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현재 의료 전반 문제는 지난 수십 년간 누적된 정부 정책 실패의 결과물이다. 그런데도 모든 책임을 의료계에 떠넘긴다. 의료현장의 자율성은 축소하면서 국가의 통제와 의료기관의 책임은 확대하는 지금의 정책 방향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의대 정원 확대와 의정갈등의 한복판에서 출범한 황규석 제36대 서울시의사회장 집행부가 임기 막바지를 향하고 있다.
황 회장은 취임 당시 회원에게 힘이 되고 국민에게 신뢰받는 의사회를 약속했지만, 의정갈등 이후 정부여당의 소위 거센 '악법 러시'의 위기 속에서 어렵게 회무를 이끌어야 했다. 다만 잘못된 의료정책에는 단호하게 대응하면서도 국민건강을 위한 일에는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 그가 내세운 원칙이었다.
특히 현재 의료계 상황에 대해서는 정부 정책 실패가 누적된 구조적 위기라고 진단했다.
황 회장은 "정부는 지역·필수·공공의료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의사들을 이동시키려 하면서도 근무 여건과 보상, 법적 보호 등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보다 일부 수가 지원과 규제, 수사권 같은 강압적 수단에 의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의료계 지도자는 필요할 때 강력하게 투쟁할 수 있어야 하고, 동시에 정부와 국회, 정치권을 설득해 실제 정책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며 "의료계의 정당한 요구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누구와도 만날 수 있지만, 의료계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훼손하는 정책에는 타협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필요하다. 필요할 경우 법적 대응과 조직적인 행동까지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서울시의사회 황규석 회장과의 메디게이트뉴스 일문일답 내용.
- 의정갈등 사태는 종식됐지만 이후 검체검사 위·수탁 개편, 관리급여 전환, 건보공단 특사경, 성분명 처방, 비대면진료 등 의료계가 반대하는 법안과 정책들이 잇따라 통과되거나 신속하게 추진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의료계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나.
저 역시 대한의사협회 집행부의 일원으로서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점에 대해 모든 회원에게 죄송하다는 사과의 말부터 전하고 싶다.
다만 근본적인 문제는 정부의 잘못된 정책 방향에 있다. 정부는 지역·필수·공공의료, 이른바 ‘지필공’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의사들을 이동시키려 한다. 그러나 근무 여건과 보상, 법적 보호 등 의사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보다는 일부 생색내기식 수가 지원과 규제, 수사권이라는 강압적인 수단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안타깝다.
의료현장의 자율성은 축소하면서 국가의 통제와 의료기관의 책임은 확대하는 지금의 정책 방향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오히려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필수의료를 비롯한 의료 전반의 문제는 지난 수십 년간 누적된 정부 정책 실패의 결과물이다. 그런데도 모든 책임을 의료계에 떠넘기고 있으며, 그로 인해 의료제도의 근간이 흔들리는 구조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제는 국가와 정권 차원에서 의료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때다. 그런 역할을 의협이 해야 한다. 정권 최고위층과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며 현재 의료상황을 설명하고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의료정책을 바라보는 큰 틀의 변화 없이는 지금 대한민국 의료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구체적으로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과 비대면진료·지역의사제 관련 법안은 통과됐고, 검체검사 개편과 2027년 의원 수가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결정됐다. 반면 건보공단 특사경법과 성분명 처방 의무화 관련 법안은 아직 국회에 계류돼 있고, 관리급여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앞두고 있다. 따라서 이미 결정된 사안은 시행 과정에서 피해를 최소화하고, 남은 사안은 근거를 갖고 막아내는 데 역량을 모아야 할 때다.
- 가장 문제가 심각하다고 보는 법안 혹은 정책은.
가장 심각하다고 보는 것은 관리급여와 검체검사 위수탁 개편이다. 관리급여는 의사와 환자가 합의해 선택하던 비급여 진료의 가격과 횟수를 정부가 정하면서 환자에게 비용의 95%를 부담하도록 하는 제도다. 건강보험 보장은 거의 없는 구조인 데다 모법이 정한 선별급여의 범위를 시행령으로 넘어섰다는 점에서 위헌 소지가 크다.
검체검사 문제 역시 심각하다. 위탁검사관리료를 없애고 위수탁 보상 비율까지 정부가 정하는 것은 의료기관 간 계약의 영역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보상 원칙의 비대칭성이다. 정부는 원가보다 수익이 높은 검사 수가는 단계적으로 깎겠다면서 원가에 크게 못 미치는 진찰료와 수술·처치 수가는 그만큼 서둘러 정상화하지 않고 있다. 원가 이하 영역은 방치한 채 원가를 넘는 영역만 깎는 것은 수가 정상화가 아니라 총액 삭감일 뿐이며, 그 부담은 고스란히 의료계가 떠안게 된다.
관리급여 문제는 의료인의 직업수행의 자유와 환자의 치료선택권을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는가 하는 헌법적 문제다. 비급여는 정부도 인정하는 원가에 못 미치는 건강보험 수가체계 아래에서 대한민국 의료를 지탱해 온 숨통과도 같은 존재다.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는 영역으로서 끝까지 지켜내야 한다. 이는 특정 진료과의 이해관계를 넘어 대한민국 의료제도의 미래와 직결되는 사안이다.
- 최근 공개적으로 건강보험 당연지정제에 대한 헌법소원 등 법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이유는.
건강보험의 공익적 목적을 부정하려는 것도, 건강보험에서 탈퇴하자는 주장도 아니다. 헌법재판소는 2002년과 2014년 당연지정제를 합헌으로 판단했다. 특히 2014년 결정에서는 당연지정제의 공익적 필요성을 인정하면서 의료기관의 직업수행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과도한지를 판단했다. 그 과정에서 비급여 진료의 가능성과 환자의 선택권이 유지된다는 점도 고려됐다.
그런데 정부가 관리급여를 통해 기존 비급여 영역의 가격과 진료기준까지 통제한다면, 과거 합헌 판단을 뒷받침했던 전제와 상충한다는 점에서 논리적인 모순이 있다. 의료기관이 건강보험 참여를 거부할 수 없고 급여 진료는 정부가 정한 수가를 따라야 하는 상황에서 마지막 남은 자율 영역마저 통제한다면, 그 기본권 제한이 어디까지 정당한지 다시 따져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근본적으로 정부가 의사 양성과 수련, 의료기관 설립과 운영에 거의 투자하지 않으면서도 정책 하나로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는 바탕에는 당연지정제가 있다. 의사와 의료기관은 최소한의 계약 당사자로서 협상할 수 있는 권한을 회복해야 한다. 이는 의사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는 최소한의 헌법적 권리라고 생각한다.
- 의약분업 제도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냈다. 이유는 무엇인가.
국민의 안전과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확신한다. 2000년 의약분업이 시행된 지 26년이 지났지만, 이 제도가 국민에게 어떤 편익을 주고 어떤 비용을 남겼는지 정부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평가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당시 내세웠던 약물 오남용 감소와 재정 효과가 실제로 어느 정도 달성됐는지, 환자의 이동 불편과 추가 비용은 어떠했는지, 처방과 조제의 책임이 제대로 나뉘어 작동하고 있는지를 객관적인 자료로 따져볼 때가 됐다.
서울시의사회가 올해 환자 2429명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원내조제를 선호한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었고, 현행 제도가 불편하다는 응답이 만족한다는 응답보다 많았다. 최근에는 성분명 처방과 대체조제 확대, 약 배송, 처방전 리필제 등 의약분업의 기본 원칙을 변화시키는 정책들이 계속 추진되고 있다.
이제는 의약분업 제도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시행 26년이 지난 만큼 국민의 편익과 건강보험 재정, 의약품 사용의 안전성, 의료전달체계에 미친 영향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시점이다. 의약분업은 결코 손댈 수 없는 성역이 아니다. 현행 제도의 개선은 물론 선택분업을 포함한 다양한 대안을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 위기에 처한 의료계가 앞으로 정부와의 협상 파트너로서 어떤 기조를 가져야 한다고 보나.
정부의 협상 파트너가 되려면 의협에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런 힘은 조직력에서 나오며, 조직력은 회원 가입과 회비 납부율을 통해 확보된다고 생각한다. 허울뿐인 회원 단합 요청이나 국회의원과 손잡고 찍은 사진에 그쳐서는 안 된다. 식사 자리나 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는 진심 어린 대화를 통해 정치권과 소통 창구를 마련해야 한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근거를 갖고 단호하게 반대하더라도 끝까지 대화의 문은 닫지 않고 소통하고 설득하는 기조가 필요하다. 나는 진심은 반드시 통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의료계 지도자는 필요할 때 강력하게 투쟁할 수 있어야 하고, 동시에 정부와 국회, 정치권을 설득해 실제 정책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의료계의 정당한 요구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누구와도 만날 수 있지만, 의료계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훼손하는 정책에는 타협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필요하다.
앞으로 의료계는 감정적인 대립을 넘어 전략적인 협상력을 갖춰야 한다.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법률적 대안을 마련하고, 국회와 정부를 설득하며, 필요할 경우 법적 대응과 조직적인 행동까지 병행해야 한다. 강한 투쟁력과 뛰어난 협상력은 서로 반대되는 능력이 아니다. 의료계 지도자가 반드시 함께 갖춰야 할 역량이다.
- 서울시의사회장 임기가 어느덧 막바지에 이르렀다. 그동안 회무를 하며 느낀 점과 지난 임기를 되돌아 본다면.
의료계가 가장 어려운 시기에 회장직을 맡았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2024년 취임 당시 나는 ‘최강 집행부, 최강 의사회’를 만들겠다는 각오와 함께 회원에게는 힘이 되고 국민에게는 신뢰받는 ‘마음이 따뜻한 의사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취임과 동시에 의대 정원 확대와 의정갈등이라는 전례 없는 위기를 마주했다. 전공의들은 의료현장을, 의대생들은 학교를 떠났고 의료계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크게 흔들렸다. 그런 상황에서 서울시의사회가 해야 할 일은 분명했다. 잘못된 의료정책에는 단호하게 대응하되 국민건강을 위한 일에는 누구보다 앞장서는 것이었다.
의료계가 정부와 정치권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의료현장의 문제를 실제 정책 결정 과정에 전달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적·제도적 통로를 확보하는 일도 중요했다. 이를 위해 여야 정치권과 서울시, 관계기관 등 다양한 주체와 적극적으로 소통했다.
오세훈 서울시장과는 취임 직후부터 의료현안을 논의했고, 의정갈등이 한창이던 시기에도 직접 만나 의견을 교환했다. 최근에는 서울시와 정치권을 설득하기 위해 의약인 4개 단체가 함께하는 보건의료 협의체를 구성해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국회와도 지속적으로 협의했다. 특히 전현희 의원과는 의료계의 자율규제 강화와 사무장병원 방지를 위한 입법을 추진했고, 실제 관련 법안 발의로 이어졌다. 정치권과의 소통은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지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의료계의 정당한 요구를 정책에 반영하고 국민건강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다.
지난 임기 동안 의료계의 권익을 지키기 위한 정책 대응과 함께 시민건강 증진, 방문진료 지원사업, 의료계 자율규제 강화 등 다양한 회무를 추진했다.
물론 아쉬움도 많다. 의정갈등의 상처는 여전히 남아 있고, 불합리한 의료제도도 충분히 개선되지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하고 싶다. 의료계는 정부와 정치권을 무조건 멀리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그들에게 끌려다녀서도 안 된다.
- 회장 취임 이후 서울시의사회가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한 회무는 무엇이며, 그중 실질적인 성과라고 평가하는 부분은.
취임 후 가장 중점을 둔 것은 회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사업을 하자는 것이었다. 우선 서울시로부터 예산 19억원을 배정받아 올해 3월 서울시와 함께 전국 최초로 문을 연 ‘일차의료 방문진료 지원센터’가 대표적이다. 방문진료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준비와 행정 부담 때문에 망설이던 동네의원들이 환자 매칭부터 청구까지 지원받을 수 있게 됐다. 통합돌봄에서 일차의료가 의료의 중심축을 맡을 수 있는 기반을 행정과 함께 만들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본다.
또한 회원 권익을 지키기 위한 정책·법적 대응에 최선을 다했다. 구체적으로 도수치료 관리급여에 대해서는 실제 치료를 받는 환자와 의료기관장이 함께 청구인으로 참여해 헌법소원을 청구했고,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 심리까지 이끌어냈다. 의사의 입장뿐 아니라 치료받을 권리를 침해받은 환자의 입장도 함께 제기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성분명 처방 문제에 대해서도 문제점을 알리는 홍보물 공모전을 개최하고 서울 시내 전광판 광고를 진행했다. 서울 시내 환자 242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는 등 객관적인 근거를 마련해 대응했다.
아울러 군 복무기간 단축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하고 유영하 의원의 망발에 즉각 대응하는 등 젊은 의사들의 권익을 위해서도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또한 취임 초기 의료계 최초로 김예지 의원과 의료인 면허취소 관련 법 개정안 발의를 추진했다. 여당의 전현희 의원과는 사무장병원과 면허대여 약국을 개설 단계에서 차단하기 위한 의료법·약사법 개정안을 논의했고, 서울시 의약인 4개 단체가 공동으로 법안 발의를 추진했다.
마지막으로 회원 보호와 의료계의 자율규제 강화를 위해 노력했다. 의협 의료배상공제조합과 업무협약을 체결해 의료분쟁 예방과 회원 보호를 위한 협력체계를 강화했다. 특히 전문가평가단과 윤리위원회의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비윤리적 의료행위에 대한 조사와 심의, 징계 절차를 진행한 것은 중요한 성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