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비대면 진료 확대를 내세우는 가운데, 대한병원협회가 대한의사협회에 비대면 진료로 일컫는 원격의료 합의를 전격 제안했다.
이는 감염병 사태에 한시적으로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되, 수가 인상 등 의료기관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대책을 함께 논의해 시너지를 발휘하자는 취지에서 나왔다. 의협은 '원격의료 반대'라는 원칙적 입장을 고수했으며, 대신 수가인상 등 사안별로는 논의 가능성을 열어뒀다.
극단적 의견갈등에 병협 "명분보다 실리 찾아야"
9일 의료계에 따르면 현재 의협과 병협은 원격의료 도입 여부를 두고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앞서 지난 4일 병협은 상임이사회를 통해 비대면 진료 도입에 찬성을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이에 의협도 성명서를 발표하고 병협의 입장에 대해 “독단적 결정”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8일 의협과 치과의사협회는 원격의료 반대 입장을 공동으로 발표했다.
한편 병협은 의견 분열이 아니라 원격의료에 대한 의료계 합의가 필요하다고 봤다. 이를 통해 코로나19로 어려워진 의료기관들의 지원책과 함께 수가 인상 방안 등 합의된 건의안을 도출하자는 것이다.
병협 관계자는 "최근 코로나19가 수도권을 중심으로 다시 유행하면서 5~6월 의료기관을 찾는 환자 수가 오히려 2~3월보다 더 줄었다"며 "이대로 가면 병원이나 개원가 모두 죽는다는 내부 여론이 많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향후 원격의료 도입에 대한 논쟁은 뒤로 미루더라도 감염병 사태에서 비대면 진료 확대는 허용하되 의료수가를 대폭 상향하는 방향의 안이 현실적으로 필요하다"며 "해당 안을 통해 정부에 적극적으로 건의하는 것이 환자와 의료계 모두에게 바람직해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의협은 병협의 원격의료 찬성 입장에 여전히 유감을 밝혔다. 다만 병협과 입장이 비슷한 수가 협상이나 의료기관 지원책 등의 사안에 대해서는 협력할 수 있다고 여지를 열어뒀다.
의협 관계자는 "정부가 감염병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시행한 비대면 진료에 대해 이미 실효성이 검증됐다거나 당연히 확대해야 한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분위기를 반대한다"라며 "그러나 이 같은 차원에서 병협 발표와 의협은 분명히 극명한 인식의 차이가 있다"고 했다.
그는 "다만 의협과 병협, 치협은 2021년 수가협상이 결렬됐다. 원격의료 이외 수가협상 문제와 불합리한 수가 결정구조, 코로나19로 인한 의료기관에 대한 정부차원의 특단의 대책 등은 서로 동일한 입장으로 보고 있다"며 "의협과 병협은 앞으로도 사안별로 논의를 지속할 수 있고 의견이 다른 부분도 합리적으로 대화를 이어 나갈 것"이라 말했다.
의협 의료정책연구소 안덕선 소장도 "의협은 무조건 원격의료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 상태에서 우리나라의 원격의료 도입이 어느 정도 실효가 있을지와 다양한 부작용에 대한 문제해결이 우선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영호 회장 "2014년 원격의료 찬성안 재확인 차원"…의협, 사안별 협력은 가능
한편, 병협이 의협에 이같은 제안을 한 것은 4일 상임이사회에서 의결한 원격의료 찬성 입장에서 나왔다. 병협은 코로나19 상황이 진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비대면 진료를 원칙적으로 반대만 하는 행태는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자칫 환자와 의료진 모두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병협 정영호 회장은 "최근 원격의료에 대한 통일된 병협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한달동안 내부적으로 의견수렴 과정을 거쳤다"며 "그 결과 앞선 2014년 당시 찬성 입장 안에 더해 이번 병협 집행부의 의견을 더해 초안이 도출됐다. 이번 발표는 2014년 당시 찬성입장을 재확인하는 차원이다"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대면진료를 의무화하고 개원가를 대상으로 한정하는 원격의료를 허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당시에도 의협과 병협은 원격의료 도입에 대해 의견이 나뉘었다.
정 회장은 "현재 수도권을 중심으로 집단감염 사태가 지속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는 제2의 대구지역 확산처럼 갈 수 있는 굉장히 위험한 사인이라고 본다"며 "지금이라도 비대면진료를 확대해 환자와 의료기관들의 안전을 확실히 도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의료기관들이 살 수 있는 방법은 비대면진료를 통해 환자와 의료진의 안전을 보장하고 원가 보상차원에서 정부가 의료기관 지원대책을 확대하는데 있다"라며 "이런 병협의 입장 발표를 원격의료나 의료산업화와 연결지어 비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