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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아그라와 글쓰기

    -글로 살아남기

    [칼럼] 양성관 가정의학과 전문의 겸 작가

    기사입력시간 2022-03-26 13:12
    최종업데이트 2022-03-26 14:17

    양성관 작가의 의학 칼럼 쉽게 쓰기 
    양성관 가정의학과 전문의 겸 작가의 ‘의대 교수와 전문가들을 위한 칼럼 쉽게 쓰기’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의대 교수와 전문가들은 의학 논문 쓰기에는 익숙하지만 칼럼을 비롯한 일반적인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의대 교수들이 건강칼럼을 쉽게 쓰면 쓸수록 올바른 의학정보가 같은 전문과는 물론 다른 전문과 의사들, 그리고 일차 의료기관의 의사들, 나아가 환자들에게까지 두루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글쓰기에 대한 시작 자체가 어려운 의대 교수와 전문가분들이라면 관심과 참고 부탁드립니다. 

    ①간만에 청진기 대신 펜을 드신 교수님께
    ②글로 살아남기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팔팔, 오르그라, 세지그라, 스그라, 자하자, 센돔, 누리그라, 해피그라, 프리야, 헤라그라. 의사라면 어디서 들어본 이름일 겁니다. 네, 맞습니다. 비아그라의 카피약, 요즘 젊은이들 말로는 '짭'입니다. 10년 전 무려 55개의 회사에서 101개의 제품이 출시됐고, 지금 한국에서 판매 1위인 것은 오리지널은 ‘비아그라’가 아니라, '팔팔'입니다. 

    그럼 어떻게 카피약인 '팔팔'이 오리지널인 '비아그라'를 비롯한 수십 개의 약을 제치고 당당하게 1위가 됐을까요? 성능? 가격? 아닙니다. 딱 하나 차이입니다. 

    그래도 명색이 의사로서 품위와 체면이 있지, 무슨 모텔 이름도 아니고 '스그라', '오르그라', '세지그라', '자하자'를 처방하기에는 민망합니다. 이건 약을 복용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장난치는 것 같기도 해서 기분이 썩 좋지 않습니다. 그날엔포르테? 남자도 마법에 걸리나요? 오르맥스? 항생제인 오구맨틴인가? 프리야?는 도대체 뭔지 알 수도 없습니다. 

    정답은 '팔팔'입니다. 은근히 암시를 주면서도 천박하지 않는. 마치 '라면 먹고 갈래?' 같은 표현이라고 할까요? 수십 개의 제품은 물론이고, 오리지널마저 제치고 '팔팔'은 당당하게 1위를 차지하였습니다. 딱 하나, 이름 때문입니다. 

    글이 너무 천박해서 죄송합니다. 문파를 떠나, 강호에서 몸을 굴리다 보니, 경박스러워졌습니다. 다시 문파에 있을 때로 마음가짐을 경건히 해 봅니다. 

    제품의 이름에 해당하는 것이 글이나 논문에서는 제목입니다. 고지혈증에 가장 중요한 연구는 ATP guidline입니다. 여기서 ATP는 Adult Treatment Panel의 줄인 말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Vitmin D와 Omega-3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연구 중 하나는 VITAL-study(VITamin D and OmegA-3 TriaL)이고, 고혈압 기준에 대해서는 SPRINT study(Systolic Blood Pressure Intervention Trial)가 있습니다. 그외에도 PARADISE-MI, MIRACL study, ACCORD study, PIVOT study 같이 유명하거나 중요한 논문은 그에 어울리는 멋진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우유 한 잔과 사과 하나를 깎아 먹으면서 2개의 신문을 읽습니다. 제가 신문에 있는 글자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읽는다면, 병원 출근은 꿈도 꾸지 못하고 하루 종일 신문만 읽어야 할 것입니다. 30분 동안 저는 제목을 쭉 훑어보다, 제목이 시선을 끄는 2~3개의 기사만을 읽을 뿐입니다. ‘팔팔’이 수 십 개의 경쟁약을 물리치고 1등이 된 이유가 이름이듯 제목 덕분에 몇 개의 기사는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연예인뿐만 아니라, 작가가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비난이 아니라, 무관심입니다. 고혈압 약을 처방해도 환자가 먹지 않으면 효과가 없듯이 좋은 글도 사람들이 읽지 않으면 죽은 글에 불과합니다. 쉽고 재미있는 글을 쓰려면 가장 먼저 제목에 사활을 거십시오. 혹여나 연구나 실험을 소개하면서 영어로 된 논문 제목을 그대로 번역하는 건 구글이나 네이버에게 맡겨두셔도 됩니다. 

    교수님, 매년 얼마나 많은 최신 논문이 쏟아지는지 누구보다 잘 아실 겁니다. 미라클 스터디, 피벗 스터디, 바이탈 스터디 제목을 보면 뭔가 신비하지 않습니까? 세계적인 대가들조차 낚시에 가깝게 저런 제목을 짓는 것이 모두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려는 처절한 몸부림입니다. 그러니 교수님도 멋진 제목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확 끌어주십시오. 
     
    베스트 셀러에는 오의 법칙이 있습니다. 베스트셀러는 제목이 다섯 글자를 넘지 않는다는 것이죠. 성경, 삼국지는 물론이고, 해리 포터, 수학의 정석 모두 5글자 이내입니다. 5자 이내의 베스트셀러를 포기하더라도,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 13을 기억하십시오. 13일의 금요일에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것처럼, 제목이 13자를 넘어가면 글은 죽어버리고 맙니다. 

    제목은 글의 얼굴입니다. 멋진 얼굴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 잡아 주십시오. 5와 13, 이 두 숫자를 기억하세요. 그런데 제가 말이 너무 많다구요? 죄송합니다. 그럼 단 두 자로 마치겠습니다. ‘팔팔’. 감사합니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