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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이번 추석 명절은 안전이 제일

    [칼럼] 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장·전 세계의학교육연합회 부회장

    기사입력시간 2024-09-10 09:17
    최종업데이트 2024-09-11 15:14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서부 전선 이상 없다’라는 영화 제목은 ‘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라는 소설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배경인 소설은 독일 작가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가 쓴 반전 장편소설이다. 우리나라에 번역본과 영화로도 소개가 된 잘 알려진 명작이다. 원본 ‘서부전선 이상없다’는 원작자 레마르크가 경험한 제1차 세계대전을 바탕으로, 한 병사가 겪어야 했던 어처구니없는 끔찍한 전장을 세세하게 묘사한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 파울 보이머는 속칭 국뽕과 애국심에 물든 담임 선생의 권유로 급우들과 함께 입대했으나 곧 전쟁 영웅이 되겠다는 허황된 생각은 사라지고 결국 생존과 기본적인 욕구 충족 이외 아무것도 관심 없는 전쟁 도구로 변한다.

    이들은 전쟁이 끝나도 자신들이 과거의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강한 의구심을 품은 채 처참한 전쟁의 상황에 갇히게 된다. 전쟁터의 외부 상황에서는 독일 정부의 기만적인 선전으로 ‘서부 전선’이 조용하고 별 이상 없이 안정적인 것으로 국민을 철저하게 기만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는 수 많은 병사들이 죽어 나가는 참혹한 형국이었고, 결국 연합군과의 협상을 통해 독일이 항복하고 말았다. 
     
    정부는 이상 없다는데 필수의료는 이미 ‘킬링 필드’

     
    원소설이 발표된 것은 1차 세계대전 직후였다고 한다. 이미 100년이 지난 세월이 흘렀다. 이 소설이 익숙하지 않은 현 세대는 ‘서부 전선 이상 없다’를 서해 백령도, 연평도 등 서부 도서 지방의 북한 도발이 없다고 생각한 분들도 있을 것이다. ‘서부전선 이상 없다’라는 표현은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보건복지부 장관과 대통령실이 주장하는 우리나라 응급의료에 대한 주장과도 비슷하다. 이제 영문에서 “서부 전선은 조용하다(이상없다)”라는 문구는 어떤 맥락에서든 침체나 눈에 띄는 변화가 없음을 의미하는 하나의 ‘구어체적 표현’이 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현재 심각하게 붕괴되는 응급의료 상황에서 ‘서부 전선 이상 없다’라고 반복하고 있다. 많은 국민이 불안해하고 국가적 위기 상황으로 치닫고 있음에도 “응급의료는 안정적으로 변화 없이 잘 유지되고 있다”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상황임을 알리는데도 정치적으로는 지지율이 지속적인 하락세를 면치 못하는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다.

    응급실의 안정적 유지에도 응급의학과 의사나 119구조대, 그리고 환자와 가족들은 이 상황이 종결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여론도 바뀌어 정부나 용산 대통령실이 주장하는 정책의 절차적 정당성과 타당성마저 의심받고 있다. 대통령에게 왜곡되고 잘못된 정보를 제공해 대통령의 고집을 최대한 발휘시킨 행정관료들은 누구인가? 이런 상황에서도 해당 부처는 정보 공개를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다.
     
    의사 악마화도 모자라 청문회 위증으로 국민 기망행위
     

    허황된 애국심으로 어린 병사들을 군에 입대시킨 ‘서부 전선 이상 없다’와 그 결을 같이 한다. 의료 개혁의 빼어난 영웅의 가능성을 보았던 현 정권은 이제 고집 수호를 위한 용산을 보며 의견을 달리 하기 시작했다. 정권의 본능적 욕망은 지지율 보전이고 정권의 유지와 재창출이다. 물론 정부의 모든 결단이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보건복지부 차관은 그동안 그 무더운 여름날에도 전투복처럼 열심히 입고 다녔던 사파리 스타일의 초록색 ‘민방위복’을 어느 순간 벗어 던지고 정장 차림의 말끔한 양복으로 갈아입고 기자 브리핑에 임하고 있다. 속칭 ‘바지 총리’와 ‘바지 장관’ 역시 마찬가지다. 전공의가 집단사직을 할 때부터 이미 의사의 단체행동을 예상한 듯 의사의 집단행동을 무조건 불법행위로 규정하고 미리 잘 준비된 듯한 행정적, 법적 대응으로 겁박하고 응수했다. 의사의 집단행동에 대해 선진국에서는 볼 수 없는 경찰의 압박 수사와 의사협회 지도부의 사전 교사 혐의로 탈탈 터는듯한 조선시대의 사화를 연상케 한다.

    ‘바른말을 토설할 때까지 매우 쳐라’라는 과거의 국문장의 모습도 국민들만 바라본다는 명분으로 현재의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거침없이 행하고 있다. 의사들이 생명을 볼모로 집단행동을 한다며 사회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보건복지부 관련 고위 공직자 모두가 착용한 오징어게임의 초록색 민방위복은 어디에 가고 이제 역으로 양복을 입은 안정된 상태에서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조용하다’를 외치고 있다. 의사의 집단행동의 여파는 문제가 없으며 매우 안정적이라는 역설적 주장이다. 그동안 ‘의사 악마화’의 단골 메뉴인 의사의 집단행동은 생명을 담보로 하는 범법 행위라는 주장과는 모순된다.
     
    국민만 바라본다는 현 정권 정치 생물학적 본능에 의해 오작동 반복 

     
    의대 증원에 이렇게 의사 집단이 반대하는 나라는 없다는 주장에 대해 이런 무모한 방식으로 의대 증원을 밀어붙이는 나라가 지구상에 있는가 반문하고 싶다. 청문회라는 국민 앞에 매우 엄숙한 자리에도 거짓과 기만, 그리고 거짓을 위한 회의록 비공개 등의 상식에 반하는 규범을 적나라하게 선보였다. 청문회를 통해 보여준 좌절스러운 정부 고위 관료들의 답변을 보며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연상케 했다. 장관의 역할이 용산을 지키기 위한 기억상실증에 빠진 것인지 아니면 개인적 충성 경쟁인지 분간하기 힘든 나라가 됐다.

    현재의 의정 갈등의 해소책은 빨리 증원을 통해 의료 개혁을 완수하는 것이라는 장관의 답변은 하루에 수만 명의 전상자를 배출한 1차 세계대전의 해결책은 전쟁 종결이 아닌 전상자 보다 더 많은 병사를 투입해 전쟁을 확대시켜야 한다는 주장과 같아 보인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책임지는 보건과 복지를 위한 장관이 틀림없는지, 아마 이것도 국민만 바라본 장관의 소신있는 답변으로 보인다.
     
    이제 곧 추석이다. 전통적으로 추석 명절에는 효도형 응급실 방문이 많았다. 이제 늦게나마 정부가 나서서 가벼운 질환은 응급실 이용을 자제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친절한 보건복지부 차관은 응급실 이용 기준점은 전화로 문의할 정도면 경증으로 규정했다. 관료주의의 극치를 보여준 현 정부가 추석 기간 환자 행동 요령에 관한 ‘정부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를 유지하기 위한 창조적 발상이다.
     
    응급의료 등 긴 연휴가 두려운 필수 영역의 전문의
     

    응급의학 전문의들은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인 추석을 두려워하고 있다. 이제 보건복지부는 행정명령으로 응급실 근무자의 공포 분위기 교사를 막아야 할 모양이다. 행정관료 사무관들을 응급의료기관에 발령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혼란스러울 것으로 보인다. 응급의료기관에 대한 감시에 들어간 것인지, 아니면 심폐소생술이라도 배워서 의사를 도와주려는 심산인지 궁금하다. 이참에 행정관료에게도 PA 자격을 부여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어차피 별도의 PA 면허는 없으니까.
     
    여하튼 용산 대통령실이 천명했듯이 우리나라는 전진 중이다. 경제 성장도 만족스럽고 의료 개혁도 뚜벅뚜벅 제대로 잘 진행되고 있다. 이제야 비로소 의사추계기구를 하필이면, 그것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설치한다고 한다. 관변 연구기관에 대한 의료계의 신뢰는 대단히 낮다. 추계의 사회적 수용도도 본다고 했는데, 과연 의료제공기관이 생각하는 사회적 수용도는 무엇인지 파악은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의료계가 선진 의료를 참조하여 주장한 독립된 민간 공적 기구의 망상은 또 버려야 할 것 같다. 우리나라 서해안이든, 아니면 우리나라 의료의 서부 전선이든 조용하고 이상 없는 것이 착시가 아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메디게이트뉴스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