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나 간호조무사가 없는 군부대에서 군의관이 무자격자인 일반 사병에게 의료행위를 보조하도록 했다고 해서 의료법 위반으로 벌금형과 면허정지처분을 했다면?
그것도 지휘관의 허락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군의관으로 근무한 K씨는 최근 메디게이트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군의관 A씨 사건은 당시 군의관들 사이에서는 굉장히 충격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고 말했다.
대대 군의관으로 입대한 A씨는 지난해 부대 병사가 당뇨합병증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책임론에 휩싸였다.
A씨는 사단 헌병대와 군 검찰 조사를 받았는데, 기소 이유는 어이없게도 의료법 위반이었다.
A씨의 의료과실로 인해 병사가 사망했다는 물증을 찾지 못하자 의료법 위반으로 몰아간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의료법 위반 사유도 황당했다.
'무자격자 의료행위 교사' '진료기록 누락'.
이미 보도한 바와 같이 A씨는 부대 의무병이 1명에 불과해 업무 수행에 차질이 발생하자 지휘관의 허락을 받아 의무병이 아닌 사병에게 업무를 보조하도록 했다.
그런데 군 검찰은 이를 무자격자에게 의료행위를 교사했다고 판단했다.
'진료기록 누락' 혐의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A씨는 군 전자차트인 'E-DEMIS'가 다운되거나 초소 순회 진료 등 서버에 접속할 수 없을 때 수기나 노트북에 진료기록을 남겼는데, 군 검찰은 전자차트에 의료기록을 남기지 않는 것은 의료법 위반이라고 공소 사유에 포함시켰다.
군 법원도 검찰의 공소사실이 유죄로 인정된다며 벌금형을 선고했고, 보건복지부는 의료법 위반에 따라 면허정지 3개월 처분을 한다고 올해 초 통보했다.
K씨는 "A씨가 처벌받은 걸 보면 누가 봐도 괘씸죄"라고 못 박았다.
그는 "만약 간호사나 간호조무사만 의무행위를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할 수 있는 곳은 국군수도병원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군의관이 무자격자에게 의료행위를 교사? 황당하다"
현재 군 부대에 배치된 의무병은 간호사나 간호조무사가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암묵적으로 군의관의 지시에 따라 진료보조행위를 하고 있다.
전군에서 간호사나 간호조무사가 진료보조를 하는 곳은 채 1%가 되지 않는다는 게 군의관들의 설명이다.
K씨는 "간호사를 전군에 배치하면 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게 군의관의 책임은 아니지 않느냐"면서 "의무병이나 일반 사병과 같은 무자격자가 의무행위를 하도록 만들어놓고 군의관이 무자격자에게 의료행위를 시켰다고 처벌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K씨는 "제대하기 얼마 전에 A씨 사건 이야기를 전해 듣고 '나도 걸면 걸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의무병에게 시키지 않고 직접 모든 걸 챙기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또 그는 "A씨는 지휘관의 허락을 받아 사병을 의무병으로 활용했는데, 그러면 지휘관도 문책해야 하는데 왜 죄 없는 군의관만 처벌하는지 납득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K씨는 A씨가 진료기록을 누락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고개를 갸웃했다.
K씨는 "군 전자차트인 'E-DEMIS'는 실제 자주 다운되고, 전산망이 연결된 곳에서만 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모바일도 안되기 때문에 수기나 노트북에 기재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고 환기시켰다.
그는 "A씨는 원리원칙대로 잘 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렇게 되자 군의관들 사이에서는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이야기가 크게 돌았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만약 군의관들이 군인이 아니고 민간인 신분이었다면 A씨의 부당한 처벌에 대해 전부 다 파업에 들어갔을 것"이라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의무복무 3년 동안 부끄럼 없이 환자를 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A씨 사건을 보면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의료법 위반으로 걸 수 있다는 사실에 군의관들이 충격을 받았고, 마음의 상처를 갖고 있다"면서 "이런 처벌이 이어진다면 대혼란이 빚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전의총은 A씨 사건과 관련해 국방부와 해당 사단에 엄중하게 항의하고, 면허정지처분 취소소송에 들어가는 등 총력 투쟁하기로 방침을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