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이지원 기자] 비대면진료 환자의 치료 연속성을 높이려면 초진 처방일수를 법령으로 일률 제한하기보다 의사의 임상적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비대면으로 환자 상태를 충분히 파악한 의사에게 처방 자율권을 주되, 그 판단에 따른 책임은 강화하는 방식으로 하위법령을 설계하자는 것이다.
13일 열린 '비대면진료 관련 의료법 하위법령 제정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는 12월 개정 의료법 시행을 앞두고 처방 범위와 초진 기준, 의료진의 재량권, 의약품 오남용 방지 등 하위법령에 담길 세부 기준을 두고 논의가 이어졌다.
비대면진료는 코로나19 이후 한시 허용과 시범사업을 거쳐 운영돼 왔다. 이후 의료법 개정으로 의사와 환자 간 비대면진료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으며, 구체적인 기준은 하위법령에 위임돼 정부가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마련하고 있다. 개정법은 12월 24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초진 처방, 7일 등 일률 제한보다 의사 재량권…대신 책임 강화해야"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내분비내과 김헌성 교수는 비대면진료가 법제화된 만큼 일률적인 처방 제한보다 의료진의 재량권을 보장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설계할 것을 제안했다.
김 교수는 비대면진료 도입 과정에서 제기됐던 상급종합병원 쏠림과 건강보험 재정 악화 우려가 실제 시범사업에서는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고 평가하며, 우려를 반복하기보다 실제 운영 과정에서 확인된 문제를 보완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김 교수가 건강보험 데이터를 활용해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비대면진료의 99.8%는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이뤄졌다. 김 교수는 "비대면진료가 진행되면서 대학병원으로 쏠림 현상이 갈 것이라는 것은 일단 안심해도 될 것 같다"며 "건강보험 적자에 대한 이슈도 걱정할 수준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특히 처방 문제의 책임을 플랫폼에 돌리기보다 실제 처방을 결정한 의사에게 충분한 판단권을 주고 그 결과에 책임을 묻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비대면으로 환자 상태를 충분히 파악하기 어렵다면 처방하지 않거나 대면진료로 전환하면 된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비대면진료 플랫폼을 통해 탈모약이나 비급여 의약품을 처방하고 문제가 생겼다면 처방한 의사가 책임져야 한다"며 "환자의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판단하면 처방하지 않거나 대면진료로 전환하면 된다"고 말했다.
처방일수를 7일이나 30일 등으로 일률 제한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의사의 자율권을 보장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강화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탈모약이나 비급여 의약품의 오남용 문제와 고혈압·당뇨병 등 만성질환 관리 영역도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일부 비급여 처방 문제를 근거로 비대면진료 전체를 제한하기보다 질환과 위험도에 따라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플랫폼에 대해서도 배제하기보다 의료진이 주도권을 갖고 활용해야 한다고 했다. 일부 상업적 유인행위는 규제가 필요하지만 플랫폼 자체를 비대면진료 문제의 원인으로 보는 데는 선을 그었다.
의사의 판단을 뒷받침할 질환별 가이드라인과 대면진료 전환 기준도 필요하다고 했다. 특히 고혈압·당뇨병 등 만성질환은 환자 상태를 지속적으로 확인하면서 진료를 이어갈 수 있어 비대면진료의 활용 가치가 크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비대면진료의 본질은 진료의 연속성에 대한 이슈"라며 "이미 합법화된 시점에서는 옳으냐 그르냐보다 어떻게 잘 끌고 갈 것인지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약사회 "오남용 막을 사전 규제 필요"…산업계 "강화할 근거부터 따져야"
의사의 재량권을 확대하는 방향에 대해서는 약사회와 산업계의 시각이 엇갈렸다. 약사회는 시범사업 과정에서 이미 의약품 오남용 사례가 나타난 만큼 사전 제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산업계는 규제를 시범사업보다 강화하려면 실제 위험을 입증할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약사회 장보현 정책이사는 지역사회 대면진료를 중심으로 치료 연속성을 유지하면서 비대면진료를 보완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며, 의료서비스의 질과 환자 안전을 우선해 하위법령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정책이사는 현재 공개된 급여 데이터만으로 비대면진료의 전체 이용 양상과 안전성을 평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약국 현장에서는 탈모·여드름·비만치료제와 사후피임약 등 비급여 처방도 확인되지만 이를 포함한 전체 실태를 파악할 자료가 충분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이어 이소트레티노인 등 부작용이나 오남용 우려가 있는 의약품을 언급하며, 만성질환 관리에 필요한 의약품과 오남용 위험이 높은 의약품을 구분해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장 정책이사는 "자율에 맡기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문제가 현실에서 발생하고 있다"며 "비가역적인 손상이나 문제가 생겼을 때 사후에 어떤 책임을 질 수 있느냐"고 말했다.
민간 플랫폼과 의약품 배송에도 별도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진료비와 약값을 기준으로 의료기관이나 약국을 노출하거나 특정 처방을 유도하는 방식은 제한하고, 의약품 재택수령은 본인확인과 복약지도, 오배송·회수, 온도관리 체계를 마련한 뒤 확대 여부를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원격의료산업협의회 이슬 공동회장은 규제 필요성을 판단하려면 먼저 시범사업에서 어떤 위험이 실제로 확인됐는지 살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공동회장은 "명확한 근거 없이 지난 시범사업보다 규제를 후퇴시켜서는 안 된다"며 "처방 일수나 처방 가능한 의약품을 다시 축소해 일률적으로 금지해야 할 정도의 특별한 사례나 임상적 근거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처방 제한 기준도 초진·재진이라는 형식적 구분보다 의료진이 환자정보를 얼마나 확보했는지를 중심으로 설계할 것을 제안했다.
이 공동회장은 "아무런 정보가 없는 초진 환자와 과거 진료 이력, 투약 이력, 건강검진 결과 같은 건강정보를 확인한 환자에게 동일한 규제를 적용하는 것이 합리적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진료 연속성 역시 같은 의사나 의료기관을 계속 이용하는 것으로 한정할 필요가 없다고 봤다. 의료기관이 바뀌더라도 환자의 진료기록과 투약정보가 다음 의료진에게 이어지면 치료를 연속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솔닥 이호익 공동대표는 당뇨병 환자의 원격 모니터링 사례를 언급하며, 의료 마이데이터와 연속혈당측정기(CGM) 등으로 환자 상태를 지속적으로 확인하는 의료진에게 새로운 의료기관이라는 이유만으로 초진 처방 제한을 적용하면 오히려 진료 연속성을 해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한의사협회 김형갑 정보통신이사는 "비대면 진료는 대면 진료를 대체하는 서비스가 아니라, 진료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보완적 수단이어야 한다"며 "비대면 진료만 연달아 받는 것보다는, 대면–비대면–비대면–대면처럼 교차하는 진료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복지부 "진료 연속성 개념, 과거 진료기록 등 환자 정보 연계 검토"
이날 정부는 ▲의사의 판단권과 책임을 어떻게 결합할지 ▲'진료 연속성'을 어떻게 정의할지 ▲의료진의 과거 진료정보 확인 여부를 규제에 어떻게 반영할지 등을 하위법령 마련 과정에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 박정환 인공지능데이터정책과장은 "시범사업을 통해 얻은 교훈과 여러 배울 점을 어떻게 잘 반영해 하위법령을 마련할 것인지가 정부가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며 "의사가 어떤 방식으로 주도성을 가지고 비대면진료를 이끌어갈 것인지, 그것이 어떻게 책임성과 결합돼 갈 것인지 실질적인 제도와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진료 연속성을 반드시 '같은 의사에게 계속 진료받는 것'으로 한정할 필요가 있는지도 검토할 계획이다. 박 과장은 같은 의사가 계속 진료해야 진료 연속성이 인정되는지, 의사가 달라져도 같은 증상에 대한 치료가 이어지면 연속성을 인정할 수 있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뿐 아니라 과거 진료기록을 확인할 수 있는 환자에게 규제를 달리 적용하는 방안에 대한 검토도 예고했다. 박 과장은 "과거 진료기록 확인과 규범의 적용 여부가 연관되면 좋겠다는 말씀으로 이해했다"며 "규범을 만드는 것뿐 아니라 현실적으로 작동하게 하려면 어떤 추가적인 노력이 필요한지도 같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 과거 진료기록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의료진이 실제 비대면진료 과정에서 환자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춰야 한다. 박 과장은 이를 위해 건강정보 고속도로의 활용을 확대하는 문제와 비대면진료 중개 플랫폼이 환자의 건강정보와 어떻게 연계될 수 있을지 등을 논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환자정보 보유 수준이나 환자 유형에 따라 규제를 지나치게 세분화하는 데에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규제를 달리 적용하더라도 현장에서 적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기준을 만드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 과장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지는 않다"면서도 "요건을 나누기 위해 규제가 지나치게 다변화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