 본질을 놓친 보여주기식 행정처리이자  현실적인 대안이 되지 못한다.
     
    둘째, 만약 외과 전공의로 권역외상센터에 부족한 인력을 보충하기 위한 목적일 경우다. 정부는 전공의에 대해 수많은 환자를 제대로 치료할 수 있는 미래의 전문의로 보는 것이 아니다. 그저 부족한 인력을 손쉽게 확보할 수 있는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정부는 왜곡된 권역외상센터의 의료체계와 전공의 수련환경 체계를 바로잡을 의지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전공의법에 명시된 환자 안전과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 방향과 일치하지 않는다. 나아가 대한민국 의료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올바른 방향도 아니다.
     
    ** 백척간두(百尺竿頭)
     
    중증외상환자들이 몰려드는 권역외상센터를 밤낮 가리지 않고 내일도, 모레도 지켜야 할 핵심인력은 결국 오늘의 인턴, 레지던트인 전공의다. 하지만 병원 현장에서는 외과 전공의 한명이 70명이 넘는 환자의 주치의가 되고, 당직 때는 혼자서 200명 이상의 환자를 맡고 있다. 
     
    환자의 건강과 안전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전공의 '의무적 외상센터 파견'은 현실적인 대안이 아니다. 환자와 전공의 모두를 지키기 위한 대승적인 정부대책과 현실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 결자해지(結者解之)

    이런 비극이 발생할 수밖에 없던 이유를 냉철하게 분석해야 권역외상센터에 제대로 굴러가는 바퀴를 달 수 있다. 왜곡된 수가로 의료진을 허덕이게 만든 것도 정부 탓이고, 권역외상센터 시설만 번지르하게 만들고 병원이 인건비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시스템을 만든 것도 정부 탓이다. 권역외상센터를 둘러싼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재원을 더 투자하라.'
     
    중증 외상 환자의 생명을 지키고 현장 의료진이 겪는 고충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정부 재원을 지금보다 더 많이 투입하는 것이다. 야간에 응급헬기를 띄운다고 환자가 살아나지 않는다. 헬기에 실려 오는 환자를 돌볼 수 있는 의료진의 확충, 즉 전공의가 아닌 전문의를, 센터에서 일하는 간호사를 더 뽑을 수 있는 재원을 마련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어쩌면 박능후 장관은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알면서도 대답을 못했을 지도 모른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재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부는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환자 생명을 지키는 수많은 전공의를 벼랑 끝으로 내몰지 말고 현실적인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