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천대 길병원이 웨어러블과 피부영상, 바이오마커 등을 활용해 고령자의 만성 가려움과 대상포진후신경통을 객관적으로 측정하고 위험을 예측하는 인공지능(AI) 기반 플랫폼 구축에 나선다.
가천대 길병원은 병원 컨소시엄이 보건복지부 ‘2026년도 한국형 ARPA-H 프로젝트’ 복지·돌봄 분야의 ‘고령층의 보이지 않는 고통의 가시화와 해결방안’ 과제에 최종 선정돼 가려움 분야 연구를 맡는다고 10일 밝혔다.
한국형 ARPA-H 프로젝트는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 K-헬스미래추진단이 추진하는 보건의료 난제 해결형 연구개발 사업이다. 성공 가능성보다는 성공했을 때 국민 건강과 의료체계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고위험·고보상 연구를 지원한다.
이번 과제는 가천대 길병원 피부과 김현정 교수가 연구책임자를 맡아 ‘VISTA-Geri-ITCH’를 추진한다. 연구 기간은 4.5년이며 전체 연구비는 최대 75억원 규모다.
연구 목표는 고령자의 난치성 가려움증과 대상포진후신경통(PHN)을 객관적으로 가시화하고 위험을 예측해 환자별 정밀중재로 연결하는 AI 기반 연구·실증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다.
만성 가려움과 대상포진후신경통은 고령자의 수면과 정서,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그동안 환자가 증상의 정도를 숫자로 답하는 주관적 평가에 주로 의존해 왔다.
특히 야간 가려움은 수면을 방해하고 우울과 낙상 위험을 높이는 동시에 가족과 돌봄 종사자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장기요양기관에서는 피부과 전문의에게 신속하게 진료받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고령자에게 비전형적인 발진으로 나타날 수 있는 옴 등 감염성 가려움은 진단이 늦어지면 시설 내 집단감염이나 2차 세균감염으로 이어질 위험도 있다. 연구진은 가려움을 단순한 불편 증상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측정하고 관리해야 할 ‘감각고통’으로 정의했다.
김현정 교수는 “고령 환자 가운데 밤새 가려움에 시달리거나 대상포진 이후 오랜 기간 통증을 견디면서도 ‘나이가 들면 원래 그런 것’이라며 참는 분들이 많다”며 “그동안 측정하기 어려워 관리되지 못했던 고통을 객관적인 데이터로 가시화하고 조기 예측과 맞춤형 중재로 연결하겠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웨어러블과 피부영상 등 디지털 데이터에 바이오마커와 오믹스 등 분자 데이터를 결합해 가려움을 객관적으로 정량화할 예정이다. 디지털 표현형과 분자 엔도타입, 설명가능 인공지능(XAI)을 연계해 고위험군을 조기에 발견하고 적절한 중재로 연결하는 정밀의료 체계를 구축한다.
연구는 총 3단계로 진행된다. 1단계에서는 다기관 데이터의 공통 규격과 예측·진단 AI 기반을 마련한다. 2단계에서는 고령자 메가코호트와 바이오뱅크를 구축해 가려움의 분자적 유형과 특성을 규명한다.
마지막 3단계에서는 거점병원과 1차의료기관, 장기요양기관을 연계해 실시간 관제와 중재기술을 현장에서 검증하고 한국형 가이드라인을 제안할 계획이다.
가천대 길병원은 과제 주관기관이자 표준화·현장실증 허브를 맡는다. 김현정 교수는 과제 총괄과 비대면 협진, 멀티모달 AI 기반 역중개 연구를 수행한다.
가천대 약학대학 심원식 교수는 가려움 기전과 멀티오믹스 연구를 담당한다. 가천의생명융합연구원 김영재 교수와 의공학과 김광기 교수는 옴 검출 형광영상 장치, 웨어러블 긁기 계측 및 피부영상 AI 기술을 개발한다. 예방의학교실 문종윤 교수는 질병 부담과 보건경제성, 정책 적용 근거를 마련한다.
연세대학교와 고려대학교, 한양대학교, 한림대학교, 가톨릭대학교, 단국대학교를 비롯해 아모레퍼시픽, 아크릴,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에버트라이 등도 연구에 참여한다.
참여기관들은 대상포진후신경통 예측모델과 옴 조기진단, 다기관 코호트·중앙 바이오뱅크, 피부노쇠지수, 맞춤형 외용제, 설명가능 AI 플랫폼, 천연물 후보소재 및 데이터 품질관리 등을 분담한다.
김우경 가천대 길병원장은 “이번 과제는 개별 증상 하나를 치료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고령자의 감각고통을 측정하고 설명하며 개입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연구”라며 “가천대의 의학·약학·의공학 융합 역량과 참여기관의 강점을 모아 실제 요양·돌봄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표준과 기술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연구 성과를 논문과 특허에만 머물지 않고 메가코호트와 바이오뱅크, 피부노쇠지수, 디지털 표현형, AI 데이터셋 및 국가 표준 데이터베이스로 축적할 계획이다.
향후에는 아토피피부염과 만성 두드러기, 만성신장질환 관련 가려움, 당뇨병성 신경병증, 욕창 등으로 적용 범위를 확대한다. AI는 의료진의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도구로 활용하고 최종 진단과 치료 결정은 피부과 전문의가 담당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