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외과 전문의 A씨(피고인)의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의 정도가 가볍지 않고 이로 인해 소장폐색 환자(피해자)에게 상당히 중한 상해가 발생했다. 환자는 수술 이후에도 신체 기능의 상당한 악화를 호소하고 있다. 피고인에게 금고 6개월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다.”
의학적 판단으로 보존적 치료를 우선시하고 환자의 경제적 이유 등으로 수술 시기가 지연된 외과의사에게 금고형의 실형이 선고돼 대한외과의사회 등 의료계가 '발칵' 뒤집혔다.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아니라면 형사처벌 면책을 주장해온 의료계가 이번 판결에 대해 일제히 반대하고 나설 조짐을 보이고 있다.
23일 서울지방법원의 최근 판결문을 확인한 결과에 따르면, 재판부는 2017년 11월 소장폐색 환자에게 수술을 진행한 A씨에게 수술 지연에 따른 주의의무 위반으로 환자에게 장천공, 복막염, 패혈증, 소장의 괴사 등이 발생한 것으로 사료된다며 실형을 선고했다.
A씨는 당시 갑작스런 복통으로 병원 응급실을 내원한 환자를 진찰한 후 장폐색을 의심했지만, 환자의 통증이 호전되고 있고 6개월 전 난소 종양으로 인해 개복수술을 받은 과거력이 있음을 감안해 우선 보존적 치료가 적절하다는 의학적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7일 후 환자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자 응급수술로 소장을 절제했고, 환자는 괴사된 소장에 발생한 천공으로 인해 패혈증과 복막염 등이 발생해 2차 수술을 하게 됐다.
의사 A씨 "의학적 판단에 따른 수술 지연 결정이었을 뿐"
환자는 해당병원의 내과에 입원한 직후인 2017년 11월 22일 오전 2시 30분경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통증평가 척도(NRS) 9점의 극심한 복부 통증을 호소했다. 의료진에게 진통제 주사를 맞아도 소용없고 복부통증이 심하다고 했다.
외과 전문의 A씨는 진료기록 감정에서 “11월 22일 새벽에 이미 복통 양상이 바뀌었고 같은 날 오전 11시경부터 빈맥이 나타났던 점을 고려하면 11월 22일 새벽부터 폐색된 장의 교액성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환자는 11월 23일 오전 9시경 계속적으로 복부 통증을 호소하고 37.5도의 미열이 있었다. 응급실 내원 당시 정상 범위던 CRP(C반응단백) 수치가 13.11로 상승된 소견을 보였다. 또한 11월 25일부터 26일 27일, 28일 등에 걸쳐 지속저인 혈변 증상이 있었다.
A씨는 “피해자가 내과에 있을 때 이미 여러번 마약성 진통제가 투여될 정도의 통증이 있었기 때문에 외과의사가 봤다면 아마 수술을 결정하지 않았을까 한다”라며 “장폐색이 있을 때는 장이 살아있을 때와 장이 막 움직일 때는 엄청 아프다가 오히려 장이 죽어가면서 염증 반응에 의한 통증만 있으면서 통증 정도가 좀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진술했다.
A씨는 혈변 증상에 대해서는 "환자의 그간 경과를 보고 다시 판단해본다면 폐색된 장의 괴사가 이미 진행됐고, 괴사된 장에서 출혈이 발생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특히 소장에서 출혈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A씨는 ▲피해자가 수술보다 보존적 치료를 원했고 ▲통증의 정도도 감소하는 양상을 보였으며 ▲혈액검사에 따른 백혈구 구치, 아밀라아제 수치, CRP 수치가 정상 범위에 있거나 증가하는 소견을 보이지 않아 수술을 결정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에 따른 수술 지연의 과실이 없다고 분명히 했다.
A씨는 법정에서도 "소장 괴사 등이 있었다 하더라도 ▲아밀라아제 수치는 증가하지 않을 수 있고 ▲피해자의 백혈구 수치가 정상 범위에 있었고 ▲염증시 증가하는 CRP 수치가 증가하지 않고 오히려 감소하는 추세를 보인건 항생제 때문이었다 ▲장폐색의 경우 상태를 면밀히 보면서 장을 자르기 전에 폐색된 것을 해결해주는 것이 외과의사의 목표긴 하지만, 그 시점을 정확히 알수 없다"라고 밝혔다.
다만 A씨는 "환자가 응급실에 내원했을 때 찍은 CT를 봤으면 바로 수술을 했을 것이다. 환자의 장폐색으로 장을 자르는 수술을 할 수 있기는 하지만, 장이 괴사돼서 천공된 상태까지 가는 건 적절하지 않다"라고 덧붙였다.
재판부 "수술 지연에 따른 환자 중한 상해 발생, 주의의무 위반"
재판부는 A씨에 대해 즉시 환자에게 수술을 하는 것이 타당했으나, 그렇지 않았다며 과실로 해석했다. A씨는 환자의 소장이 장폐색으로 인한 괴사로 천공이 진행돼 장 내용물이 복강 내로 흘러나오는 상태에서 수술을 실시했는데, 수술 지연의 과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환자의 폐색 증상은 보다 중증인 교액성 장폐색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고 경과도 빠르기 때문에 면밀한 관찰이 필요하다. 교액성 장폐색으로 진행하는 복통 양상의 변화, 빈맥, 발열, 소변량, 압통반발통, 혈액검사소견이 보인다면 바로 수술적 치료를 시행해야 한다”고 했다.
재판부는 “A씨는 교액성 장폐색으로의 진행 여부를 확실히 하기 위해 환자에 대해 복부 골반 CT 촬영을 실시하는 등 추가적인 검사를 하거나 환자가 보인 복통의 양상, 발열, 소장 괴사로 인한 혈변 등의 증상을 고려했을 때 즉시 수술을 실시하는 것이 적절한 조치였다고 보임에도 A씨는 이를 시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환자는 혈변 증상을 보인 때 피해자의 장폐색 증상 해결을 위해 수술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환자가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수술보다 보존적 치료를 원했다고 하더라도 A씨는 의사로서 환자에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가장 적절한 치료방법인 수술을 결정하고, 이를 피해자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또한 피해자가 극심한 통증을 호소한 것은 피고인이 주치의가 되기 전 상황이었지만 A씨는 환자의 주치의로서 내과의 진료기록도 모두 볼 수 있었다”라며 “그럼에도 A씨는 피해자의 증상을 면밀히 살피지 않아 피해자의 장폐색에 교액성 변화가 있는지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역시 진료기록 감정에서 “혈변이나 CRP 수치 증가 소견을 보이는 시점에서 수술적 치료를 고려했어야 하지만 수술 시기가 지연됐다. 이에 따라 의학적인 수술 지연으로 환자에게 장천공, 복막염, 패혈증, 소장의 괴사 등이 발생한 것으로 사료된다”는 의견으로 실형이 선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