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의료현안협의체가 지난 16일 시작된 가운데 우선 논의될 안건은 ‘비대면진료’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부 세부조항에서 이견이 있긴 하지만 정부·여당의 추진 의지가 강력하다는 점에서 최대한 독소조항을 제외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뤄질 전망이다.
일각에선 30일 협의체 첫 실무회의에서 의대정원 관련 논의가 이뤄졌다는 루머도 돌았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2일 의료계와 복지부 등에 따르면 대한의사협회와 보건복지부는 이번 협의체를 통해 이견이 적은 의제부터 시작해 의대정원 확대 등 쟁점이 많은 안건을 후순위로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비대면진료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등 법률 개정은 어느 정도 큰 틀에서 논의에 드라이브가 걸린 상황이다.
의협, 반대 입장 선회해 조건부 찬성…몇 가지 조건 맞으면 합의 가능성 있어
협상에 물꼬가 트인 이유는 두 안건과 관련, 의협이 입장을 선회해 조건부 찬성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비대면진료의 경우 의협은 지금까지 원론적인 반대 입장에서 코로나19를 겪으며 전향적으로 돌아섰다.
실제로 의협 대의원회는 지난해 4월 정총에서 의사주도형 비대면진료 모델 추진과 대면진료 대비 1.5배 이상의 수가 등 지원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안건을 통과시켰다.
또한 이례적으로 서울시의사회 등은 원격의료연구회 등까지 발족시키면서 의료계가 비대면진료 정책을 선도해야 한다는 입장을 확실히 했다.
의협은 비대면진료 추진 과정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정부 지원 방향, 책임소재, 대상 의료기관, 대상 질환 등 부분에서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도 상황이 비슷하다. 애초 의협은 5개 단체 연합으로 해당 개정안에 반대 입장을 냈다.
현재 발의돼 있는 실손보험 청구간소화법은 총 6개다. 2020년 7월 더불어민주당 전재수 의원을 시작으로 가장 최근엔 정의당 배진교 의원이 발의에 참여했다. 이중엔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도 포함돼 있다.
주요 내용은 실손보험의 보험계약자, 피보험자 등이 요청할 때, 요양기관이 진료비 영수증·계산서, 진료비 세부산정내역 등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증빙서류를 전자적 형태로 보험회사에 전송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또한 해당 업무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같은 전문중계기관에 위탁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의료계 반대 이유는 ▲제3자인 의료기관에 의무부담 및 불필요한 행정부담 발생 ▲환자의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 ▲실손 보험사의 이율배반적 행위 ▲정보의 자기결정권 침해 및 지급거절 등 환자 피해 우려 ▲보험계약자 동의를 통한 심사평가원의 비급여 항목 검토 문제 등이다.
이에 의협은 심평원이 보험금 청구 중계기관으로 참여하는 것을 제외하는 방향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환자의 개인정보 유출 등을 방지하기 위해 데이터를 축적하지 않고 의료기관에 부담을 줄이기 위한 지원책 등도 협상 대상이다.
정부‧여당 추진 의지 확고…반대만 하다간 제도화 과정에 의료계 패싱
의협이 비대면진료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 등에 조건부 찬성으로 돌아선 결정적 계기는 해당 제도에 대한 정부와 여당의 통과 의지가 확고하기 때문이다. 즉 막는다고 막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억지로 반대 입장만 내다보면 오히려 제도 논의 과정에 의협이 패싱당하고 현장에서 제도화되는 과정에서 의협이 선제적으로 참여할 수 없게 된다.
실제로 두 제도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통과 의지는 매우 강력한 상태다. 비대면진료는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에 포함될 정도로 추진 의지가 강하고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제도도 디지털플랫폼정부 구상 발표 당시 국민체감 선도 프로젝트에 포함됐다. 또한 지난해 8월 국무조정실 주재로 열린 규제혁신 과제에서도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내용이 명시됐다.
여당도 정부의 제도 추진 의지를 돕고 있다. 국민의힘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난 25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규제 타파 정책으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와 비대면진료를 꼽고 의료계의 반대가 계속될 경우 입법처리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당 관계자는 “정부가 제도 개선의 의지를 보이는 만큼 올해 안으로 통과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의료계도 더 이상 반대만 하긴 힘든 상황일 것”이라며 “다만 규모가 작은 개원가는 부담을 느낄 수 있는 만큼 이들에 대한 지원이나 심평원의 의료비 통제 가능성 등에 대한 추가 논의는 더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법안을 발의한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실 관계자는 "당 차원에서도 그렇지만 성일종 의장이 의지를 갖고 추진하고 있는 부분도 큰 것으로 안다"며 "그동안 이해관계가 더러 얽혀있다 보니 문제를 풀기 위해 이해당사자들이 직접 모여 절충안을 모색하는 8자 협의체도 제안했다. 어떤 대안으로 합의가 이뤄지든 국민 편의를 위해 조속한 제도화를 위해 함께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현재 윤창현 의원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제도 절충안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금융위원회, 보건복지부, 의사협회, 병원협회, 의협 추천 소비자단체, 금융위 추천 소비자단체,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가 참여하는 8자 협의체를 발족하고 ▲심평원의 실손보험 자료 접근 제한 ▲의료기관 인센티브 등을 제안해왔다.
의협 관계자는 "지난 30일 의료현안협의체 회의에선 원론적이 향후 운영방안과 필수의료 활성화 보고와 질의응답 등이 오고 갔다. 아직까지는 비대면진료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논의가 이뤄진 것은 없다"고 말을 아꼈다.