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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료자와 환자 간 부적절한 관계, 윤리적·법적 관리 필요

    환자와 성관계 맺은 전문의 K씨 논란, 학회 "윤리규정 마련"

    대한신경정신의학회·임상심리학회, 환자와의 경계위반 세미나 개최

    기사입력시간 2018-04-10 06:26
    최종업데이트 2018-04-10 06:26

    ⓒ메디게이트뉴스

    [메디게이트뉴스 황재희 기자] 최근 정신과 전문의 K씨가 환자와 부적절한 성관계를 맺는 등 윤리적인 문제가 논란이 되면서, 정신과 전문의와 임상심리사 등 치료자와 환자 간의 경계를 위해 윤리교육과 법적 제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의사와 환자와의 부적절한 관계는 비윤리적이며, 엄격히 관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신경정신의학회는 지난달 24일 정기대의원총회에서 환자와 부적절한 성관계를 맺고, 환자의 인적사항을 온라인에 게재하는 등의 여러 윤리적 물의를 일으킨 전문의 K씨를 제명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환자 A씨는 K씨가 치료 과정의 일환으로 성관계를 제안했다고 밝혀 현재 경찰이 K씨를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K씨는 배우 유아인 씨에 대한 정신과 소견을 자신의 SNS에 올려 논란이 된 인물로, 이외에도 의료법 위반 등의 여러 혐의를 받아 학회로부터 제명당했다.
     
    신경정신의학회는 "학회 내부에서 K씨의 성관계 문제가 윤리위반은 맞지만, 제명은 과하다는 의견도 있다. 반면 이것은 일종의 그루밍 성폭행(일정 기간 피해자를 위해주는 척 길들이다가 범행을 저지르는 것)으로 봐야 하며, 법률적 처벌도 가능하다는 견해도 있다"고 말했다.
     
    또한 "해당 논란을 두고 일부 국민들은 성인남녀 간 합의된 성관계가 무슨 문제가 있느냐는 반응도 보이고 있다"며 "이 문제에 대해 학회에서 좀 더 확실한 입장 정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신경정신의학회 윤리위원회와 한국임상심리학회는 9일 '치료자(의사 등)와 내담자(환자) 간 경계위반'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향후 치료자와 환자 간의 관계정립과 정신과 전문의로서의 윤리·인권의식 향상에 대해 논의했다.
     
    아주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장형윤 교수는 '치료자-내담자(환자) 간의 성관계' 주제에 대해 발표하며 "치료자와 환자 간의 성관계는 비윤리적이며, 이것은 환자에게 잠재적 위해를 가하는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장 교수는 "임상현장에서 치료자가 취할 수 있는 적절한 행동의 한계나 가장자리를 '경계'라고 하는데, 환자와 신체접촉 하지 않기, 미리 정해진 상담시간과 비밀 유지하기, 과도한 선물 거절과 환자와의 경제적 관계를 갖지 않기 등이 경계에 해당 한다"면서 "이러한 경계는 치료자와 환자의 양측을 보호하고, 공동의 치료적 목표에 도달할 수 있게 해준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환자는 자신이 예전에 중요한 대상과 가졌던 관계에서의 감정과 패턴이 치료관계 속에서 재현되는 전이(transference)현상을 경험하게 된다"면서 "치료자는 환자의 전이현상이 충분히 드러나게 한 후 적절한 시점에 이를 해석해 환자가 자신의 패턴에 대해 인식하고 병식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치료자가 환자에게 느끼는 역전이 현상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역전이 현상은 치료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 경계 위반에서 치료자가 역전이를 제대로 성찰하지 못한다면 문제가 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정 교수는 학회에서 정신과 의사가 지켜야 하는 윤리규정에 이와 같은 내용을 포함하고, 윤리교육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정신과학회에서는 환자와의 성적인 행동은 비윤리적이라고 명시하고 있으며, 미국심리학회에서는 치료 종결 후 2년 이전까지는 환자와의 성적 관계를 금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단기간 주입식 교육만으로 윤리적인 치료자가 되기는 어렵겠으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누구나 경계위반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예방해야한다"면서 "실제로 환자를 향해 성적인 감정을 느낀 적이 있다고 보고한 치료자는 80%가 넘는다는 보고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경계위반이 발생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치료자 혹은 치료자가 되고자 하는 수련생을 대상으로 교육하고, 지도감독 해야 한다"면서 "이 과정에서 성적인 경계위반에 대한 의혹이나 문제제기, 신고·고발 등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단국대 정신건강의학과 백기청 교수는 "환자와의 부적절한 관계는 당연히 비윤리적이지만, 임상현장에서 볼 수 있는 치료 개념에서 애매한 경계 부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면서 "외국에서는 환자가 필요하면 언제든 전화를 받을 수 있고, 직접 가서 진료를 볼 수도 있다. 다만 여기에 발생하는 비용을 따로 부담하게 하고, 이것이 정말 합당한 전화와 진료였는지에 대한 리뷰 등이 있어야한다"고 밝혔다.
     
    백 교수는 "이번 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면서 앞으로 학회가 윤리규정을 갖추고 징계과정을 논의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상식적인 선에서 충분히 설득하고 교육해서 조금씩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학회 내에서도 근본적인 취지에 동의하지만 반발이 있을 수 있다"고 환기시켰다.
     
    이번 세미나를 주최한 신겨정신의학회 윤리위원회 임기영 이사는 "환자와의 부적절한 관계는 무조건 징계해야 하며, 윤리적 징계를 넘어 법률적으로도 징계가 가능한지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하다"면서 "교육만이 능사는 아니다. 잘못한 사람에 대한 실제적 처벌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신경정신의학회 윤리위원회는 올해 하반기까지 학회 자체적이고 독립적인 윤리규정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번 사건 등을 포함해 여러 규정을 담은 기안을 마련하고, 법률자문 등의 절차를 거쳐 공청회를 통해 보완 작업을 거친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