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만에 의사 출신 보건복지부장관으로 지명된 정진엽 후보자가 혹독한 인사청문회 신고식을 치렀다.
특히 정 후보자는 복지분야를 제쳐두고라도 자신이 전문인 의료분야에서조차 나름의 철학을 보여주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24일 정진엽 보건복지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열었다.
이날 인사청문회 최대 쟁점은 논문 표절 의혹과 의료영리화, 원격의료 등이었다.
정진엽 후보자는 제자 논문 표절 의혹을 부인하며 단순한 행정적 착오라고 해명했다.
정 후보자는 "석사과정에 있던 제자가 제 연구에 참여해 석사학위를 받았고, 이후 해당 논문을 수정 보완해 학술지에 게재하는 과정에서 제자의 이름을 누락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의료영리화와 관련 "저는 의료영리화에 반대하는 사람이고, 그럴 필요도 없다"면서 "전세계에서 우리나라 건강보험을 벤치마킹하고 있고, 지금 (의료민영화가) 필요한 정책도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대도시 원격의료 필요 없다"
의사-환자간 원격의료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찬성 입장을 표명하면서도 대도시 지역에서는 반대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김용익 의원이 원격의료의 문제를 지적하자 "원격의료는 공공의료 발전을 위해, 의료세계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못 박았다.
다만 그는 "대도시에서는 원격의료가 필요 없다고 생각 한다"면서 "원격의료의 근본 목적은 의료접근성이 떨어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목희 의원이 재차 원격의료를 공격하자 "의료기관이 10분, 20분 거리에 있으면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2차 시범사업 결과가 나오면 정책 방향을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는 전국의 만성질환자 등을 대상으로 의사-환자간 원격의료를 시행할 예정이어서 정 후보자가 장관에 취임한 후 어떤 해법을 제시할지 주목된다.
65세 이상 노인정액제에 대해서는 개선 필요성에 공감했다.
김제식 의원은 "65세 이상 노인들이 의원에서 물리치료, 주사만 맞아도 1만 5천원이 훌쩍 넘어 노인을 배려한 정액제가 별 의미가 없어졌다"면서 "정액제 구간을 1만 5천원에서 2만원으로 상향 조정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정 후보자는 "현실적으로 정액구간에 대한 지적이 맞는 것 같다"면서 "다만 이걸 고쳤을 때 예산이 얼마나 드는지 아직 검토하지 못했다"고 답변했다.
그는 의료전달체계 정립 역시 시급한 과제라고 말했다.
정 후보자는 "의료전달체계, 응급의료전달체계를 다시 잡아야 한다고 생각 한다"면서 "환자의 중증도에 따라 경증은 동네의원에서 치료하고, 대형병원은 중증도 높은 환자를 치료하도록 해야 한다"고 단언했다.
정 후보자는 과거 서울대병원장으로 재직할 당시 개인 용도로 법인카드를 사용한 것으로 드러나 질타를 받기도 했다.
인제근 의원은 정 후보자가 분당서울대병원 법인카드 사용 지침을 일부 위반했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이에 정 후보자는 "4천원짜리 커피, 사무용품 15만원, 직원 초코렛 선물 1만 5000원 등에 일부 잘못 사용한 부분이 있었다"면서 "법인카드와 병원 인센티브카드가 모양도, 색깔도 똑같아 잘못 사용한 적이 있는 것 같다. 철저하지 못했던 점 송구스럽다"고 사과했다.
정 후보자는 메르스 사태와 관련 "컨트롤 타워가 없었던 게 가장 큰 문제였고, 전문가가 없었다"면서 "역학조사관도 그렇고 감염전문가가 부족했으며, 있어도 제대로 교육이 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소신이 뭐냐"
하지만 정진엽 후보자는 메르스 사태 해법, 의료산업화, 보건부와 복지부 독립, 원격의료,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 등 굵직한 현안에 대해 "전문가, 관련 단체와 협의하겠다", "국회의 의견을 경청하겠다" 등 원론적인 답변으로 일관해 전문성을 의심받았다.
특히 복지분야에서는 식견이 떨어진다는 혹독한 점수를 받았다.
김성주 의원은 "앞으로 공부를 해서 하겠다는데 미리 알고 있는 사람도 판단하기 어려운데 이제 공부를 시작해서 장관을 할 수 있겠느냐"고 꼬집었다.
이종진 의원은 "소신을 갖고 답변하라"면서 "인사청문회 시간만 넘어가면 된다는 식이라는 평가가 많다"고 질타했다.
한편 정 후보자가 분당서울대병원장 재임 외에 대외적인 이력이 거의 없었고, 의료 이슈에 대해 주목할 만한 소신 발언을 한 것도 없는데다 다운계약서 작성이나 군 면제 등의 단골 이슈도 없어 야당 의원들도 공격 지점(?)을 찾느라 애를 먹었다.
별 다른 이슈가 없자 오전 10시에 시작한 인사청문회는 8시간만에 끝났다.
정 후보자에게는 긴하루였고, 속시원한 답변을 기대했던 의사들 입장에서는 답답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