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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반에 둔 항암제를 재발견하는 눈

    H라스에 효과 있는 FTI '티피파닙'

    [칼럼] 한국아브노바 배진건 소장

    기사입력시간 2017-09-08 05:00
    최종업데이트 2017-09-22 12:09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8월 22일 시장조사기관 이벨류에이트파마(EP: EvaluatePharma)가 내놓은 2017년 제약바이오산업 보고서에서 특별히 '15대 미(未)제휴 R&D 자산'이 내 눈길을 끌었다.

    EP는 아직 제휴가 체결되지 않은 신약후보 자산 가운데 미래 매출 예측으로부터 순현재가치(NPV: Net Present Value)를 평가한 결과 카이트파마(Kite Pharma)의 CAR-T 치료제 KTE-C19(Axicabtagene ciloleucel)가 가장 가치가 높다고 평가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KTE-C19는 NPV가 78억 1천만 달러로 추산됐으며 곧 FDA의 허가를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고 KTE-C10과 함께 3상 개발 단계에 있는 인사이트(Incyte)의 IDO 1 억제 항암제 에파카도스타트(Epacadostat)와 포톨라 파마슈티컬스(Portola Pharmaceuticals)의 Xa 인자 억제제 해독제 안덱사(AndexXa)가 3대 유망주로 꼽혔다.

    지난 8월 29일 제약업계를 뒤흔든 길리어드 사이언스(Gilead Science)의 카이트파마에 대한 120억 달러 규모의 인수합병(M&A)은 바로 EP 보고서의 신빙성을 높였다.

    지난 5월 카이트파마의 CAR-T 치료제 KTE-C19은 FDA 신속심사를 통해 생물학적 허가신청서(BLA)를 승인 받아 세계 최초로 CAR-T 치료제로의 가능성을 높였다. (액시캅타진 실로류셀(KTE-C19)은 악성 B세포의 표면에 존재하는 CD19를 타겟으로 하며 비호지킨 림프종을 적응증으로 한다.)

    EP 보고서 중에서 특히 내 눈길이 닿은 곳은 14번째 순위이지만 NPV가 937%로 시가총액보다 훨씬 높은 큐라 온콜로지(Kura Oncology)의 티피파닙(Tipifarnib)이다. 참고로, 시가총액보다 NPV가 높은 다른 두 회사는 카이로팜(시총 비율 494%)과 이노밴스(557%)이다.

    '파닙(farnib)'은 파르네실전달효소 억제제((FTI: farnesyl transferase inhibitor)의 약칭으로, 티피파닙(Tipifarnib)은 원래 얀센이 개발한 파르네실전달효소 억제제였기 때문이다.

    우리 세포 속에서 암 돌연변이를 촉진시키는 암유전자(Oncogene)인 라스 (Ras)는 기능에 따라 H라스, K라스, N라스로 구성된다. 라스 돌연변이는 전체 종양의 30%를 유발한다고 알려져 있고, 췌장암은 무려 95%가 라스 돌연변이 때문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라스가 작용하려면 라스 단백질 C-말단(C-terminal) 부분에 지질인 파르네실(farnesyl)을 붙여 세포막 안쪽으로 붙어야 한다. 이때 파르네실전달효소가 필요한데, 필자가 쉐링 플라우(Schering-Plough)에 만든 두 번째 에세이가 이 전달효소 활동을 스크리닝하는 것이었다.

    라스를 잡을 것이라 굳게 믿었고 에세이 결과도 좋은 선도물질을 발견했기에 그 이후 13년간 여러 동료들과 FTI 개발을 했지만 K라스와 N라스는 약을 처리하면 파르네실(farnesyl)보다 5개 체인(chain)이 더 긴 지질을 이용해 ‘대안적 프레닐화(alternative prenylation)’로 약을 교묘히 피하는 것을 발견하고 개발을 중단했다.

    하지만, K라스와 N라스에서의 불분명한 결과에 비해 H라스는 FTI 때문에 항암유전자 노릇을 할 수가 없다. 따라서, H라스 변이가 주된 암을 타겟으로 찾아 사용하면 그 타겟에서는 분명히 좋은 항암제로서 역할을 할 것이다. [6월 19일자 메디게이트뉴스 칼럼(오피니언) 참조]

    다른 빅파마들은 FTI를 개발하다가 임상에서 다 멈추고 선반에 올려 놓았지만 트로이 윌슨(Troy Wilson) 박사는 H라스를 타겟으로 하는 '정밀의학(precision medicine)'에 착안해 2015년 미화 6천만 달러($60M)를 투자 받아 큐라 온콜로지(Kura Oncology)를 창업했다.

    큐라 온콜로지는 H라스 변이 고형암, 특히 머리 목 편평 세포암(SCCHN: head and neck squamous cell carcinomas)을 포함해 말초성 T세포 림프종(Peripheral T-Cell Lymphoma), 골수형성이상증후군(Myelodysplastic Syndromes), 만성골수세포백혈병(Chronic Myelomonocytic Leukemia)에서 임상 2상을 진행하고 있다.

    얀센(Janssen)이 티피파닙(Tipifarnib)을 가지고 이미 5천 명의 암 환자에게 투약한 경험이 있기에 안전성에는 별 문제가 없다.

    다른 사람들은 FTI가 K라스와 N라스에 듣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부분을 보았지만, 트로이 윌슨 박사(Dr. Troy Wilson)는 나이가 이제 만으로 50이지만 H라스에 효과가 있는 것에 집중해 빅파마들이 선반에 둔 항암제를 다시 찾아보는 안목을 가졌다.

    트로이 윌슨 박사는 UC 버클리대에서 생유기화학(Bioorganic Chemistry)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암브락스(Ambrax)에서 연구를 하다가 웰스프링바이오사이언스(Wellspring Biosciences)와 어비디티나노메디슨(Avidity NanoMedicines), 인텔리카인(Intellikine) 등의 스타트업을 계속해 창업했다. 특히 인텔리카인(Intellikine)이 2011년 다케다(Takeda)에 합병돼 큰 성과를 이뤘다.

    누가 이런 안목과 죽은 과제에도 투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는가? 이런 용기를 가진 사람이 순현재가치(NPV)가 시가총액보다도 10배나 높은 것으로 평가 받는 회사의 CEO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