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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의사 봉침 사망 사건 1심 선고 “선한사마리아 의사 배상 의무 없다”

    응급의료법 중과실 여부 가르는 판례…의료‧법조계 “선의의 행위, 당연한 결과”

    법원,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의사는 4억7000여만 원 지급해야

    기사입력시간 2020-02-19 11:08
    최종업데이트 2020-02-26 21:47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위험에 처한 사람을 도와야 하는 의무는 도덕적 영역일까, 법의 영역일까. 또 선한 마음으로 환자를 살리기 위해 구조활동을 하다가 환자에게 위해가 발생한다면 그 책임을 도와준 이에게 물을 수 있을까.
     
    이 같은 물음에 대해 법원은 '선의'를 고려해야 한다는 쪽으로 무게를 실었다.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은 19일 한의사의 봉침을 맞고 아나필릭시스(anaphylaxis) 쇼크에 빠진 여교사의 응급처치를 돕다가 민사소송에 휘말린 가정의학과 의사 사건에 대해 의사의 배상책임이 없다고 밝혔다. 다만 한의사 A씨에 대해서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리고 4억7000여만 원을 유가족 3명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법원은 한의사에 대해 진료 계약을 맺은 상태에서 진료기록 감정결과 과실을 인정했다. 반면 가정의학과 의사에 대해서는 응급상황에서 의학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행위를 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판례는 선의의 응급의료에 대한 면책 규정인 응급의료법 제5조의2 내용 중 논쟁의 여지였던 '중대한 과실'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현행법에 따르면 응급의료를 위해 필요한 협조를 요청받으면 누구든지 적극 협조할 의무를 짐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응급처치를 제공하다가 발생한 재산상 손해나 사상에 대해 '중대한 과실'이 없을 경우에 한해서만 민‧형사 책임을 면책하고 있다.
     
    즉 신속하게 응급의료가 필요한 경우, 누구나 응급처치를 해야 할 상황이 연출되지만 이후 무과실을 입증하지 못하면 법적 책임을 면피할 수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와 법률 전문가들은 응급의료 상황에서 환자가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불가피하게 발생한다는 고려, 임의적 형벌 감면이 아닌 필요적 면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해 왔다.
     
    선고 직후 박종혁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에 감사드린다. 선의의 행위에 대해서 소송으로 갔다는 것 자체가 안타깝고 각박한 현실을 반영하는 게 아닌가 싶다”며 “국민 건강을 보호할 수 있는 올바른 의료제도를 위해서 의료인, 법조인, 국민 모두 노력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전성훈 변호사(법무법인 한별)는 "합당한 결론이라고 본다. 한의사는 진료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의무에 따른 과실 책임을 물은 것이고 의사는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계약에 따른 의무가 아닌 호의로 도와주러 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 변호사는 "의사의 과실이 있었는지 여부도 다퉈졌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설령 과실이 있더라도 선한 사마리아인법에 의해 사망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은 것 같다"고 해석했다.
     
    앞서 지난해 5월 30대 여교사 A씨는 부천 모 한의원에서 봉침시술을 받고 아나필락시스 쇼크로 뇌사에 빠져 6월 6일 사망했다.
     
    봉침 시술 후 환자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자 한의사는 같은 층에 위치한 가정의학과의원 원장에게 직접 도움을 요청했다. 이에 의사는 A씨에게 항알레르기 응급치료제인 에피네프린을 투여하고 심폐소생술 등 응급처치를 시행했다.
     
    그러나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고 응급치료를 담당한 의사가 제때 처치를 하지 못해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게 유족 측 주장이다. 이에 유족은 한의사와 함께 가정의학과 의사에게도 9억원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