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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급환자 못받는 권역응급센터

    3개 대학병원 모두 난색, 응급전달체계 고장

    "중환자실도 없고, 당장 수술도 어렵다"

    기사입력시간 2015-09-22 05:07
    최종업데이트 2015-09-22 07:25



    응급 두개술을 하지 않고 뒤늦게 수술을 해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의료기관에 대해 법원이 3억 6천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대형병원 응급의료센터의 환자 적체라는 고질적인 문제와도 연관이 있었다.
     
    환자 A씨는 안방 문지방에 걸려 넘어지면서 후두부를 크게 부딪치는 외상을 입고 구급차로 F병원에 내원했다.
     
    의료진은 뇌CT를 촬영하는 한편 중환자실에 입원시키고 경과를 관찰했다.
     
    신경외과 의사 K씨는 뇌CT 촬영 결과 3.2cm 길이의 후두개와 경막상 혈종(EDH)이 동반된 좌측 후두부 골절, 우측 전두부 외상성 지주막하 출혈, 뇌내 출혈, 좌측 전두부 소량의 경막하 출혈 등의 소견을 확인하고는 오후 1시 58분 뇌 MRI 촬영을 했다.
     
    그 결과 경막상 혈종 증세가 진행중에 있으며, 향후 병변이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 오후 3시 20분경 보호자 면담 끝에 상급병원으로 전원하기로 결정했다.


    중환자실 없어 환자 못받는 권역응급의료센터

    이에 F병원 의료진은 정부가 권역응급의료센터로 지정한 A대학병원과 P대학병원에 연락을 취했지만 모두 중환자실에 자리가 없으며, 수술도 어려워 전원이 곤란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러자 지역응급의료센터로 지정받은 C대학병원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여기도 마찬가지로 중환자실에 자리가 없어 환자를 받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F병원 의료진은 오후 4시 50분에야 중소병원인 H병원 응급의료센터로부터 전원이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자 진료의뢰서를 첨부해 전원 조치했다.
     
    전원할 상급병원을 찾지 못해 1시간 가량을 허비했고, 권역응급의료센터나 지역응급의료센터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 것이다.
     
    A씨는 오후 5시 25분 H병원 응급실에 도착했고, 오후 6시 12분 뇌CT 촬영을 한 결과 좌측 후두부 골절, 좌측 후두개와 및 우측 전두부 경막상 혈종, 우측 전두부 출혈성 뇌좌상, 심한 뇌부종 소견이 확인됐다.
     
    이에 의료진은 환자와 보호자에게 뇌부종이 진행돼 의식이 저하되면 수술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하고 중환자실에 입원시켰다.
     
    환자는 중환자실 입원 직후인 오후 7시 45분 이미 의식이 처진 양상과 자극에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며, 동공반사를 보이지 않았고, 담당 의사도 이런 사실을 보고받았다.
     
    다음날 오전 3시 40분경에는 동공반사가 비정상일 뿐만 아니라 강한 자극에도 전혀 눈을 뜨지 못했으며, 자극시 사지 강직 증상이 나타났다.
     
    H병원 의료진은 A씨가 자가호흡을 하지 않는 상황에 이른 오전 5시 20분에서야 대뇌 부종 완화를 위한 양측 두개골 감압술 및 혈종제거술에 들어갔다.
     
    하지만 환자는 수술후에도 자가호흡이 측정되지 않고 빈맥과 강한 통증 무반응 등의 증상을 보였고, 대학병원으로 전원 했지만 사망했다.
     
    이에 대해 A씨 보호자들은 “F병원이 응급 개두술을 시행하거나 여건상 수술이 불가능했다면 신속하게 수술이 가능한 병원으로 전원 시켜야 함에도 오후 4시 50분경에야 H병원으로 전원 조치한 과실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이들은 H병원의 경우 환자가 혼수상태에 빠진 뒤에야 수술을 한 과실이 있다며 F병원, H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고 나섰다.


     
    1심 법원은 두 병원의 과실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서울고법은 최근 H병원에 손해배상책임이 있다며 1심과 다른 판결을 내렸다.
     
    서울고법은 "F병원 의료진은 환자의 경막상 혈종 증세가 진행중에 있으며 향후 병변이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상급병원으로 전원하기로 결정했고, 보호자와의 면담과 상급병원으로의 전원 가능성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시간을 소요한 것이어서 전원을 지체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법원은 "H병원은 A씨가 전원돼 뇌 CT 촬영을 한 직후 바로 응급 개두술을 시행해 혈종을 제거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했다"면서 "늦어도 환자의 의식이 처지고 동공반사가 보이지 않으며 자극에 큰 반응이 없는 등 신경학적 이상 증세가 나타난 오후 7시 45분경에는 지체 없이 혈종 제거를 위한 수술을 시행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뒤늦게 수술을 시행함에 따라 이미 수술 도중 뇌헤르니아가 발생할 만큼 상태가 악화됐고, 수술적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못한 채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한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
     
    뇌헤르니아는 머리에 외상을 입어 두개강 안의 압력이 높아지면 뇌의 일부가 두개강 밖으로 빠져나오는 현상을 말하며, 뇌탈이라고도 한다.
     
    이에 법원은 H병원의 과실을 70%로 제한해 3억 6천여만원을 손해배상하라고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