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배진건 칼럼니스트] 미국 월스트리트(Wall Street)의 상징인 조각 '돌진하는 황소(Charging Bull)'가 1989년 뉴욕증권거래소 앞에 설치됐다가 밉상을 받아 맨하튼의 다른 곳으로 이전됐다. 지난 11월 8일 뉴스는 세워진 지 30년 만에 다시 뉴욕증권거래소 근처로 옮겨진다고 보도했다. 주식시장에서 향후 주가의 향방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Bull', 황소라고 칭하고 어둡게 보는 사람을 'Bear', 곰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황소와 곰이 싸우는 곳이 바로 주식시장이다.
지난 12월 2일 월요일 월가의 저명한 애널리스트인 베어드(Baird) 소속의 브라이언 스코니(Brian Skorney)가 바이오젠(Biogen)이 황소를 몰고 달리는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제인 '아두카누맙(aducanumab)'에 대해 'hype(과장된 광고)' 'fearmongering(위험한 요소 및 이슈를 의도적으로 과장시켜서 소문을 퍼트리고 불필요한 두려움을 일으키는 전술)' 그리고 심지어 'statistical malpractice(통계적 과실)'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부정적인 견해를 곰같이 내뱉았다.
바이오젠은 알츠하이머병 치료제가 절실한 상황을 빌미로 통계를 악용한 의료사고를 자행한다며 시니어 애널은 가능성이 희박한 10가지 분석 이유를 들었다. 바이오젠이 고용량의 아두카누맙 EMERGE 임상3상에서 1차, 2차 임상 충족점에서 유의미한 차이를 보였다고 주장했지만 시장의 의구심은 넘쳤다.
바이오젠은 시장의 의구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지난 5일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알츠하이머병 임상학회(CTAD 2019)에서 자세히 발표하기로 약속했다. 스코니가 부정적인 견해를 발표한 날은 바로 바이오젠의 학회발표 사흘 전이었다.
바이오젠은 이를 근거로 2020년 1분기에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신약허가를 위한 신청서(BLA)를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바이오젠의 의도를 꺾기 위해 시니어 애널은 의도적으로 주가를 미리 하향조정한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런 애널리스트의 기명보고서를 보면 부러움이 앞섰다. 외국에서는 이런 보고서와 이에 대한 기사가 많은 것 같은데 우리나라는 왜 없나? 이미 지난 칼럼에서 소개해드린 대로 지난 4월 4일 '이밸류에이트(Evaluate)'의 제이콥 필레스(Jacob Pileth)의 기명 기사가 흥미롭다. [관련기사=신라젠 임상 조기종료 사건을 보며…천국에서 안타까워 부르짖는 소리 '냉정하라!']
신라젠이 PHOCUS 임상3상 무용성 평가결과를 받아들이고 임상 3상 조기종료를 발표한 8월 4일도 아니고 사건의 넉달 전인 4월 4일이었다. 'Sillajen and Transgene bid to revive the oncolytic virus craze' 제목부터 부정적이다. 우리가 잘 아는 형용사 'crazy(미쳤다)'라는 단어를 명사 'craze'로 바꿔 표현했다.
우리 증권 시장에는 왜 애널들의 이런 기명기사가 없을까? 심지어는 관련 언론 기사도 찾기가 어렵다. 필자가 지난 11월 27일 피어스바이오테크(FierceBiotech)의 ‘HLB defends itself in row over 'Best of ESMO 2019' claim’ 이라는 기사를 접하게 됐다. 미국 경제전문지 블룸버그(Bloomberg)가 26일 "한국 제약회사인 HLB의 위암치료제가 유럽종양학회의 '베스트 오브 ESMO 2019'에 선정됐다고 10월 2일 발표한 것은 거짓"이라고 쓴 기사를 재조명한 것이다.
HLB 주가는 'Best of ESMO 2019' 뉴스 발표 바로 전날, 10월 1일 6만 9000원에서 10월 7일 58% 오른 10만 8900원이었고, 이런 주가 상승이 계속 이어져 10월 말 18만 5000원이 됐다고 보도했다. 주가조작 스캔들같은 기사로 보도했기 때문에 필자가 알게 됐다. 이렇게 주가가 엄청 올랐지만 블룸버그를 인용해 유럽종양학회의 공식 상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왠지 이 기사는 태극기가 두 개 걸린 사진과 함께 나왔기에 괜히 내가 죄 지은 사람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HLB 홈페이지를 방문해 직접 10월 2일 뉴스발표를 찾아봤다. "리보세라닙, The Best of ESMO 2019 선정 - 글로벌 블록버스터 항암제 옵디보, 키트루다와 어깨 나란히..." 이런 제목이 나온 페이지는 'PR Center'였고 자체는 'IR NEWS LETTER'였다. '여기 이 회사도 IR과 PR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PR은 'Public Relations'의 약자로 PR은 조직과 그 공중간에 서로 유익한 관계를 형성해주는 전략적인 커뮤니케이션과정이다. PR은 더 나가 회사나 단체가 공중과의 좋은 관계를 지속하기 위한 모든 활동을 말한다. IR은 'Investor Relations'의 약자로 기업과 주주·투자자 간의 정확한 의사소통을 말한다. IR을 통해 시장에 기업의 현재 진행상황과 경영방침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게 된다.
재밌게도 IR을 듣는 대상인 우리나라의 VC들은 "많은 스타트업들이 IR과 PR의 차이를 모르고 있다"고 불평한다. 외국 언론들이 의문을 갖게 하는 HLB의 홈페이지에 게재된 소식도 PR의 관점에서 'News Release'를 내보냈다. 그러나 PR과 IR을 제대로 하려면 과학(Science)을 바탕으로 한 사실(facts)과 투명성으로 리스크 관리를 해야 한다. 돈이 오고 가는 금융공간은 무엇보다 신뢰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특히 The Best of ESMO 2019로 키트루다, 옵디보, 리보세라닙이 선정되었는데, 키트루다와 옵디보가 지난해 수조원대의 매출을 올린 블록버스터 약물이라는 점과, 옵디보가 2018년 노벨생리학상 수상 대상 약물이었음을 감안하면, 이번 엘리바의 Angel Study가 The Best of ESMO 2019로 선정되었다는 사실은 저희 리보세라닙과 에이치엘비의 미래를 밝혀주는 굿뉴스라 평가됩니다."
사실을 살짝 뒤틀어 키트루다, 옵디보와 동급인양 같이 선정됐다고 투자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명백한 오보다. 투자자들에게 종교적인 희망을 심어주는 기사의 옳고 그름을 누가 관리할 것인가?
한국증시와 미국증시의 투자자 보호에 대한 관점이 다르다. 투자자 보호 면에서는 미국 헬스케어 자본시장은 민간 주도이고, 한국은 관 주도인 방식이 눈에 띄는 다른 점이다. 미국에서는 회사가 거짓된 정보를 제공한 것이 드러나 투자자에 손해를 끼치면 증권집단소송이 용이하다. 그러기에 헬스케어 상장회사 상대 증권집단소송이 일년에 수십 건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런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뻥치고 한탕 잡은 후 아무 일도 없는 것이다. 상장사가 거짓말을 해도, 대놓고 비판하는 애널리스트 찾기가 너무 어렵다. 물증이 있고 심정이 가도 아예 애널보고서를 안 쓰고 만다.
한국은 상장심사때 사기성 회사를 거르는 방식으로 투자자보호를 하려고 한다. 물론 상장 퇴출도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에서 피해본 주주들이 회사 상대로 집단소송을 하려면 오래 걸리고 복잡하고 어렵다.
이런 무비판 시장에서 거짓 정보에 누가 피해를 입는 것인가? 먼저는 개미라 불리는 직접 투자자들이지만 실상은 바이오시장 전체이다. 무엇보다 개미들도 현실에 대해 깊이 반성해야 한다. 우리나라 증시투자의 ~70%가 개미이고 ~30%가 전문기관이라고 한다. 미국은 ~90% 이상이 전문기관이라고 한다.
이 숫자의 문제가 무엇인가? 전문성이 부족한 개미들이 아무래도 시장을 주도한다. 더구나 자기가 선택한 주식에 종교적인 열광으로 주시하는 개미들은 가만히 안 있는다. 조금이라도 손해가 나는 뉴스나 기사라면 악성 댓글을 여기 저기 달며 종교적인 믿음으로 분노한다. 회사의 뻥을 지적하는 애널리스트가 있었지만, 여자 혼자 사는 집에 그 회사 개미들이 찾아와서 협박을 했다는 검증되지 않은 소문도 들린다.
일반인들은 미국 시장처럼 전문가를 통하여 주식에 투자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자기가 조사한 자료와 회사의 IR을 듣고 판단하기 때문에 역시 확률이 높다. 팩트를 잘 모를 수밖에 없는 개미들에게 근거를 살짝 비틀어 사실을 오도해 PR하는 회사가 없어질 것이다.
무엇보다 개미들도 일확천금이 아니라 은행금리보다 더 높은 수익에 만족해야 한다. 그래야 시장이 정상에 더 가까워질 것이다. 정부가 나서서 투자자 보호하라고 언제까지 목소리 높여 요구할 게 아니다. 누구든지 근거에 의해 사실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문화적, 법적 환경을 만드는 것이 좋겠다. "저 회사 뻥치는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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