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이지원 기자] 대규모 자금과 전문인력이 필요한 글로벌 임상 3상을 국내 바이오기업이 직접 이끌 수 있을까.
아리바이오 프레드 김 미국지사장은 15일 열린 '2026 코넥트 임상시험 국제 콘퍼런스(KIC)'에서 "글로벌 임상 3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전문성과 임상 운영 역량, 지속 가능한 자금 조달이 필요하다"며 "특히 지속 가능한 자금 조달은 국내 바이오기업에 가장 어려운 과제일 수 있다"고 밝혔다.
이날 김 지사장은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후보물질 'AR1001'의 글로벌 임상 3상 'POLARIS-AD'를 사례로 국내 바이오기업이 글로벌 임상시험을 직접 주도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전략과 실행 경험을 공유했다.
아리바이오는 미국 현지 조직을 구축하고 복수의 임상시험수탁기관(CRO)과 협력하면서 임상 운영의 주도권을 유지했다. 또한 환자 모집과 검사 비용을 효율화하고, 지역별 기술이전 계약을 통해 임상 자금을 조달했다.
미국 현지 조직 구축하고 여러 CRO 활용…임상 운영 주도권 확보
글로벌 임상 3상을 직접 수행하기 위해서는 외부 전문기관의 역량을 활용하면서도 임상시험의 핵심적인 의사결정권은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아리바이오는 위해 미국 샌디에이고에 현지 조직을 구축했다.
미국지사에는 정규직 14명과 파트타임 직원 20명이 근무하며 글로벌 임상 운영과 규제 대응, 사업개발 등을 담당하고 있다.
김 지사장은 "미국 현지 조직을 통해 임상 운영의 핵심적인 의사결정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며 "임상시험 계획서 설계를 직접 결정하고, 내부 규제업무팀이 각국 규제기관과 소통하며 운영상 의사결정도 자체적으로 수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임상 운영에는 단일 CRO에 전반적인 업무를 위탁하는 대신 분야별 전문업체를 활용했다. 임상 운영과 데이터 관리, 통계 분석, 안전성 평가, 영상 분석, 품질관리 등을 담당하는 업체들이 참여했으며, 아리바이오 미국지사와 한국 본사가 전체 임상시험을 총괄했다.
김 지사장은 "여러 업체가 참여하기 때문에 어느 한 업체에 임상시험 운영을 전적으로 맡길 수 없었다. 우리가 직접 임상시험과 협력업체를 관리해야 했고, 그만큼 의사결정과 전략에 대한 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구조는 외부업체의 인력 교체에 따른 영향을 줄이고, 서로 다른 업체로부터 다양한 의견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업체들이 서로의 업무를 확인하고 검증할 수 있어 임상시험의 품질을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됐다"고 부연했다.
아리바이오는 자체 임상시험모니터요원(CRA) 10명도 배치했다. 이들은 외부 CRO 소속 CRA와 함께 임상기관을 관리하면서 연구진과 직접적인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외부 CRA에 대한 교육과 업무 지원도 담당했다.
환자 모집·유지부터 검사 비용까지…글로벌 임상 운영 효율 높여
글로벌 임상 3상에서는 충분한 환자를 확보하는 것뿐 아니라 적합한 환자를 선별하고, 치료기간 동안 참여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대규모 임상시험일수록 환자 모집과 검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아리바이오는 POLARIS-AD에서 스크리닝 탈락률 61.9%, 중도탈락률 12.2%를 기록했으며, 치료 완료자의 95.5%가 연장시험에 참여했다.
김 지사장은 "스크리닝 탈락률과 중도탈락률은 최근 다른 대형 제약사들이 진행한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임상 3상과 비교해도 낮은 수준"이라며 "경구 치료제의 편의성이나 환자가 체감한 효과 등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지만, 이러한 지표는 환자 모집과 유지 과정에서 확보한 임상 운영 역량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특히 국내 환자 모집 과정에서는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KoNECT)의 지원을 활용해 환자 선별과 임상기관 연계를 진행했다.
아리바이오는 2023년 1월 재단의 공익적 임상시험 지원 대상으로 선정돼 임상 수행 가능성 검토와 임상기관 연계, 환자 모집 등을 지원받았다. 재단은 AR1001 전용 임상시험 참여 페이지를 개설해 환자와 보호자의 신청을 받았으며, 약 1000건의 상담을 통해 400명가량을 임상기관의 사전 스크리닝 과정으로 연결했다.
이러한 지원과 함께 국내 참여 임상기관은 21곳에서 26곳으로 확대됐고, 최종적으로 국내 환자 200명이 등록됐다. 국내 스크리닝 탈락률은 34.8%로 글로벌 전체 임상의 61.9%보다 낮았다.
김 지사장은 "재단의 지원으로 임상기관과 연구진의 관심도 높아졌다"며 "한국에서는 스크리닝 탈락률이 34.8%로 가장 낮았는데, 이러한 결과에는 정부의 지원이 상당 부분 기여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환자 모집과 함께 임상시험 비용을 줄이기 위한 검사 전략도 활용했다. 아리바이오는 알츠하이머병 병리 확인에 아밀로이드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보다 비용이 낮은 뇌척수액(CSF) 바이오마커 검사를 적극 활용했다.
POLARIS-AD에서 활용된 검사 비중은 CSF 62.4%, PET 37.6%였다. 아리바이오는 후지레비오와 협력해 Lumipulse 분석장비를 직접 설치하는 방식으로 검사 비용을 절감했다.
김 지사장은 "CSF 검사는 PET보다 비용이 낮고 더 많은 바이오마커를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후지레비오와 협력해 자체 분석장비를 설치하면서 임상시험 비용을 상당히 줄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일괄 기술이전 대신 지역별 계약으로 상업화·임상 자금 확보
글로벌 임상 3상을 직접 주도하기 위해서는 임상 운영 역량뿐 아니라 장기간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자금 확보가 필수적이다. 특히 자금 조달 여력이 제한적인 국내 바이오기업에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김 지사장은 "국내 바이오기업으로서 글로벌 임상 3상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며 "투자자들의 상당한 지원이 있었지만 추가적인 자금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 지역별 독점 상업화 계약을 활용했다"고 밝혔다.
아리바이오는 글로벌 전체 권리를 한 기업에 일괄 이전하는 대신 국가와 지역별로 상업화 권리를 나눠 단계적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투자 유치 외에도 개별 시장의 상업화 권리를 활용해 임상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는 방식이다.
구체적으로 한국의 삼진제약을 비롯해 중국과 기타 해외 시장의 파트너들과 AR1001의 지역별 상업화 계약을 맺었다. 계약은 선급금과 개발·허가 단계별 마일스톤, 판매에 따른 로열티 등으로 구성됐다.
이 가운데 실제 임상 자금 조달에 활용된 것은 계약 체결에 따라 지급받은 선급금이다. 아리바이오는 현재까지 지역별 계약을 통해 1억 달러 이상의 선급금을 확보했다.
김 지사장은 "알츠하이머병에서 다른 퇴행성 뇌질환으로 적응증을 확대하면서도 지역별 독점 상업화 계약을 지속해 연구개발 프로그램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