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야 수면 위로 떠오른 것 같지만, 의료일원화 논의는 역사가 꽤 깊다.
1951년 '한의사' 면허가 제도화하면서 '2원화'를 시작한 대한민국 의료는 10년 뒤 한의사가 사라지고 한의과 대학이 폐지되면서, 처음으로 의학교육에서 의료일원화를 이룬다.
하지만 새로운 제도는 상호불신을 극복하지 못하고 1년 만에 사라져, 한의사는 부활(1962년)하고 한의사 면허가 다시 생겨(1963년) 현재까지 지속하고 있다.
의료계 내부에선 현재 약 2만명인 한의사가 더 늘 경우, 통합 논의 자체가 힘들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의료일원화에 속도를 내기 위해, 작년부터 다양한 관련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있는 것.
하지만 이 글을 읽는 의사 독자들도 직감하듯, 그 과정은 험난해 보인다.
당사자인 의료계와 한의학계 내부조차 각각 의견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의료계 내부로만 한정해도, 의사협회의 많은 회원은 '의료 행위 = 의대 졸업 후 면허자만 가능'이라는 공식이 깨지는 걸 원치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약평론가회는 21일 '의료일원화 왜 해야 하는가?'란 주제의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이날 컨퍼런스는 제목과는 맞지 않게 의료일원화를 해야 하는 명확한 이유를 제시하진 못했지만, 의료계 내·외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사람의 의견이 오갔다.
"무당굿도 의료비로 포함하는 나라"
"한의사도 척박한 진료 환경에 대한 탈출구가 절실했고, 현실적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있었던 것 같다."
대한의학회 장성구 부회장(경희의대)은 한의사들이 현재 처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국내에선 병을 낫게 하는 무당굿도 의료비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 장 부회장은 "그런 면에서 의료이원화는 국민도 혼란스러워하고, 의료비 상승의 주요 원인이 된다"는 소신을 밝혔다.
그는 이어 "국민은 전통의학에 뭔가 있을 거라는 막연한 환상을 갖고, 현대의학의 한계를 보완해 줄 거라는 기대를 한다"면서 "지금과 같은 상황은 정부, 국민, 의료계, 한의계 모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장성구 부회장은 "한의학이 현대의학에 편승해서 존재하겠다는 건 잘못된 생각"이라고 꼬집고, 의사와 한의사 간 협진에 관해서도 "(일원화를 위한) 미봉책으로, 이원화가 고착된다"고 평가절하했다.
'사회적 관점에서 본 의료통합의 과제'를 발표한 조병희 교수(서울대 보건대학원)는 통합의 현실적 어려움으로 의료계와 한의계의 다른 환경을 꼽았다.
사회학자 출신인 조 교수는 "일반적으로 의대 자체가 CAM(Complementary and Alternative Medicine)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다"라며, "의사 내부에서 의료일원화에 대한 지지가 크지 않고, 특히 개원가의 반대가 심하다"고 밝혔다.
그는 한의계가 처한 환경도 꼬집었다.
조 교수는 한의계가 1992년 한약분쟁으로 국가적 지지를 얻어 '한의학의 과학화'를 당위적으로 추진했지만, 그 결과 '한의학의 의료화 현상'만이 강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조병희 교수는 "한의계가 과학화를 명목으로 한약재 효과에 대한 실험과 SCI 논문 발표를 강화했다"라며, "그러나 부가가치가 높은 새로운 약제가 아닌, 이미 검증된 성분에 대한 논문뿐이어서 기술이나 약제 개발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방의 과학화 이후에 교육을 받은 한의사는 90년대 이전 선배와는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들"이라며, "한의사협회의 반대와는 달리 임상 한의원 다수는 일원화에 긍정적이다"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아직까진 의료계나 한의계 모두 통합에 대한 정치적 거부감이 커, "탈정치적 소통이 필요한 상태"라고 주장했다.
"한 환자에 대한 치료방법이 어떻게 다른 게 존재할 수 있나??"
환자단체와 언론계의 주장도 이어졌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의 안기종 대표는 "환자들은 치료를 위해 필요한 거라면, 의료일원화에 별 이의가 없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통합 후 의사가 이원화 때보다 정말 환자에게 좋을지는 아직 모르겠다"라며 판단을 유보했다.
안 대표는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예로 들면서 "정말 필요하면 의사도 사용하고, 한의사나 간호사도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냐"면서 "다만, 충분한 의료인 교육 후 사회적 신뢰감이 이뤄져야 하는데, 현재 한의사가 교육 후에도 제대로 사용할지는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의료일원화 논의 차 갔던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일화를 소개하면서 "복지부 한의약정책과 과장이 (의료통합을) 시민단체가 요구해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해, 그런 얘기한 적 없다고 반박한 적이 있다"라며, "통합이 환자를 위한 거면, 정말 필요한 건지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라고 제안했다.
김동섭 기자(조선일보)는 "한방병원과 달리 한의원은 계속 경영난이 악화해 앞으로 계속 현대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요구가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한의사가 현재 2만명인데 이 숫자가 늘수록 갈등은 더 깊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에 관한 논쟁에 대해 "결국 공격한 사람(한의계)이 이기고, 수비하는 사람(의료계)은 질 수밖에 없다"라며, "하나를 내주기 시작하면, 다른 것을 또 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김동섭 기자는 마지막으로 "한 환자에 대한 치료방법이 어떻게 다른 게 존재할 수 있냐"고 반문하고, "갈등관계로 갈 것인지, 상호존중해서 살 것인지, 한의계와 같이 전체 그림을 보며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