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주사치료 중 업무상 주의의무 소홀로 환자를 감염시켰다는 혐의로 기소된 의사가 대법원에서 구사회생했다.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과 마찬가지로 주사를 맞은 후 환자가 감염됐다는 사정 하나만으로 의사의 업무상과실이라고 확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법원은 해당 의사가 환자에게 주사 치료를 하는 과정에서 감염예방을 위한 조치를 소홀히 하는 등 과실을 저지른 사실도 증명되지 않았다며 단순히 결과만 놓고 의사 과실을 확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5일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대법원이 원심에서 업무상과실치상 죄 유죄 선고를 받은 의사 A씨 사건을 이 같은 이유로 원심 파기환송했다.
A씨는 2019년 7월 29일 환자 B씨의 어깨 부위에 주사를 놓았으나 주사부위에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상구균(MRSA)를 감염시켜 B씨에게 약 4주간의 치료가 필요한 우측 견관절, 극상근 및 극하근의 세균성 감염 등의 상해를 입게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의사인 A씨가 주사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손, 주사기, 환자의 피부를 충분히 소독하는 등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 감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으나 이를 소홀히 해 환자 B씨가 피해를 입었다고 판단했다.
원심은 A씨는 B씨에게 주사를 놓는 과정에서 맨손으로 주사를 놓거나 알코올 솜 미사용, 재사용 등 감염관리를 소홀히 한 사실이 인정되지는 않으나, A씨가 시행한 주사치료와 피해자인 B씨의 상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즉 원심은 A씨의 '의료행위 상 과실'은 명확하지 않으나 결과적으로 '악 결과'가 발생했으므로 이에 대한 책임을 A씨가 져야 한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앞서 2011년도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의료사고에서 의사의 과실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의사가 결과 발생을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예견하지 못했거나 결과 발생을 회피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회피하지 못했는지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
또 과실 유무를 판단할 때에는 같은 업무, 직무에 종사하는 일반적 평균인의 주의 정도를 표준으로 해 사고 당시의 일반적 의학의 수준과 의료 환경 및 조건, 의료행위의 특수성 등을 고려해야 한다.
2016년 대법원 판례에서는 의료사고에서 의사의 과실과 결과 발생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주의의무 위반이 없었더라면 그러한 결과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임이 증명돼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의사에게 의료행위로 인한 업무상과실치사상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의료행위 과정에서 공소사실에 기재된 업무상과실의 존재는 물론 그러한 업무상과실로 인해 환자에게 상해, 사망 등 결과가 발생한 점에 대해 엄격한 증거에 따라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설령, 의료행위와 환자에게 발생한 상해, 사망 등 결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에도, 검사가 공소사실에 기재한 바와 같은 업무상과실로 평가할 수 있는 행위의 존재 또는 그 업무상과실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증명하지 못했다면, 의료행위로 인해 환자에게 상해.사망 등 결과가 발생했다는 사정만으로 의사의 업무상과실을 추정하거나 단순한 가능성, 개연성 등 막연한 사정을 근거로 함부로 이를 인정할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실제로 A씨가 시행한 주사치료로 피해자 B씨에게 상해가 발생했다는 점은 인정될 수 있으나, A씨가 비위생적 조치를 취하는 등 ‘과실’이 있었다는 사실에 대한 증명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이뤄지진 못했다.
따라서 대법원 재판부는 "원심은 B씨의 주사치료와 피해자의 상해 발생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는 등의 사정만을 이유로 피고인의 업무상과실은 물론 그것과 피해자의 상해 사이의 인과관계까지도 쉽게 인정했다"며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의료행위로 인한 업무상과실치상죄에서 '업무상과실'의 인정기준과 증명책임에 대한 법리를 오해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이를 원심법원에 환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