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이 불법이 아니라는 취지의 대법원 판단이 나오면서 향후 한의계 현장에서 초음파 기기 사용이 얼마나 늘어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의계는 벌써 초음파 기기 공동구매에 나서는 등 격양된 분위기지만 정부 가이드라인과 의료급여 등 제도화 과정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중론이다.
27일 메디게이트뉴스 취재결과, 대법원 판결 이후 한의계는 초음파 진단기기를 공동으로 구매하려는 움직임이 실제로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법원 판단 이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지만 일부 한의용품 판매 사이트에 침 시술 가이드용 초음파기기가 벌써 주간 베스트 상품에 올라온 것이다. '주간 베스트'는 해당 사이트에서 한 주간 가장 있기 있는 상품을 말한다.
한의계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고 나서 벌써부터 초음파 기기 공동구매와 관련된 공지와 메신저 등 글이 자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한의사협회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향후 초음파 진단기기를 비롯한 현대 진단기기를 진료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한의협은 성명서를 통해 "대법원 판결 취지에 맞게 보건당국은 특정 이익단체의 눈치를 보지 않고 (진단기기를 현장에서 활발히 활용할 수 있도록) 신속하고 합리적인 후속조치를 해달라"고 촉구했다.
정부 구체적 가이드라인 내놓기 쉽지 않아…"이견 좁히기 자체 어려울 것"
그러나 이 같은 움직임과 별개로 한의원 등에서 본격적인 초음파 기기 사용이 이뤄지려면 넘어야 할 장벽이 많다.
한의사의 초음파 기기 사용이 공식적으로 허용된 것이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사용 지침에 대한 가이드라인이나 건강보험 등재 등 제도적 시스템이 갖춰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 전까진 실제 현장에서 초음파 기기 사용이 대폭 늘어나더라도 실제 의료법 테두리 안에서 이뤄지려면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에 대해 대법원도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이 허용된다고 해서 곧바로 한의원의 초음파 검사료가 국민건강보험의 대상이 된다는 취지가 아니다"라며 "국민건강보험법상 요양급여 대상에 해당하는지는 국가의 보건의료정책 및 재정의 영역으로, 그 진료방법이 의료법 위반인지 여부와는 별개"라고 선을 그었다.
한의계 현장에서 초음파 기기 사용이 보편적으로 이뤄지려면 정부의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및 유권해석 등이 필요하다. 사법부 판단은 한의사의 초음파 기기 사용이 위법이 아니라는 정도의 해석이라는 점에서 세밀한 부분의 의료행위 가능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 같은 가이드라인을 내놓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워낙 의료계와 한의계 등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이 첨예한 데다 정부가 관련 논의를 이어가기도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대한영상의학회 황성일 의무이사는 "문재인 케어 등으로 인해 초음파 건수가 늘어났다는 지적이 있는 상황에서 초음파 사용 범위가 대폭 늘어날 수 있는 판결이 나와 우려스럽다"며 "국내 의료제도 자체가 현대의학과 한의학으로 이원화돼 있는 상황에서 관련 지침이 필요하긴 하지만 지침을 내놓기까지의 조율 과정이 순탄친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급여화 과정도 난항 예상…관련 논의 전무 쟁점 많아 논의 자체 '요원'
한의계 초음파기기 급여화 과정도 쉽지 않아 보인다. 한의사 초음파기기 사용 행위가 현행 건강보험체계 내로 들어오기 위해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한방의료행위전문평가위원회,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등을 거쳐야 한다. 관련 논의가 전무하고 쟁점이 많은 사안인 것을 감안하면 최소 2~3년 이상의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만약 한의사 초음파 기기 사용이 최초 비급여로 인정되더라도 급여화 여부는 미지수다. 한의사 물리요법의 경우도 2008년 비급여로 인정받은 뒤 지금까지 급여로 전환되지 않았다.
대한내과의사회 김태빈 보험정책단장은 "사법부 판단과 별개로 국내 의료시스템 내에서 한의사의 초음파 기기 사용은 면허 제도와 급여체계 자체를 뒤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재 보험 급여를 논의하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워 보인다. 향후 급여화 과정은 요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판례를 뒤엎는 사법부 판단으로 정부도 난처하긴 마찬가지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구체적으로 초음파 기기 사용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 전면 허용은 가능한 것인지 등 여부에 대한 유권해석이 필요하지만 섣불리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의료계와 학계의 반대가 심한 가운데 구체적인 지침을 내놓을 경우 의-한 양측의 갈등이 커질 수 있어 우려가 큰 상황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미 대법원 판결은 나왔지만 판결문을 세밀하게 분석하면서 향후 상황을 지켜볼 것"이라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